해외입양아들의 ‘불량품’ 신세?
등록 : 2000-12-06 00:00 수정 :
(사진/다시 브라질로 쫓겨난 입양아들과 미국인 입양부모)
자국의 고아들을 해외로 입양보내는 것에 대해 브라질 사람들의 입장은 매우 호의적이다. 친부모에게 버림받고 길거리에서 거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어린아이들이 잘사는 나라의 양부모들 덕분에 여유로운 가정과 제대로 된 교육을 누리고 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느냐는 식이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거두자”느니 “고아 수출의 오명을 벗자”느니 하는 이야기는 좀처럼 들어볼 수 없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 입양된 브라질 고아들의 추방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선진국으로의 해외입양이 생각했던 것처럼 이상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는 반성이 일고 있다.
지난 11월16일에 미국에서 추방된 22살의 청년 존 허버트는 상파울루의 고아원에서 7살 때 미국의 중산층 가정으로 입양돼 자랐다. 자신이 태어난 브라질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고 포르투갈어도 다 잊어버렸다. 19살이 될 때까지 그도 양부모도 굳이 국적을 바꿀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보통 미국 청년들처럼 학교를 다니고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도 했다. 3년 전, 길거리에서 대마초를 팔다가 체포되면서 그는 외국인 범죄자의 경우 죄질의 경중에 상관없이 무조건 추방하는 미국법의 적용을 받는 지경에 처했다.
허버트와 양부모는 그가 미국땅에 남도록 소송을 제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브라질 외교부에서는 허버트 자신이 원하지 않는 한 브라질 입국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맞섰다. 결국 선고된 형량을 다 채우고도 계속 교도소에 남아 2년4개월을 보내는 동안 희망을 잃은 그는 자청해서 브라질 여권을 신청해 아는 사람 한명 없고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브라질 땅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고향이나 다름없는 미국 땅에서 외국이나 다름없는 브라질로 추방된 해외입양 고아의 비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99년에도 입양 고아 출신 청년 헤지나우두 실바가 브라질로 추방됐다. 12살에 브라질을 떠났다가 10년 만에 고향 도시로 돌아온 이 청년은 공항 대합실에서 사흘을 지내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역시 같은 처지에 있는 자반 소아레스라는 24살 청년은 매사추세츠의 한 교도소에서 6년째 추방을 거부하며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브라질 정부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티고 있어 언제까지 교도소에 갇혀 있어야 할지 모르는 형편이다.
외국인 범죄자들에게 이렇듯 엄격하게 적용되는 법령은 지난 1996년, 오클라호마 폭파테러사건으로 외국인 혐오증이 급격히 팽배하던 시절에 제정된 것이다. 매년 미국 정부는 6만명의 외국인 범죄자들을 추방하고 있다. 현재 124명의 브라질인들이 미국 땅에 수감돼 있으며 형량을 채우는 대로 추방된다. 최근에는 미국인 부모에 의해 입양된 외국인 고아들에 대해서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법령이 통과됐으나 허버트를 구제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법령 이전에는 해외입양아들의 시민권 획득이 양부모의 선택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외국인 고아들은 언제라도 되돌려보낼 수 있는 ‘불량품’ 같은 신세였다. 14살의 알렉산드리 루이스와 15살의 에르나니 조제는 지난 1994년까지 리우데자네이루의 거리에서 자고 동냥을 다니는 거지아이들이었다. TV 프로그램에서 불쌍한 브라질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동정심을 느낀 미국 양부모에게 입양돼 갔던 그들의 사연은 당시 브라질 텔레비전에까지 소개됐다. 2년이 지난 뒤, 양부모는 이들을 브라질로 되돌려 보냈다. 오늘날 루이스는 다시 거리로 돌아갔고 조제는 절도범으로 체포돼 리오시 근방 교도소에 갇혀 있다.
상파울루=오진영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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