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가고 항쟁만 남은 팔레스타인… 이스라엘군의 만행 저지할 국제방위군 필요
다오우드 쿳탑(Daoud kuttab)
다오우드는 라말라의 쿠드스대학 현대미디어연구소의 소장으로 후학들을 가르치는 동시에 팔레스타인의 가장 대표적인 언론인으로 국제사회에 정평이 나 있다. 과 <로이터 통신>을 비롯한 국제언론들의 특파원을 역임했으며 지금도 의욕적으로 세계 언론들을 대상으로 칼럼을 집필해 국제사회에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알리고 있다. 그의 비판적인 칼럼들은 팔레스타인 당국과 이스라엘 정부 양쪽으로부터 박해를 받고 있다. 투옥을 당하면서도 녹슬지 않은 그의 언론인 정신에 국제언론연구소(IPS)는 올해 5월‘언론자유영웅상’을 수여했다.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과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백악관 잔디밭에서 멋지게 악수를 나눈 뒤부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끈기있게 자유와 독립을 기다려왔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은 앞장서서 평화를 지원해왔다. 1991년 마드리드평화회의가 시작되자 팔레스타인의 아이들은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평화의 상징으로 올리브가지를 선물했다. 그러나 9년 동안 계속된 이스라엘의 공격과 통제는 이 평화의 몸짓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결국 협상에 대한 신뢰심은 증발해 버렸고 항쟁만이 자유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로 바뀌어 버렸다.
“우리가 아이들을 사지로 내몬단 말이냐”
5년 동안의 과도기간을 추인했던 오슬로협상은 7년째로 접어들었지만 이스라엘은 실질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의 이전은 모든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지연되고 있다. 수감된 이들은 석방되지 않았고, 북부지역의 안전한 통로는 결코 개방되지 않았으며 군사명령과 이스라엘이 지배하는 시민행정은 폐지되지 않았다.
사태를 악화시킨 초점은 회교도들의 세 번째 성지인 알 아크사 사원에 대한 미래의 영구적인 지위를 협의한 올 여름 캠프데이비드협상 과정이었다. 팔레스타인 협상대표들 가운데 특히 공보장관 야세르 아베드 라보 같은 이들은 정치적 분쟁이 종교적 사안으로 옮겨가는 위험한 폭발성을 한달 전부터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사브리와 삿털리에서 팔레스타인의 피를 손에 적신 이스라엘의 매파 정치지도자 아리엘 샤론의 알 아크사 사원 방문은 이 성지에 대한 이스라엘의 영구적인 합법성을 기도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분노는 항의시위로 이어졌고 곧 야만스러운 이스라엘군과 마주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스라엘군은 이 봉기가 재빨리 시들어지기를 바랐으나 팔레스타인 시민들의 급증하는 희생은 팔레스타인의 분노를 증폭시키며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유엔과 유럽연합 그리고 각 인권단체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이스라엘군의 과도한 무력진압을 비난했으나, 이스라엘은 계속되는 변명 속에서 팔레스타인 언론사에 대한 공습과 시위대에 대한 야만적인 공격으로 사과를 대신했다.
이스라엘 정부의 언론담당 대변인은 팔레스타인 당국이 자기 시민들의 희생을 선동한다고 빈정대며 책임을 회피했다. “팔레스타인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순교하게 내보내고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방어하게 된다.” 이스라엘 변명자들은 “팔레스타인 당국의 선전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오직 카메라가 비칠 때만 아이들을 죽음의 현장으로 내보내고 있기 때문에 실제 희생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 얼마나 부조리한가.
팔레스타인의 인구분포를 보라. 50% 이상이 21살 미만의 젊은이와 아이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던가. 누구보다 평화를 염원하다 좌절감을 느낀 이 세대들이 바로 좀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싸우고 있다. 어디 부모들이 이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단 말인가. 이런 발상은 팔레스타인의 부모들이 다른 나라의 부모들보다 자식들을 덜 사랑한다는 식의 인종차별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전세계에 방송된 열두살 먹은 무함마드 두라에 대한 야만적인 학살 장면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던 모습이 바로 팔레스타인 부모들이 지닌 여느 다른 세상의 자식 사랑과 같은 모습이다. 그래도 이스라엘의 허구적인 주장은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당시 군인들이 시야가 닫힌 지점에서 총을 쏘았기 때문에 고의적인 사건이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다 접어두고도, 바로 그게 또 문제다.
