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경 유혈진압의 최대 피해자는 민간인… 인도네시아 중앙정부는 이미 신뢰 잃어
170km가 넘는 메단-반다 아체 구간의 대로. 보안군이 차량과 주민들에게 총격을 가했다는 소문이 나도는데도 걸어걸어 그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기저기 길가에 앉아 쉬고 있는 사람들과 무리지어 다시 길을 떠나는 사람들. 아체 민중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떠난 사람들이다. 아이를 들쳐업고, 옷과 먹을거리가 든 가방의 무게나 먼길의 고단함 따위는 문제도 아니라는 듯, 피디(Pidie)에서 온 아낙네들은 말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다 아체로 가고야 말 것이다.”
거세지는 독립찬반투표 요구
아체주민투표정보센터(SIRA: Aceh Referendum Information Center)가 주관하는 ‘평화를 위한 아체 민중대회’가 인도네시아 군경의 저지 속에 지난 11월10일부터 13일까지 열렸다. 아체 민중대회는 지난해 11월8일에도 열렸는데, 당시 전체 아체 주민의 40% 정도인 150여만명이 참석해 동티모르와 같은 독립 찬반투표를 요구했다. 이번에도 대회 공고를 접한 주민들은 전 지역에서 반다 아체로 향했다. 그러나 일급 경계경보가 발효돼 반다 아체로 가는 길목에는 이미 군경의 바리케이드가 외곽주민들의 진입을 가로막고 있었다. 육로 진입이 어렵자 일부 주민들은 어선을 타고 해로로 접근해 페우나용항을 거쳐 시내로 들어가기도 했다. 군경의 저지에도 주민들은 반다 아체로 향한 발걸음을 돌리지 않았으며, 진입하려는 주민들과 군경의 충돌로 13일 대회종료까지 적어도 15명이 사망했다.
이같은 탄압에도 대회지인 바이투라흐만 대사원에는 50만명 정도의 주민들이 모였다. 대회장은 평화 추구라는 애초 목적과는 달리 사망자들에 대한 애통의 눈물과 군경의 잔혹함을 성토하는 분노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11월14일 다루스살람대학 캠퍼스에는 수십만명의 주민이 모여 아체의 독립을 요구했다. 아체는 100여년 전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 식민지에서 독립하면서 인도네시아에 흡수됐다. 당시에는 지방자치권이 완벽하게 보장됐기 때문에 다인종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정통 이슬람국가를 주장하는 아체지역과의 공존이 가능했다. 그러나 수하르토 정권 시절부터 갈등이 표면화하기 시작했다. 수하르토가 정치에 종교가 연관되는 것을 금지한다며 아체를 철저히 억누르기 시작하자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아체 주민들 사이에는 독립찬반투표 외에는 아체문제를 해결할 대안이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평화로운 세상에서 안심하고 살고 싶다는 지극히 당연한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1976년 이슬람국가 수립 등을 내건 아체 독립전선(GAM)의 무장투쟁이 시작되어 1980년에 전격적으로 군사작전지역(DOM)으로 지정된 이후 아체 주민들은 공포 속에서 살아왔다. 특히 아체 독립전선 요원을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주민들에게 가해진 폭압은 아체인들에게 군경에 대한 증오를 심었다. 1998년 8월 군작전지역에서 해제될 때까지 유괴, 고문, 살해 등으로 고통받은 피해자들이 수만명에 이른다. 그러나 1998년 이후에도 아체의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지난해 동티모르의 독립과 새 정권의 등장은 아체 주민들에게 독립찬반투표가 실현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주었다. 신임 와히드 대통령도 “동티모르는 되는데 왜 아체는 안 되겠느냐”며 독립찬반투표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나 정치적 논리에 따라 그의 약속은 공수표가 되었고, 여러 정치지도자들의 말은 아체를 달래려는 제스처에 그치고 말았다. 신생정권의 안정이 우선이라는 미명하에 아체의 소망은 억눌려졌다. 아체 주민들 내부에서도 새 정부를 믿어보자는 온건적인 목소리가 나오면서 주민투표 요구는 일단 물밑으로 가라앉는 듯했다. 새 정권은 인도네시아 내에서 독립에 가까운 광범위한 자치와 군대의 폭력행위 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약속은 현실이 되어 나타나지 못했다. 군경과 아체 독립전선 사이의 충돌은 끊이지 않았고 더불어 주민들의 희생도 계속 이어졌다 “남자들을 끌어내어 무조건 총살한다”
