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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전쟁을 넘어, 국경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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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4-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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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 와중에 두 나라 민중의 계급적 연대를 주장한 플레하노프와 가타야마 센의 만남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러-일 전쟁 개시 100돌이 된 올해에 접어들어서 100년 전의 동북아시아 대살육의 이야기가 한국과 주변국들의 신문지상을 장식하곤 한다. 한국 보수 신문들은 ‘그때’와 ‘오늘’의 정세 불안의 흡사성을 강조하여 국가 부강의 필요성과, 한국을 보호할 수호천사로서의 미국의 역할을 역설하지만, 100년 전 미국이 일본의 한반도 강탈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은 잘 언급되지 않는다.

제2인터내셔널 회의에서 만난 두 사람. 왼쪽 기둥에서부터 앞줄 네 번째가 가타야마 센, 다섯 번째가 플레하노프다.

‘애국’의 주술을 거부한 변혁의 주체들


100년 전 한반도를 둘러싼 약탈전을 벌였던 제국들의 정치적·이념적 후예들은 지금도 별다른 반성을 보이지 않으면서 그때의 국제적 강도 행각의 정통성을 내세운다. <요미우리신문> <산케이> 등의 거대 언론으로 대표되는 일본 극우들이 100년 전에 써먹었던 ‘아시아 해방을 위한 전쟁’과 같은 인종주의적 색깔이 강한 언어를 쓰는가 하면 러시아도 질세라 ‘러-일 전쟁 용사 영웅화’ 정책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러시아 국내는 물론 100년 전 러시아 침략의 목표물이 된 인천에서까지(!) 러시아인 전몰자들의 기념비가 개막됐지만, 100년 전 전쟁의 침략 의도와 “황색 원숭이들을 무찌르자”고 외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를 비롯한 당국자들의 인종주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나오지 않는다. 100년 전 한반도를 놓고 붙었던 그들의 우파 매체는 지금도 그때의 전쟁 프로파간다 논조를 바꾸지 않고 있다.

그러면 “1904~05년간 전쟁의 도래가 국민의 애국주의적 단결을 가져다주었다”는 일본과 러시아 우파의 통념이 맞을까? 양쪽 전쟁 도발의 의도 중 하나는 후발 근대화가 불러일으킨 각종 사회 모순과 갈등들을 봉합하여 아래부터의 변혁 운동을 예방하려는 것이었는데, 변혁 주체들은 ‘애국’의 주술에 잘 걸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러-일 전쟁은 최초로 대대적인 반전운동에 부딪힌 제국주의 전쟁이었다. 일본 초기 사회주의자들의 기관지이었던 <헤이민신문>(平民新聞·1903년 11월15일 창간, 부수 약 2만부)은 탄압에도 불구하고 “일본 군인들이여 여러분들의 진정한 적은 바로 자본주의와 군국주의”라고 외쳐, 어용적인 애국주의의 광란 속에서 ‘러시아인 동자들과 계급적 연대’를 겁 없이 주장했다.

특히 1904년 3월13일치 <헤이민신문>에서 나온 ‘러시아 사회당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글은 영역이 되어 세계 사회주의 운동의 명문이 됐다. “제국주의적 침략을 감행하는 양국 정부들은 우리에게 전쟁을 강요했지만, 우리 사회주의자들에게 인종이나 국적의 구별은 없다.… 우리에게는 싸울 만한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어느 쪽이 이기든 간에 가난과 과중한 과세, 도덕의 도탄, 군국주의의 팽창이라는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이기는가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러시아의 평화주의적 문호 톨스토이의 반전 평화 메시지 “반성하라!”를 싣는 등(1904년 8월7일치) 일본 지식층·노동층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헤이민신문>의 사회주의자들은 ‘승패무관(勝敗無關)론’을 펼쳐 ‘관제 애국주의와의 투쟁’에 중점을 두었다.

1904년 러일 전쟁 당시 중국 뤼순의 전초 거점인 난산의 러시아 요새를 공격하는 일본해군. 러일전쟁은 최초로 대대적 반전운동에 부딪친 전쟁이었다.

레닌을 위시한 러시아의 급진적 사회주의자들과 상당수의 급진적 자유주의자들은 한술 더 떠서 “가증스러운 러시아 전제왕권의 패배가 변혁의 길을 터줄 것”이라며 러시아의 패배를 공공연하게 환영했다. 광적인 애국주의 분위기에서 발발되고 지금도 러-일 양국 우파들의 ‘애국 상징’으로 이용되는 전쟁은 오히려 양쪽의 진보주의자들에게 ‘국가’와 ‘진보사회’ 사이의 확실한 경계선을 그을 기회를 제공했다. 일본과 러시아의 좌파를 비롯한 세계 좌파 일체가 전례 없는 규모의 ‘반전 캠페인’을 활발하게 전개하는 상황에서, 1904년 8월14일에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는 상징적이고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다.

제2인터내셔널의 스타로 떠오르다

1904년 8월14일…. 만주 벌판이나 뤼순(旅順)에서 하루 수백·수천명의 생명을 빼앗는 살육이 자행되는 가운데, 암스테르담에서는 세계적 사회주의자 연합인 제2인터내셔널(국제사회당)의 제6차 대회가 열렸다. 국제 정세가 동북아에서의 전쟁을 중심으로 돌아갔던 만큼 ‘반전평화’는 이 대회의 주제로 설정됐다. 의장으로 주최국인 네덜란드의 사회주의적 지도자 반 콜(Van Kol)이 뽑혔지만, 부의장으로 러시아의 대표자인 플레하노프(G. V. Plekhanov·1856~1918)와 일본의 대표자인 가타야마 센(片山 潛·1859~1933) 등이 각각 선정됐다. 대회의 ‘스타’가 된 이 두 사람은 누구였을까?

