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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페루, '쥐들'은 가고 봄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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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1-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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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은둔중인 후지모리 기소 움직임… 구인맥 청산과 경제위기 탈출이 과도정부의 과제

(사진/후지모리의 퇴장과 파냐과의 등장을 기뻐하는 페루 시민들)
“미식축구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후지모리의 행동은 종잡기 어렵다. 한마디로 그는 예측이 어려운 사람이다. 민주주의라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게임을 하는 정치인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 8월 페루의 정치위기를 취재하러 현지에 갔을 때 발렌틴 파냐과 의원(대중행동당 사무총장)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낡은 2층 건물의 우중충한 사무실에서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의 정치적 독선을 세차게 나무라던 파냐과 의원은 현지 페루언론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명색이 야당 사무총장인데, 지난 2년간 어느 기자도 내게 인터뷰를 하자는 제안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3개월이 지난 지금 모든 게 바뀌었다. 파냐과 의원은 기자들이 만나려 해도 쉽게 만날 수 없는 바쁜 몸이 됐다. 11월22일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비운 자리를 이어 임시대통령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가 새 국회의장에 뽑힌 지 1주일 만의 큰 변화다.

파냐과 의원이 필자에게 들려주던 “후지모리의 예측 불가능성”은 마침내 후지모리의 일본 망명(11월17일)으로 마침표를 찍은 듯한 모습이다. 파냐과 새 대통령이 11월22일 취임식장에서 “민주주의를 다시 제도화하는 게 우리의 임무”라고 말한 것도 10년에 걸친 1인 장기집권으로 만창이가 된 정치게임의 규칙을 바로 세우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파냐과의 취임식은 지난 10월 초 민중혁명을 통해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연방 대통령이 물러난 뒤 바로 한달 반만에 남미의 최장기집권자가 몰락한 것을 확인하는 현장이었다.


‘일본 은신’ 가능할까

(사진/결선투표를 마친 뒤 두 딸과 함께 웃어보이는 후지모리 대통령)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행보를 체스(서양장기)에 비추어 말하길 즐겨했다. 상대가 생각 못한 허술한 구석을 찔러 놀라게 하는 게 장기의 요체라면, 후지모리는 자신의 정치게임을 통해 상대(야당을 포함한 비판세력)를 놀라게 하는 걸 즐겨온 사람이다. 후지모리 정권의 2인자이자 페루 정보기관 총책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의 야당의원 매수공작 테이프가 공개된 지난 9월 “대통령 선거를 내년에 실시하겠다. 나는 입후보 안 할 것이다”라는 요지의 전격선언을 발표한 것도 따지고 보면 후지모리식 체스정치의 한 면모를 보인 셈이다.

11월 중순 부르네이에서 열렸던 아시아-태평양 정상회담을 마치자 마자 일본에 눌러 앉으려는, 정치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도 “예측이 어려운” 후지모리의 “상대를 놀라게 하는” 정치스타일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된다. 후지모리가 일본에서 팩스를 이용해 사직서를 페루에 보낸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페루의회는 그러나 그의 사직서를 받아들이지 않고, 찬성 62표 반대 9표로 그를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는 “도덕적으로 적합하지 않은 인물”로 낙인찍고 새 대통령으로 파냐과를 뽑았다. 이로써 지난 대선 이래 들끓던 페루정국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합법적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한 선거정국이다.

후지모리는 그렇다고 망명신청을 한 것은 아니다. 일본 시민권이 있기 때문이다. 30년대 초반 페루로 떠난 그의 부친은 1938년 후지모리가 태어나자, 고향인 가와치에 출생신고를 해놓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중국적자다. 해외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의 상당수가 이중국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일본 정부로서도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 한 눈감아 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후지모리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어엿이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일본국적을 주장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을 벗어난 일이다. 2대에 걸친 이민사는, 축재에 관한 한 성공적이라 말할 수 있겠다. 후지모리의 아버지는 가난을 면해보려고 일본을 떠났던 반면, 농업대 교수 출신의 후지모리는 거액의 비자금을 일본은행들에 분산 예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게 큰 차이라면 차이다.

아무튼 일본 정부로서는 후지모리가 부담스런 존재다. 후지모리의 인도를 페루 정부가 요구할 경우 껄끄러운 외교문제가 될 게 뻔하다. 후지모리가 일본에 장기간 머무를 게 분명해진 시점에서 일본의 여론은 어떨까. 한마디로 좋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사설에서 “페루로 돌아가는 것이 정치인 후지모리의 본분”이라 못박았다. 페루로 돌아가 그가 왜 대통령직을 그만두게 됐는가를 국민들에게 직접 설명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런 다음 일본에 오고 안 오고는 후지모리의 선택일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무엇이 후지모리로 하여금 페루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었나. 후지모리 자신은 이 대목에 대해서는 “얘기가 길다. 언젠가는 밝히겠다”고 입을 다물고 있다.

