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원리포트/ 부족전통이냐, 선거법이냐
등록 : 2000-07-26 00:00 수정 :
지난 7월10일 탄자니아에서는 투표권을 거부당한 마사이족의 젊은 전사들인 모란(il-moran)들이 투표함을 불지르는 사태가 발생했다. 탄자니아 북부 아루샤지방 시만지로 지역에서 발생한 이 투표함 소각사건은 ‘성인’의 개념을 둘러싼 선거관리위원회쪽과 마사이 부족민들간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선거관리위원회쪽은 문제의 마사이족 젊은이들이 18살 미만의 미성년자들이고, 선거구에 일정기간 이상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투표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마사이 부족민들은 젊은이들이 부족 전통에 따라 할례의식을 치렀으니 마땅히 성인이고, 따라서 투표에 참여할 권리도 있다고 주장했다.
마사이족 젊은이들은 부족 전통에 따라 보통 10대에 할례의식을 치르는데 이 의식을 통과한 자는 성인으로 간주된다. 이런 견해 차이가 계속 평행선을 달리자 마사이 젊은이들은 참지 못하고 투표함을 약탈해 아예 불질러 없애버린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소동을 놓고 지방 의원선거에 출마할 집권 혁명당(Chamacha Mapinduzi, CCM)의 공식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투표과정에서 절대적 열세에 있던 후보가 상대방 후보의 승리를 무효화시키기 위해 마사이족 모란들을 동원시킨 실력행사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현대사회가 규정하고 있는 성인에 대한 개념과 부족전통에 따른 성인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불가피하게 불거진 것이라는 설명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늘날 서구사회의 가치체계와 그 체계의 틀 속에서 파생한 제도들이 아프리카 부족사회에 속속 스며들어 그 영역을 넓혀감에 따라 아프리카 전통사회의 가치와 제도들은 점차로 그 존립기반을 상실해 가고 있다. 사자를 잡는 행위는 더이상 모란으로서의 용맹함을 과시하는 행동이 아니라 야생동물 밀렵행위로 규정되고 있다. 다른 부족집단으로부터 가축을 빼앗아 오는 것은 단지 범죄행위로 취급될 뿐이다. 바야흐로 아프리카사회도 어쩔 수 없이 현대화의 거센 물결을 타고 있는 것이다.
헨트=양철준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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