1880년부터 스위스에서 망명 생활을 해온 지주 출신의 플레하노프는 러시아 혁명사상가로서 최초로 마르크스주의를 체계적으로 연구·대중화하여 사회주의 지도자들의 스승 노릇을 해온 사람이었다. 가타야마는 플레하노프와는 완전히 판이한 길을 걸어온 일본 사회주의운동의 제1세대 대표자이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과 미국에서 고학한 가타야마는 이상주의적인 박애주의적 기독교 신앙을 출발점으로 삼고, 엥겔스로부터 ‘마르크스주의의 최고 이론가’라는 찬사를 얻은 플레하노프와는 달리 이론보다 고통과 투쟁의 현장에서 조직·계몽 활동을 했다.

플레하노프는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혁명 때 폭력이 불가피하다고 봤지만, 1904년까지 기독교인으로 남아 있던 가타야마는 그가 1901년에 조직한 일본 사회민주당의 목표로 ‘당장의 감군과 궁극적 군대 해산’을 내세울 정도로 철저한 비폭력주의자였다. 사회주의가 매개가 돼서 최초로 만나게 된, 국적·출신배경·성향이 완전히 다른 이 두 사람은 결국 암스테르담 대회를 주목거리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대회가 개막되자 의장은 개회사에서 플레하노프와 가타야마를 가리키면서 “정부들끼리 전쟁을 해도 적국의 사회주의자들은 서로 동지애를 갖고 전 세계 무산계급의 평화 지향성을 보여준다”라고 운을 뗐다. ‘평화’라는 말에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오자 감동을 받은 플레하노프는 갑자기 일어나 가타야마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악수가 또다시 만장의 박사를 자아내자 플레하노프는 가타야마를 껴안고 포옹했다. 바로 다음날 ‘숙적 러-일’의 사회주의 지도자들이 악수·포옹하는 사진은 전 세계의 뉴스거리가 되었다. ‘평화에의 희망’으로서 사회주의의 의미를 새롭게 부각하게 됐다. 이 역사적인 제스처는 지배자들이 일으킨 애국주의와 인종주의의 불길에 찬물을 끼얹었다. 후진 자본주의 국가 러시아와 일본으로서 이 순간은 민중이 ‘국가’의 테두리를 벗어나 자아의식을 가진 독자적 계급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1904년 8월14일, 그 역사적 순간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1914년 전 유럽의 미증유의 대살육인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0년 전 암스테르담에서 반전평화를 논했던 유럽 사민주의 지도자들 대다수도 ‘애국’의 광란에 휩쓸려 제국주의를 위해서 싸워줄 것을 노동자들에게 당부하기에 이르렀다. 프랑스 사회당 상층부와 밀착된 플레하노프도 ‘대세’에 밀려 프랑스·러시아 등의 연합국 편을 듦으로서 혁명가로서의 위상을 실추했다. 일제 당국의 박해를 견디지 못해 1914년에 도미한 가타야마는 끝까지 국제주의의 명분에 충실했지만 결국 레닌의 코민테른에 합류해 말년에는 모스크바에서 편안하게 지내면서 스탈린 독재 체제에 대한 항의를 하지 못했다. 두 주역, 플레하노프와 가타야마가 사회주의의 이상을 완벽하게 지키지 못한 것은 시대와 상황에 대한 인간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일이다.

결국 끝까지 이상을 지키진 못했지만…

그렇다면 100년 전에 태동된 반전운동이 과연 패배한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한계는 많지만 대중적인 반전의 분위기는 사회당이 최근에 ‘반전표’로 정권을 탈환한 스페인의 예가 보여주듯, 서구나 일본과 같은 제국주의 중심지의 주된 정치적 변수 중 하나가 됐다. 체첸 민족 말살로 광풍에 휩싸인 러시아에서도 바깥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풀뿌리 좌파 조직들의 투쟁이 줄기차게 계속되고 있다. 살육의 20세기에 군사주의와의 타협이 얼마나 큰 오류가 되는지 배운 세계 민중운동과 연대하는 길이야말로 한반도의 진정한 안보와 생존의 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참고 사이트]
1. 가타야마 센에 대한 백과사전적 정보(러시아어):
http://www.japantoday.ru/japanaz/k52.shtml
2. 가타야마에 대한 간단한 소개(일어):
http://www.netlaputa.ne.jp/~kitsch/taisho/jikoh/katayama.htm
3. 일본 초기 노동운동 역사 소개(영문):
http://www.internationalism.org/ir/112_japan.html
4. 러일전쟁 시절의 러시아 사회주의 운동의 ‘혁명적 패배주의’ 주장에 대해서(학술 논문-영문):
http://www.workersliberty.org/files/draper.pdf
5. 플레하노프의 주요 저서의 영문 번역:
http://www.marxists.org/archive/plekhanov/
6. 플레하노프의 ‘개량주의적’ 경향에 대한 레닌의 비판(영문):
http://www.sozialistische-klassiker.org/Lenin/Lene06.html
7. 가타야마의 기념관 소개와 사진(일어):
www.town.kumenan.okayama.jp/PROFILE/senjin/senji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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