평화를 바라는 주민들의 바람이 일시 빛을 본 적도 있었다. 지난 5월 아체의 각 정치세력과 인도네시아 정부는 협정을 맺어 1차와 2차에 걸친 평화휴전기간을 선포했다. 11월16∼17일에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양자간의 회담도 있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번 아체 민중대회에 대한 군경의 폭압에 항의해 스웨덴 소재 아체 독립전선의 지도자인 아흐마드 마르주키는 회담 연기를 요구했다. 결국 회담은 성사되지 못했다. 아체 문제가 평화로운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극단으로 가는 양상은 최근 몇달 동안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지난 9월3일 제2차 휴전 이후 폭력 사태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신원불명의 괴한이 대낮에 반다 아체에 있는 알-라니리 국립이슬람대학교 총장 사택을 찾아가 아체의 저명인사인 샤프완 이드리스 박사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카르타에서는 증권시장 건물 폭파사건이 터지자 경찰당국이 아체 독립전선의 소행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이에 아체 독립전선은 자신들과는 무과한 사건임을 주장하며 성명을 냈지만, 서로간의 의혹과 반목은 깊어져 갔다. 군경의 아체 독립전선에 대한 소탕작전이 빈번히 실시되었으며, 이 와중에 주민들의 희생이 늘어났다. 인도네시아 NGO인 ‘인권 포럼’에 따르면 지난 9월3일부터 10월28일 사이에 아체 내에서 분쟁과 관련해 사망한 사람은 대략 166명 정도이며, 이중에서 민간인이 무려 113명이나 되고 군경은 28, 아체 독립전선군은 25명이었다고 한다. 군경의 소탕작전으로 아체 독립전선 총사령관의 핵심고문으로 알려진 압둘 샤피이가 처형당하고 최근에는 한 지역사령관이 사살되었다. 군경쪽에서도 서부아체의 한 경찰서장이 아체 독립전선의 차량공격으로 중태에 빠져 자카르타로 후송되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일반 주민들의 희생이 컸다는 점이다. 군경쪽에서는 아체 독립전선과의 총격전중에 불의의 사고로 희생자가 나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에 따르면 군경 수색대가 몰려와 집과 가게를 뒤져 남자들을 끌어내어 총살하고 시체를 여러 곳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이런 군경의 과잉 수색은 아체 독립전선의 주근거지로 알려진 피디뿐만 아니라 북아체, 남아체에서도 발생했다.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 사원과 학교 등으로 피난했다. 종교지도자 등이 사살되는 것을 보고 자신들의 안위를 보장할 수 없어서 피난을 나왔다고 그들은 증언하고 있다. 여러 지역에서 발생하는 군경의 폭압에 확실한 조처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중앙정부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도 증폭되었다. 이런 중에 평화 기원을 목적으로 한 아체 민중대회에 대한 군경의 강경진압이 이루어졌다. 결국 아체 주민들은 독립찬반투표 쟁취만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아체 지역 국회의원인 아흐마드 파르한 하미드는 중앙정부가 아체 문제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보이지 않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아체 주민들의 신뢰를 잃었다고 말한다. 그는 아체 주민투표 정보센터가 200만명 이상의 아체 주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92%가 독립을 찬성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상사태 선포는 저항만 낳는다? 최근 아체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국내외로 알려지면서 인도네시아 정부와 군부에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유엔 안전국(UNFSO)은 아체 민중대회의 주장을 유엔에 보고했으며, 아체에 사무국을 개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군경쪽에서는 자신들의 피해도 적지 않다며 최근의 비난 분위기에 반발하고 있다. 와히드 대통령도 국제 언론보도가 아체 상황을 부풀리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지난 11월22일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정치안보 조정장관은 정부 차원에서 아체 문제에 대한 대응방침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대화를 우선시하되 아체의 정치세력들(특히 GAM, SIRA)이 혼란을 조장할 경우 의법조치는 물론 최악의 경우 비상사태를 선포하겠다는 것이다. 아체의 혼란이 확대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경대응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여기에는 아체의 ‘독립열풍’이 가톨릭을 믿는 파퓨아 등 타지역으로 번지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정부의 발표에 대해 전 인권장관이자 아체 출신 인사인 하스발라 사아드는 반대를 표명했다. 