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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장기수’가 된 불법이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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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1-1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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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환경에서 수년씩 감금생활하는 그리스 불법이민자들… 합법적인 노동자들도 추방되기 일쑤

(사진/그리스 외국인 구치소 전경(맨위). 그리스 불법이민자의 수는 70여만명에 이른다. 길거리에서 무차별적으로 연행되는 불법이민자들(아래).이들의 인권은 누가 보장할 것인가)

지난주 그리스 이민자구치소에서는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에서 온 128명의 불법이민자들이 한달 동안의 목숨을 건 옥중단식투쟁을 마쳤다. 그리스 정부가 구치소에서 이들을 일단 석방할 것을 약속하자 오랜 단식을 푼 것이다. 이들은 모두 여권이나 신분증 없이 그리스에 입국했다가 바로 이민자구치소로 송치된 뒤 지금까지 구금상태로 지내왔다.

애매한 잣대, 사회질서에 해가 된다?

그리스 이민법에 따르면 불법입국자는 30일 동안 구금할 수 있으며 이후 본국으로 강제추방하거나 아니면 석방하게 돼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을 ‘사회질서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계속 구금해 왔다. 인도에서 온 몬도 오마르는 지난해 11월10일 석방이 됐어야 하는데도 지금까지 기약없는 구치소 생활을 견뎌야 했다.


25년 동안 외국인노동자, 불법이민자들의 권익을 위해 일하고 있는 변호사 이야트로풀루는 대부분이 오마르와 같은 처지라고 설명한다. 이들이 단식투쟁을 선택한 이유는 법정에서 판결을 받았지만 전혀 집행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야트로풀루는 “어떤 재소자들은 2∼3년씩 감옥에서 생활하고 있는 상태”라면서 “감옥의 열악한 환경과 기약없는 재소자 생활로 대부분 심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상황의 심각성을 전한다.

그가 재소자들과의 면담에서 확인한 불법이민자들에 대한 처우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열악하다. 40명이 수용한계인 방에 80명이 수용돼 있고 2개의 샤워기를 200명이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 최대일간지인 <에레프토로티피아>의 프사리스 기자는 “단식중인 불법이민자들과의 면담을 수차례나 시도했지만 이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 정부쪽의 방해로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리스 정부는 아무런 신분도 없는 이들을 사회에서 생활하게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불법이민자들이 여권이나 신분증을 비행기 안이나 화장실 등에 아예 버리고 입국해 무신분으로 정치적 망명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들의 출신국가조차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 정부는 외국인들이 합법적인 신분을 보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사회질서에 해가 될 소지가 있다’고 추정될 경우 강제추방해 왔다. 지난해 세르비아에서 유학온 한 학생은 학생신분이었음에도 강사의 애인과 사랑에 빠지자 강사의 압력으로 경찰에 의해 세르비아로 추방됐다. 그리스의 한 시골마을에서는 합법적인 신분으로 일하던 알바니아 청년이 인물이 출중해 많은 그리스 여자들이 사모했는데, ‘유부녀와 어울렸다’는 이유로 알바니아로 추방당했다. 정부에서 내세운 이유는 ‘사회질서를 해친다’는 것이었다.

법정에서도 외국인에 대한 차별은 피부로 느낄 수 있다. 17살의 알바니아 고등학생이 시위에 참가해 화염병을 던졌다는 죄목으로 9년형을 선고받고 지난 여름 집행유예로 풀려나온 경우도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나탈리아 마르티뉴(24)는 2년 전에 아테네에서 나이트클럽 종업원으로 취직돼 합법적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9월6일 경찰에 의해 갑자기 구속돼 현재 추방될 날만 기다리며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 그리스 경찰에서 밝힌 이유는 역시 ‘사회질서에 해를 끼친다’는 것이었다.

합법적인 신분증과 노동허가를 갖고 있다 해도 언제든지 추방이 이뤄지는 사례는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이야트로풀루는 자신이 맡았던 한 사건을 예로 들었다. 경찰에서 한 알바니아 청년의 여권을 조사한다고 경찰서로 데려가서는 여권이 가짜라고 그를 구속시켰다. 그리스 법정은 그의 여권이 진짜이므로 석방시키라고 판결했지만 그리스 경찰은 그를 알바니아로 추방해버렸다.

인권의 문제만은 아니다

(사진/사회질서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합법적인 외국 노동자들이 강제추방되고 있다.한 외국인 노동자가 자신의 여권을 들어보이며 석방을 호소하고 있다)
그리스 정부나 유럽연합의 원칙은 불법이민자들을 강제추방하는 것이다. 유럽연합이 창설된 이후 유럽은 ‘철옹성’을 구축해 왔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나 중국,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그리고 동유럽에서, 한해에도 수십만명씩 지리적으로 가까운 유럽으로 행로를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정치적인 망명자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거의 하늘의 별따기이다. 그리스 정부는 아프리카의 르완다와 쿠르드족만을 정치망명자 신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유럽연합의 통계를 보면 망명자는 96년에 350만명, 97년에 120만, 98년 30만으로 계속 줄어들었으며, 지난해에는 단지 15만명만을 망명자로 분류해 받아들였다. 반면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에서는 지난해 약 3천만명의 세계인구가 정치적인 난민 상태라고 밝힌 바 있다. 유럽연합과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의 통계를 비교해보면 유럽이 얼마나 외국이민자들에게 인색한지 알 수 있다. 따라서 정치·경제적 이유로 유럽으로 들어오는 대다수 외국인들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불법이민자로 살아가게 된다.

현재 그리스에는 불법이민자들이 70만여명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불법외국인노동자들의 실태는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할 수 있다. 남성들은 대부분 현지인 임금의 5분의 1을 받고 공장이나 농사, 막노동일에 종사하고 있고 여성들은 가정부일이나 노인간호일 등에 종사한다. 또한 일부는 마피아조직에 의해 강제로 매춘에 종사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스뿐만 아니라 유럽 모든 나라의 비숙련 육체노동분야는 불법이민노동자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저임금 불법이민자들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불법이민자들이 모두 떠나버리면 유럽이나 그리스경제는 붕괴되고 말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글·사진 아테네=하영석 통신원youngsig@otenet.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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