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우리의 최후 최고의 목표는 평화”

335
등록 : 2000-11-22 00:00 수정 :

크게 작게

아흐마드 야신 하마스 의장 단독 인터뷰… “예루살렘은 심장이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 아시아 네트워크 팀장

이 인터뷰는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혀 매우 제한적으로 알려져왔을 뿐인 하마스의 지도자 아흐마드 야신을 11월1일부터 3일 동안 팔레스타인 가자지역에서 최초로 밀착취재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건강은 어떤가(그는 48년 전 운동을 하다 다쳐 사지가 마비된 상태로 그동안 휠체어에 앉아 초인적인 투쟁을 해왔다. 현재는 난청과 난시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아직 젊다. 젊음이 넘친다.

-현 상황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부터 이야기해 보자.

=팔레스타인 전체가 큰 감옥이라 보면 된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는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에게 배부른 중무장 이스라엘군이 감옥을 향해 마구잡이로 총질을 해대는 풍경을 연상해 보라.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지닌 것이라곤 이제 생명뿐인데, 그걸 던져 침략자 이스라엘에 저항하고 있는 셈이다. 이걸 우린 완전한 자유와 해방을 위한 성전이라 부른다.


-지난달 이집트에서 있었던 샤름 엘 셰이크 정상회담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희생자와 가해자를 동등하게 만들어버리는 그 회담의 실체를 인정할 수 없다. 피해자인 팔레스타인 시민들에게 항의를 중지하라고 하는 건데, 이걸 받아들이면 결국 침략자들의 공격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고 백기 들고 나오라는 말이 된다. 이건 미국이 이스라엘의 안전만을 보장하겠다는 뜻이고, 팔레스타인 시민들은 지옥으로 가라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그 정상회담을 받아들인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에 대해서는.

=아라파트의 정상회담 참석 자체를 거부하며 말렸지만 미국의 압력에 그가 굴복한 셈이다. 그래서 그는 갔고, 결론적으로 샤름 엘 셰이크 정상회담의 결정은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현실 속에서 실행 불가능한 것들이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과 아랍 국가 모두가 부정했다.

-그렇게 부정하는데 왜 최근 들어 하마스는 대립을 접고 아라파트의 팔레스타인 당국에 협력하고 있는가. 요즘 두 그룹 사이에 매일 규칙적인 회의까지 열고 있을 정도 아닌가.

=아라파트 개인에게 협조하는 것이 아니라, 하마스를 비롯한 모든 회교 정당들이 현재 민중봉기를 협의하고 있는 상태다.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선택이라 보기 때문이다.

-말이 난 김에 아라파트의 정치적 지위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현재 전문가들 사이에는 그의 위치를 정치적 위기로 보기도 하고 최대 정치적 호황기로 보는 이도 있는데.

=아라파트가 정치적으로 강한 상태든 허약한 상태든, 그런 건 우리 관심사가 아니다. 그가 시민들의 의지를 받들어 계속 침략자들에 맞서 투쟁하는지 아닌지만을 주목할 뿐이다.

-화제를 잠깐 돌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협상의 초점이 돼왔고 양쪽 모두가 최후의 보루로 여겨온 예루살렘의 지위 문제에 대해 말해보자.

=이건 우리의 종교와 관련된 참으로 중대한 사안이다.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모든 회교도들의 성지이자 기도의 한 부분으로 결코 포기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 모두가 성지로 주장하는 예루살렘 문제를 어떻게 조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가. 무슨 뾰족한 수라도….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수천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서 함께 살 수 있고 그들이 성지를 방문할 수도 있다. 지금처럼 유대인들이 주인 행세를 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없다. 1948년 이스라엘이 국가를 창설하고 예루살렘을 공격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린 예루살렘에서 함께 잘살았다. 예루살렘은 2천년 전 매우 짧은 기간 유대인들이 살았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도시 건설부터 모든 것이 아랍인들 손으로 이루어졌다. 역사적으로도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 이미 증명되었다. 유엔의 지원 아래 국제학술단체들이 예루살렘의 모든 보물과 성소들을 조사했지만 유대인과 관련된 건 아무것도 나온 게 없다. 알 아크사 사원도 통곡의 벽도 모두 유대인과는 무관한 것이다.

-예루살렘을 제외하고는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말할 수 없다는 뜻인가.

=예루살렘은 심장이다. 심장없이 사람들이 살 수 있는가?

-미국에 대한 당신의 인상을 들어보고 싶다.

=미국은 불평등하고 정의롭지 못한 국가다. 미국은 희생당하는 쪽을 생각하지 않는 공격적인 국가체제와 신념을 지닌 나라다. 가장 확실한 증거가 바로 팔레스타인 아이들과 여성들의 희생으로 이어가는 ‘이스라엘 비즈니스’다. 돈과 무기로 뒤덮인 거래.

회교사원에서 기도하는 아흐마드 야신
-대개 국제사회는 하마스를 ‘테러리스트’나 ‘과격 무장투쟁조직’으로 인식해 왔고, 잘 봐주면 ‘강경회교근본주의’ 정도로 낙인찍어 왔는데, 이런 호칭들을 스스로 인정할 만한가.

=개의치 않는다. 어떻게 부르든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책을 반대하면 곧바로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히는 게 국제사회의 현실이니. 한국 역사에는 이런 ‘테러리스트’가 존재한 적이 없었나? 가령 일본이 침략했던 시절에 말이다. 독립을 외치며 폭탄을 던지거나 자유를 위해 무장투쟁을 한 경우 말이다. 한국 사람들은 이들을 ‘테러리스트’라 부르는가? 베트남에서도 그랬듯이, 무력을 앞세운 다수는 늘 소수에게 이런 호칭들을 즐겨 써왔다.