그는 비상사태 선포는 주민들의 고통만 가중시켜 저항만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체 주민들의 간절한 바람인 독립찬반투표 실시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 또한 최근의 아체 사태에 관심은 표명하면서도 인도네시아에서 분리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아체와 파퓨아의 광범위한 자치는 내년 1월에야 공식적인 결정이 내려질 예정이다. 아체 주민들 앞에는 여전히 험난한 여로가 기다리고 있다. 자카르타=김소연 통신원yeowon98@cbn.net.id

이같은 탄압에도 대회지인 바이투라흐만 대사원에는 50만명 정도의 주민들이 모였다. 대회장은 평화 추구라는 애초 목적과는 달리 사망자들에 대한 애통의 눈물과 군경의 잔혹함을 성토하는 분노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11월14일 다루스살람대학 캠퍼스에는 수십만명의 주민이 모여 아체의 독립을 요구했다. 아체는 100여년 전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 식민지에서 독립하면서 인도네시아에 흡수됐다. 당시에는 지방자치권이 완벽하게 보장됐기 때문에 다인종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정통 이슬람국가를 주장하는 아체지역과의 공존이 가능했다. 그러나 수하르토 정권 시절부터 갈등이 표면화하기 시작했다. 수하르토가 정치에 종교가 연관되는 것을 금지한다며 아체를 철저히 억누르기 시작하자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아체 주민들 사이에는 독립찬반투표 외에는 아체문제를 해결할 대안이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평화로운 세상에서 안심하고 살고 싶다는 지극히 당연한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1976년 이슬람국가 수립 등을 내건 아체 독립전선(GAM)의 무장투쟁이 시작되어 1980년에 전격적으로 군사작전지역(DOM)으로 지정된 이후 아체 주민들은 공포 속에서 살아왔다. 특히 아체 독립전선 요원을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주민들에게 가해진 폭압은 아체인들에게 군경에 대한 증오를 심었다. 1998년 8월 군작전지역에서 해제될 때까지 유괴, 고문, 살해 등으로 고통받은 피해자들이 수만명에 이른다. 그러나 1998년 이후에도 아체의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지난해 동티모르의 독립과 새 정권의 등장은 아체 주민들에게 독립찬반투표가 실현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주었다. 신임 와히드 대통령도 “동티모르는 되는데 왜 아체는 안 되겠느냐”며 독립찬반투표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나 정치적 논리에 따라 그의 약속은 공수표가 되었고, 여러 정치지도자들의 말은 아체를 달래려는 제스처에 그치고 말았다. 신생정권의 안정이 우선이라는 미명하에 아체의 소망은 억눌려졌다. 아체 주민들 내부에서도 새 정부를 믿어보자는 온건적인 목소리가 나오면서 주민투표 요구는 일단 물밑으로 가라앉는 듯했다. 새 정권은 인도네시아 내에서 독립에 가까운 광범위한 자치와 군대의 폭력행위 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약속은 현실이 되어 나타나지 못했다. 군경과 아체 독립전선 사이의 충돌은 끊이지 않았고 더불어 주민들의 희생도 계속 이어졌다 “남자들을 끌어내어 무조건 총살한다”

평화를 바라는 주민들의 바람이 일시 빛을 본 적도 있었다. 지난 5월 아체의 각 정치세력과 인도네시아 정부는 협정을 맺어 1차와 2차에 걸친 평화휴전기간을 선포했다. 11월16∼17일에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양자간의 회담도 있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번 아체 민중대회에 대한 군경의 폭압에 항의해 스웨덴 소재 아체 독립전선의 지도자인 아흐마드 마르주키는 회담 연기를 요구했다. 결국 회담은 성사되지 못했다. 아체 문제가 평화로운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극단으로 가는 양상은 최근 몇달 동안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지난 9월3일 제2차 휴전 이후 폭력 사태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신원불명의 괴한이 대낮에 반다 아체에 있는 알-라니리 국립이슬람대학교 총장 사택을 찾아가 아체의 저명인사인 샤프완 이드리스 박사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카르타에서는 증권시장 건물 폭파사건이 터지자 경찰당국이 아체 독립전선의 소행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이에 아체 독립전선은 자신들과는 무과한 사건임을 주장하며 성명을 냈지만, 서로간의 의혹과 반목은 깊어져 갔다. 