몬테시노스 ‘공범’으로서의 위기의식

(사진/후지모리와 몬테시노스의 몰락을 뜻하는 플래카드)
페루 국민들이 가장 싫어하는 동물이 바로 쥐다. 후지모리의 반대세력들은 지난 5월 컴퓨터 부정선거 시비를 불러일으킨 후지모리의 3선연임부터 시작된 정치위기 이후 반정부 집회를 할 때 후지모리와 2인자 몬테시노스의 얼굴을 쥐의 몸에다 붙인 캐리커처를 들고 나왔다. 지금 페루는 두 마리 쥐를 잡아 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직까지 후지모리는 기소되지 않았지만, 몬테시노스에 걸린 혐의는 5800만달러의 해외비자금 통장에 얽힌 돈세탁, 마약거래, 무기밀매 그리고 후지모리 독재 기간중 벌어진 살인과 고문 등 인권관련 범죄들이다.

지난 5월 국제적인 비난여론 속에 3선고지에 오를 때만 해도 후지모리 대통령의 운명이 일본망명이란 처참한 처지에 이를지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의 몰락을 불러온 결정적인 사건은 잘 알려진 대로 정보기관 총책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의 야당의원 뇌물수수 현장이 담긴 비디오테이프가 공개되면서부터였다. “몬테시노스와 후지모리라는, 독단과 아집으로 뭉친 양두마차에 실려 페루가 실려가는 꼴”이란 비판을 들으면서도 그들은 정치적 공생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몬테시노스의 비디오 파문은 그때껏 정치운명적으로 한배를 탔던 이들을 갈라서도록 만든 결정적인 계기였다. 위기를 느낀 후지모리는 “4월 조기총선 실시,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자신이 살기 위해 몬테시노스에게 망명을 종용했다. 파나마로 망명을 떠났던 몬테시노스가 40일 만인 지난 10월23일 다시 돌아오자, 후지모리 대통령은 “내가 직접 나서서 그를 체포하겠다”고 친위 무장병력을 데리고 리마 외곽의 군부대를 뒤지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구인맥의 뿌리를 뽑아라

(사진/인디오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알레한드로 톨레도. 차기 대권 일순위로 꼽힌다)
후지모리가 지난 11월 중순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할 무렵 페루정가엔 그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풍문이 파다했다. 몬테시노스 수사가 진행되면 될수록 후지모리의 관련혐의가 어떤 형식으로든 드러날 게 뻔한 상황에서 사실상 망명길을 떠날 거란 얘기들이었다. 그것은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후지모리는 출국 전 기자회견에서 몬테시노스 집에서 압수한 다이아몬드가 박힌 시계를 보여주며 그를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5800만달러의 스위스 은행계좌가 드러나는 등 몬테시노스에 대한 호세 우가즈 특별검사의 수사가 진척을 보이면서 후지모리는 공범으로서의 위기위식을 느꼈고, 법정에 서는 수치를 당하기보다는 일본행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90년대 일본언론들은 후지모리를 성공한 사무라이에 견주어 왔지만, 명예를 지키려는 자결쪽보다는 목숨을 잇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셈이다.

페루의 최대 일간지 <엘 코메르시오>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호세 우가즈 특별검사는 신임 검찰총장에게 후지모리가 세운 것으로 알려진 싱가포르의 두 회사에 관한 자료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몬테시노스는 이 회사들의 계좌를 이용해 돈세탁을 한 뒤 스위스은행 계좌로 입금했다는 혐의가 제기되고 있다. 이럴 경우 후지모리와 몬테시노스의 범죄 연결고리가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우가즈 특별검사는 후지모리가 일본에 가기 전 싱가포르에 들러 이 회사들의 계좌에서 1800만달러를 인출해 3개의 일본은행에 입금했는지도 조사중이다.

후지모리와 몬테시노스가 지난 10년간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는 아직까지 페루를 덮고 있다. 몬테시노스가 총괄하던 국가정보원(SIN)을 비롯한 정보기관들은 비디오테이프 파문 이후 후지모리에 의해 해체된 상태다. 그러나 정보기관들에서 일하던 요원들이나 그들이 해오던 기능은 대부분 군부쪽으로 넘어갔다. 몬테시노스의 덕을 본 군장성은 50여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10월 후지모리는 4명의 군 최고지휘관들을 면직했고, 최근 10명의 군장성들이 옷을 벗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개혁이 없는 한 또다른 몬테시노스 충성파를 앉히는 결과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몬테시노스가 자신의 비호세력인 군부를 부추겨 쿠데타를 일으키려 한다는 흉흉한 소문도 끊임없이 나도는 형편이다. 구시대 인맥의 뿌리를 뽑는 것이 민주화의 선결조건이란 공감대 아래 파냐과 대통령은 군부 숙정작업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파냐과 정권은 내년 4월에 대선을 치르고 7월까지 차기정권에 권력을 넘겨야 하는 하는 과도기 정권이라는 한계 속에서도 몬테시노스와 후지모리를 기소하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기소가 페루 민주화를 위한 기본요건이라는 인식 아래서다.