-하마스의 대표적인 무장투쟁방식이 자살폭탄공격 같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그것말고는 방법이 없는가.

=그런 말부터가 잘못이다. 자살공격이 아니라 순교다. 자살이라 함은 생을 포기하고 밖으로 도망치는 것이지만 순교라 함은 삶의 원천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방법은 이스라엘에 달렸다.

-이스라엘군의 무장공격으로 최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희생이 늘어나고 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는가. 회교 지도자의 입장에서 한마디 한다면.

=이런 상황에서는 돌 대신 폭탄을 던져야 한다.

-하마스의 강경투쟁노선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들이 여전히 지배적인데.

=가자나 서안지역에 가서 길가는 이들을 붙들고 물어보라. 누가 회의적인지. 하마스에 대해 오해해서는 안 된다. 국제사회가 하마스의 대민지원사업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투쟁만을 주목하기 때문에 빚어진 큰 오해다. 하마스는 무장투쟁만 하는 단체가 아니라 정치조직이다. 가난한 이들 속에서 부정없는 맑은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것이 또 하나의 목표다.

-하마스의 최후 목표는 무엇인가.

=팔레스타인 땅에서 평화롭게 사는 것이 최후, 최고의 목표다. 투쟁이 목표나 목적이 아니다. 긴 역사 속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팔레스타인 땅에서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회교,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다. 팔레스타인 국가의 이름 아래서라면.

-최후 최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당신의 철학과 계획은.

=1948년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은 뒤부터 52년 동안 재난 속에서 살아온 우리에게 어떤 철학이 필요하겠나. 팔레스타인의 땅과 자유를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저항하고 투쟁할 뿐이다. 정치적 대안을 찾아 헤맨 지난 52년 동안, 얼마나 많이 이들이 죽어갔는지 국제사회는 알고나 있는가. 하마스가 과연 ‘평화’의 개념조차 모르는 사람들이겠는가.

인터뷰/ 아흐마드 솔라이만 헤리스

하마스와 파타는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아흐마드 솔라이만 헤리스는 아라파트 의장의 무장투쟁조직인 파타의 가자지역 지도자이다.

-최근 사태를 놓고 각 정파간 연합전선, 특히 하마스와의 연합전선을 결성할 가능성은 있는가.

=연합전선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미 모든 정파와 무장세력들이 현실을 보는 시각에 큰 차이가 없다. 완전한 자유와 독립 때까지는 민중항쟁을 지속해야 한다는 뜻에서.

-하마스와도 시각이 일치되었다고 볼 수 있나.

=무슨 뜻인지 안다. 이게 외국언론들의 입장이다. 하마스와 파타는 다를 바 없다. 똑같은 목표를 향해 왔고 똑같은 길을 가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완전한 자유와 독립을 놓고 민주적인 사회에서 다양한 정당과 노선은 기본이다. 그 차이를 과장하지 말길 바란다.

-샤름 엘 쉐이크 정상회담에 대한 파타의 입장은.

=초기엔 우리도 아라파트 의장의 회담 참석을 원치 않았다. 지도부에 대한 강력한 전방위 압력이 쏟아졌다. 어쨌든 아라파트 의장은 참석했고 우린 그의 지도력을 믿었다. 중요한 건 우리가 회담을 지원하거나 부정하거나의 문제가 아니라 회담과는 별개로 항쟁을 지속한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회담에서 성취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라파트 의장의 정치 행위에 대한 부정인가.

=그런 게 아니다. 파타라는 조직은 민중항쟁에서 태어났다. 따라서 완전한 독립을 성취할 때까지는 민중항쟁을 멈출 수 없다는 뜻과 팔레스타인의 모든 이들은 아라파트 의장이 주축이 된 평화회담을 지원하고 있다는 뜻을 동시에 담고 있다.

-명확하지 않다. 파타의 입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지.

=다시 말해, 오늘날 파타의 조직원들은 10년 전 철군을 결정한 이스라엘 군인들한테 평화의 꽃을 바쳤던 바로 그들이다. 평화를 위한 투쟁이라는 말이다.

-파타의 일부 지도부가 아라파트 의장의 노선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소문들이 나도는데.

=분명하게 말해, 팔레스타인의 지도력과 파타의 지도부는 동일하고 어떤 차이점도 없다. 목표도 하나다.

-파타가 말하는 평화의 의미는 무엇인가. 날마다 수많은 아이들이 시위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민중항쟁을 주도해왔다는 파타의 대응을 볼 수 없지 않는가. 파타가 나서서 적을 깰 수 없다면 적어도 아이들이 희생당하지 않게 어떤 조처를 취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당신 말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투쟁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본능 같은 것이 돼버렸다. 누가 말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간디 방식의 투쟁이 있었다면, 우린 우리 방식의 투쟁이 있다. 비록 매우 고통스러운 방식이지만.

-사태가 계속된다면 파타가 무장투쟁의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가.

=오해 없길 바란다. 파타는 무장투쟁조직이 아니다. 파타는 시민조직이다. 정치와 문화와 경제를 비롯한 모든 분야의. 이게 외국언론들의 착각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무장해온 것은 뭔가. 길거리에도 파타조직원들의 무장이 즐비한데.

=자생적인 경우들이다. 우리는 군사조직이 아니다. 내가 파타의 지도자인데도 권총 한 자루 없다. 믿지 않겠지만.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