논리가 통하지 않는 이스라엘군
방아쇠를 당기는 기쁨에 젖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누구를 구체적으로 겨냥한 것이 아니라 인구가 밀집된 곳으로 난폭하게 쏘아대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의 희생자 수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무장한 팔레스타인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자기 동생이 잔인하게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을 목격하면 몇 자루 되지 않는 총이지만 들고 나와 이스라엘군쪽으로 총을 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 이스라엘군은 때를 만난 것처럼 상황을 과장해서 탱크로 포격을 가하고 미제 최정예 공격용 중무장 헬리콥터 아파치를 동원해 미사일로 보복 공격해서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
팔레스타인 지도부와 시민들에게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군으로부터 스스로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다. 이것은 1988년 내가 이른바 ‘국제방위군’ 같은 중립적인 입장의 군대파견을 기대했던 일을 상기시킨다. 당시 나는 가자지역에서 민중항쟁을 취재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예루살렘 북부에 자리잡은 칼란디아 난민촌 부근을 순찰하던 이스라엘 군인들은 이 지역이 통행금지중이라며 나를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어두운 밤이었고 주위에는 나와 무장 이스라엘군인들뿐이었다. 나는 조용히 설명했다. “우리집은 난민촌이 아니고 통행금지도 적용되지 않는 지역이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내 설명을 듣지도 않고 소리를 질렀다. 이에 나는 이스라엘 당국에서 발급한 기자증을 보여주며 신분을 밝혔으나 군인들은 자신들의 정부에서 발급한 기자증을 땅바닥에 팽개쳐버렸다. 나는 스스로를 자제시키며 기자증을 주워들고 다시 설명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때 군인들의 손이 내 얼굴로 날아들었고 나는 번쩍거리는 별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부터 오늘까지 나는 시민들이 군인들과 마주쳤을 때는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수백명이 총격을 받아 사망하고 수천명이 총상을 입는 현재 상황에서 국제 감시자를 요구하는 것은 확실히 내가 경험한 것과 다른 경우지만, 내 경험에 비춰본다면 분명한 게 하나 있다. 이스라엘군은 주변에 외국인들이 있을 때는 태도를 달리 한다는 사실이다. 외국인들이 떠나고 나면 즉각 인권 유린 행위를 자행하는 것이 이스라엘 군인들의 참모습이다. 이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겠다거나 이스라엘군에 침략을 중단하라고 요구할 때나 마찬가지로 분명하게 일어나는 현상들이다. 따라서 지금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국제방위군을 요구하고 있다.
공격중단과 팔레스타인 독립을!
말하자면 이스라엘의 공격 중단은 가장 확실하고 가장 빠르게 시위와 혼란과 폭력을 중단시키는 길이다. 여기에 항구적인 국제방위군이 감시하고 필요하다면 중재에 나서 시민들을 보호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침략과 분쟁 그리고 평화를 시도한 날들 속에서 쉽사리 양쪽 모두 유리하게 사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깊고 너무 광범위한 문제들이 휩싸여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유엔을 통해 독립선언을 토대로 이스라엘을 탄생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것처럼,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어기고 있는 가운데도 세계의 지배자들이 이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왔던 것처럼, 이제 반대쪽의 억압받고 희생만을 강요당해왔던 팔레스타인을 생각할 때가 되었다.
시간이 무르익었다. 이제 국제사회는 이스라엘한테 공격을 중단하라고 촉구하면서 동시에 민주적인 팔레스타인의 자유와 독립을 창조할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다오우드 쿳탑(Daoud kuttab)



(사진/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시위도중 이스라엘군에 희생된 동료들의 주검을 옮기고 있다)

(사진/팔레스타인인의 죽음은 끊이지 않는다.시위도중 병원에 후송되어 숨진 팔레스타인인)

(사진/팔레스타인의 소년 시위대.총에 돌로 맞서는 그들의 모습이 처량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