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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신’이 된 황제와 밥 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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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1-2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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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레게음악의 전설 밥 말리)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장례식이 그가 의문의 죽임을 당한 지 25년 만에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삼위일체정교회에서 지난 11월5일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1892년 태어난 셀라시에 황제는 1930년 황제에 즉위해 에티오피아정교회와 봉건적 지주계급의 역학관계 등을 교묘하게 이용해 재위시 절대적 권력을 행사했으나 지주계급의 착취에 대한 소작농들의 봉기, 정부관리들의 부패, 1972∼74년 남부 티크레지방과 발레지방의 대기근과 식량가격폭등으로 촉발된 민심이탈 등 악화일로의 상황에서 1974년 9월 일어난 군사혁명으로 폐위되었다. 혁명주도세력은 황제를 왕궁에 구금했으나 그는 다음해인 1975년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당시 황제를 왕궁에 구금하고 있던 군인들에 의해 살해됐을 것이라는 추측 속에 그의 유해는 왕궁의 화장실에 매장되었다가 1992년 발견돼 바타성마리아교회에 안치되었다. 셀라시에 황제의 기념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하일레 셀라시에 1세 재단’쪽은 장례식에 수십만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애초 예상보다 훨씬 적은 수천명만이 참석하였고, 에티오피아 정부도 “한 시민으로,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셀라시에 개인의 장례식”으로 의미를 축소했다.

셀라시에 황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 독재자”, “인민을 진정으로 사랑한 군주” 등 극단의 평가를 받는다. 황제에 즉위하기 전 그의 이름은 라스 타파리 발레와였는데, 훗날 그의 이름은 흑인들의 정치, 종교, 문화운동인 ‘라스타파리운동’(Rastafarianism)에 사용되었다. 전세계적으로 수백만명에 달하는 라스타(라스타파리운동의 추종자)들은 셀라시에 황제를 살아 있는 신으로 숭배하고 있다. 그들이 셀라시에 황제의 장례식에 많이 참석하지 않은 까닭은 장례식에 참석한다는 것 자체가 셀라시에 황제를 살아 있는 신으로 섬기는 자신들의 믿음에 대한 부정이기 때문이다. 라스타들에게서 셀라시에 황제의 죽음은 신의 죽음과 동일한 맥락에서 해석된다. 레게음악의 전설적 가수였던 밥 말리도 라스타였는데 그는 생전에 셀라시에 황제를 “유대지파에서 난 사자”로 칭하며 그를 경배한다고 밝혔다.

셀라시에 황제가 라스타들로부터 살아 있는 신, 정신적 구심체로 추앙받아온 것은 성서 요한계시록 5장2절에서 5절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유대지파에서 난 사자, 다윗의 뿌리”가 바로 셀라시에 황제를 의미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와 더불어 셀라시에 황제는 1963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아프리카단결기구회의에서 초대의장으로 아프리카국가간의 단결과 분쟁해결에 지대한 공헌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에티오피아 침공을 비난하며 약소국의 영토보전과 독립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열렬히 촉구한 지도자였다는 사실도 억압받아온 흑인들을 현세의 억압과 고통에서 구해낼 수 있는 권능을 가진 지도자로 자리매김하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탁월한 외치에도 불구하고 수십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기근, 권력층의 구조적 부패, 봉건적 토지소유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결여 등 내치에서 돌이킬 수 없는 오류를 남겼다. 에티오피아 현 정부는 셀라시에 황제가 재위기간 중 빈곤퇴치와 기아해결, 경제발전에 사용돼야 할 국가재원을 외국으로 빼돌림으로써 에티오피아 국민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줬다고 주장하며 가능한 모든 법적수단을 동원하여 부정적으로 외국에 유출된 국고를 환수할 것임을 밝혔다.

셀라시에 황제는 영면으로 들어갔지만 그의 역사적 공과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라스타파리운동에 끼친 영향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헨트=양철준 통신원 YANG.chuljoon@wanad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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