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케냐 ‘맹모’는 몸으로 때운다

500
등록 : 2004-03-11 00:00 수정 :

크게 작게

수업료 없는 학부모들을 위해 가축 · 노동력 등 독특한 납부방식 마련한 마낭가 중등학교

헨트= 양철준 전문위원 zuydcoote@hanmail.net

탄자니아의 난민 캠프 교실에서 한 학생이 수화를 익히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무상교육은 아직도 정착되지 못했다.(GAMMA)
“육체노동으로 수업료를 대납하면 안 되나요?”

새로운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수업료 마련을 위한 학부모들의 애타는 발걸음은 어디에나 낯선 모습은 아니다. 특히 무상 공교육이 아직도 쉽사리 실현할 수 없는 이상으로만 인식되는 아프리카에서는 말이다. 케냐에서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새 학기가 되면 연례행사처럼 수업료를 마련하기 위해 학부모들이 동분서주하는 풍경을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수업료를 마련하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나는 학생들(school dropouts)도 수두룩하다. 부모의 경제력이 달려 배움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학교를 도중에 그만둬야 하는 이들은 대개 사회적 소외세력이 되고 구직 등 다양한 기회에서도 차별을 받는다. 그렇다면 배움에 대한 열정을 갖고 면학의 꿈을 불태우는 학생들이 학업을 안정적으로 계속하도록 도와주는 방법 혹은 대안은 없는가.


학교 소유의 농장에서 일하기도

케냐의 무랑아 지역에 위치한 마낭가 중등학교는 독특한 수업료 납부 방식을 도입해 커다란 관심과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학부모가 현금으로 수업료를 납부할 수 없는 경우 수업료 대신 내놓을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학교 당국에서 모두 수용하는 것이다. 우선 호주머니에 현금은 없지만 가축을 기르고 있다면 수업료와 등가의 가축을 받아들이고, 사육하는 가축이 없다면 곡식으로 대신 받는다. 학교 소유의 땅에 젖소를 사육하기 때문에 학교 소유 농장의 우유 생산량이 목표량에 미달되면 학부모들로부터 우유를 수거하는 등 다양한 융통성을 허용한다. 또 학부모가 수업료 대신 가져온 계란을 학교 급식에 사용하기도 한다. 학교가 위치한 곳이 농촌 지역이고, 게다가 학부모 대부분이 소규모 농업에 종사하는 빈궁한 가계를 꾸려나가고 있기 때문에 현금 마련이 녹록지가 않다. 이런 어려운 학부모들에게 자신들이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으로 학비를 대납하도록 허용한 것이다. 가축이나 곡식으로 수업료를 대납할 여력마저 없는 극히 궁핍한 학부모들에게는 노동력을 제공해 수업료를 대납할 기회를 주는 등 다양한 유형으로 수업료를 대체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도 교육은 가장 중요한 신분상승의 수단이 되고 있다. 수업 중에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는 한 아프리카 난민 캠프의 어린이.(GAMMA)
노동력을 제공할 능력이 있는 학부모들은 학교 소유의 농장에 자발적으로 와서 땅을 파거나 제초작업을 하고 농작물 수확을 거드는 방식으로 수업료에 상응하는 노동력을 제공한다. 학교 소유의 농장에서 행하는 농사일 이외에도 학교 건물을 보수하고 관리할 때 외부 인력을 고용하지 않고 학비를 납부할 여력이 없는 학부모들에게 맡김으로써 경비를 절감하는 방식으로 수업료를 감면해준다. 목공 기술이 있는 학부모는 학교 건물 신축 공사장에서 목공일을 하거나 학교 건물의 보수작업에 참여함으로써 수업료를 갈음하기도 한다.

학생들 학업 열기 고조

마낭가 중등학교의 독특한 수업료 징수 방식은 학교장인 키리가씨가 도입한 것이다. 학교장 자신이 궁핍한 환경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빈곤 가정에서 학비를 조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항상 절감하고 있었다. 학부모들의 어려운 상황을 충분히 감안한 궁여지책이었다. 특히 마낭가 중등학교가 자리잡은 케냐의 무랑아 지역은 농민들이 주로 영세한 규모로 커피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더구나 커피 시세의 급락으로 많은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어왔다. 키리가 교장은 이런 절망적 상황을 좀더 긍정적으로 변모시키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간직해왔고, 현실 속에서 실천한 것이다. 키리가 교장의 융통성 있는 수업료 납부 방식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응은 대단히 긍정적이다. 이제 적어도 수업료가 없어 학업을 도중에 그만둬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 셈이다.

케냐 키바키 대통령.(GAMMA)
부모의 노동력이나 현물 제공으로 수업료를 대납한 학생들은 학업에도 더욱 열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식의 교육을 위해 자신들이 제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치는 부모의 헌신적인 모습이 자녀들에게 강한 의지와 동기를 부여한 셈이다. 학생들의 강한 의지와 동기 유발은 당연히 학업 성취도의 향상으로 귀결된다. 마낭가 중등학교는 비록 농촌 지역에 기반을 둔 학교라서 도시의 명문학교와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1989년 문을 연 이후 꾸준히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본보기가 되고 있다.

케냐에서도 일반 대중들의 교육열은 매우 뜨겁다. 교육이 사회적 신분 상승의 기회일 뿐 아니라 교육의 가치에 대한 일반적 인식이 급격하게 변해왔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마사이족은 소를 부의 척도로 여겼고, 키쿠유족은 토지가 사회적 지위와 부를 가름하는 기준이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가축이나 토지보다 교육이 더욱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교육은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로 부상했다. 문제는 생활수준에 걸맞지 않은 부담스러운 교육비가 높은 교육열에 찬물을 끼얹는 현실이다. 초등교육을 제외한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은 무상교육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음와이 키바키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는 초등교육도 보편적 무상교육이 아니었다. 음와이 키바키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건강과 무상 초등교육은 생득권”이라는 소신을 펼치며 선거운동에 임했고, 집권 이후 공약에 따라 지난해 1월부터 무상 초등교육을 전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키바키 새 정부가 들어서기 이전에 보편적 무상 초등교육은 선거를 전후해서 무성하게 거론되다가 선거가 끝나면 잠잠해지는 지극히 선심용 공약이었다.

무상 초등교육이 도입되었지만 과밀학급, 교사 수의 절대 부족, 열악한 교육시설 등 고질적 문제들이 산적해 있어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와 지원이 절실한 과제다. 무상 초등교육이 실시되면서 학교에 등록을 하는 학생 수는 급증한 반면 교사들의 수는 변함없기 때문에 과밀학급 문제가 발생하고, 교육의 질을 오히려 떨어뜨릴 개연성도 있다. 또 에이즈로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에게도 교육의 문을 개방하고 있으나, 이 어린이들에게 적절한 학교급식을 제공함으로써 건강한 상태에서 학업을 계속하도록 지원해야 하는 등 많은 난제가 놓여 있다.

아프리카 무상교육의 험난한 역사

경직된 방식에 묶여 한 사람의 꿈과 열정을 좌초시키는 비인간적 제도로서의 학교로 남기보다는 모두를 아우르는 노력과 의지로 참된 교육을 실현해나가려는 마낭가 중등학교의 시도가 훌륭한 결실을 맺을 때 교육의 진정한 정신이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시대정신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노동시장에서의 유연성과 융통성이라는 그럴싸한 완곡어법보다 더욱 절실한 것은 솎아내고 떨어뜨리기 식의 교육시장에서 학생을 본위로 하는 융통성인 셈이다. 특히 교육시장이 사회적 계급을 재생산하고 공고히 하는 제3세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