군경의 아체 독립전선에 대한 소탕작전이 빈번히 실시되었으며, 이 와중에 주민들의 희생이 늘어났다. 인도네시아 NGO인 ‘인권 포럼’에 따르면 지난 9월3일부터 10월28일 사이에 아체 내에서 분쟁과 관련해 사망한 사람은 대략 166명 정도이며, 이중에서 민간인이 무려 113명이나 되고 군경은 28, 아체 독립전선군은 25명이었다고 한다. 군경의 소탕작전으로 아체 독립전선 총사령관의 핵심고문으로 알려진 압둘 샤피이가 처형당하고 최근에는 한 지역사령관이 사살되었다. 군경쪽에서도 서부아체의 한 경찰서장이 아체 독립전선의 차량공격으로 중태에 빠져 자카르타로 후송되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일반 주민들의 희생이 컸다는 점이다. 군경쪽에서는 아체 독립전선과의 총격전중에 불의의 사고로 희생자가 나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에 따르면 군경 수색대가 몰려와 집과 가게를 뒤져 남자들을 끌어내어 총살하고 시체를 여러 곳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이런 군경의 과잉 수색은 아체 독립전선의 주근거지로 알려진 피디뿐만 아니라 북아체, 남아체에서도 발생했다.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 사원과 학교 등으로 피난했다. 종교지도자 등이 사살되는 것을 보고 자신들의 안위를 보장할 수 없어서 피난을 나왔다고 그들은 증언하고 있다. 여러 지역에서 발생하는 군경의 폭압에 확실한 조처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중앙정부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도 증폭되었다. 이런 중에 평화 기원을 목적으로 한 아체 민중대회에 대한 군경의 강경진압이 이루어졌다. 결국 아체 주민들은 독립찬반투표 쟁취만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아체 지역 국회의원인 아흐마드 파르한 하미드는 중앙정부가 아체 문제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보이지 않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아체 주민들의 신뢰를 잃었다고 말한다. 그는 아체 주민투표 정보센터가 200만명 이상의 아체 주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92%가 독립을 찬성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상사태 선포는 저항만 낳는다? 최근 아체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국내외로 알려지면서 인도네시아 정부와 군부에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유엔 안전국(UNFSO)은 아체 민중대회의 주장을 유엔에 보고했으며, 아체에 사무국을 개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군경쪽에서는 자신들의 피해도 적지 않다며 최근의 비난 분위기에 반발하고 있다. 와히드 대통령도 국제 언론보도가 아체 상황을 부풀리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지난 11월22일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정치안보 조정장관은 정부 차원에서 아체 문제에 대한 대응방침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대화를 우선시하되 아체의 정치세력들(특히 GAM, SIRA)이 혼란을 조장할 경우 의법조치는 물론 최악의 경우 비상사태를 선포하겠다는 것이다. 아체의 혼란이 확대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경대응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여기에는 아체의 ‘독립열풍’이 가톨릭을 믿는 파퓨아 등 타지역으로 번지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정부의 발표에 대해 전 인권장관이자 아체 출신 인사인 하스발라 사아드는 반대를 표명했다. 그는 비상사태 선포는 주민들의 고통만 가중시켜 저항만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체 주민들의 간절한 바람인 독립찬반투표 실시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 또한 최근의 아체 사태에 관심은 표명하면서도 인도네시아에서 분리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아체와 파퓨아의 광범위한 자치는 내년 1월에야 공식적인 결정이 내려질 예정이다. 아체 주민들 앞에는 여전히 험난한 여로가 기다리고 있다. 자카르타=김소연 통신원yeowon98@cbn.net.i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