벼랑 끝에 몰린 경제살리기가 최대과제

(사진/몬테시노스의 초상을 불태우며 그의 체포를 촉구하는 시민들)
파냐과 정권이 풀어야 할 또다른 문제는 경제다. 올 들어 7개월 넘게 끈 정치적 불안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페루경제는 벼랑 끝에 내몰렸다. 이미 후지모리 정권 말기부터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국제금융기관에 추가지원을 해달라고 손을 벌여온 상황이다. 파냐과 새 대통령이 유엔사무총장을 역임하고 지명도가 높은 하비에르 페레즈 쿠엘라(80)를 신임 총리에 임명한 것은 일단 페루 국민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1995년 대선에서 야당후보로 나서 후지모리에 도전한 경력이 있는 쿠엘라 총리는 국회 다수파인 페루2000당을 비롯한 후지모리의 잔여세력과 알레한드로 톨레도 대선후보로 대표되는 야당연합 사이의 첨예한 대립을 중화시킬 인물로 꼽힌다. 내년 4월대선의 출마예정자 가운데 가장 대권고지에 가까운 사람은 지난 4월대선에서 후지모리에 맞섰던 알레한드로 톨레도(페루 포시블레 당수)로 꼽힌다. 페루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펴온 미국은 후지모리의 일본행이 확인된 직후 대표단을 페루로 파견해 연쇄접촉을 통해 파냐과를 정점으로 한 새판짜기에 두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으로 알려진다. 내년 4월 페루민주화의 봄에 웃을 사람은 누구인가. 우는 사람은 물론 일본에 있는 후지모리다.

인물론/ 발렌틴 파냐과 페루 임시 대통령

중도노선으로 버텨온 40년

후지모리의 거수기 노릇을 해온 마르타 힐데브란드 국회의장이 “몬테시노스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비판 속에 물러난 11월 중순, 그 자리를 메우면서 전환기 페루정국의 중심인물로 떠오른 인물이 있다. 이른바 중도노선을 걸으며 합의를 도출해내는 데 솜씨를 보여온 온건한 야당지도자의 한 사람인 발렌틴 파냐과(64)이다. 그가 다른 정파들의 추대를 받아 국회의장에, 그리고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온건한 정치성향 때문이다. 그는 지난 봄 대선에서 알레한드로 톨레도 후보를 야당연합 후보로 밀었던 대중행동당 사무총장을 지냈다. 깨끗한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는 파냐과는 정보정치의 대부 몬테시노스가 온갖 정치공작을 통해 많은 비판세력들을 흠집내 왔지만 이를 견뎌냈다.

파냐과의 정치이력서는 무척 길다. 그가 사무총장으로 있는 대중행동당은 지금은 총의석 120석인 페루의회에서 3명뿐인 군소야당에 머물고 있지만, 60년대와 80년대 두 차례에 걸쳐 집권한 경험을 지닌 오랜 정당이다. 지난 8월 페루 리마 시내에 있는 독립행동당 사무총장실에서 그를 인터뷰했을 때 건네받은 정치이력서는 A4 용지로 두장에 이르렀다. 농업대 교수였던 후지모리가 이렇다할 정치적 경력 없이 지난 90년 대선에서 당선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50년대 법대 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보였던 파냐과는 1963년 27살 때 처음 의회에 진출했다. 페르난도 벨라데 사회주의 정권 아래서는 29살의 나이에 법무장관을 지냈다. 그러나 1968년 군사쿠데타가 일어나는 바람에 불우한 나날을 지냈다. 페루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실시된 1982년 선거에서 다시 의회에 진출한 파냐과는 하원의장으로 뽑혔고, 2년 뒤 벨라데 대통령은 그에게 교육부장관 자리를 맡겼다.

잉카문명의 중심지였던 쿠스코가 고향인 파냐과는 이름 자체가 ‘빵과 물’을 뜻한다. 5인가족 기준으로 월 소득이 300달러에도 못 미치는 절대빈곤층이 54%이고 거리에 실업자가 득실대는 페루 현실에서 파냐과 임시 대통령이 앞으로 8개월가량의 짧은 임기 동안 어떤 정치력을 발휘할지 주목된다.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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