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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우린 정말 결혼 못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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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3-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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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시의 ‘동성결혼승인’에 보수교단 반발… 연이은 소송으로 법적 논란

샌프란시스코= 박여라/ 자유기고가 bbiraa@hanmail.net

51년 동안 함께 살아온 필리스 리온(왼쪽)과 델 마틴이 지난 2월12일 결혼식을 올린 뒤 샌프란시스코 시청 앞에서 시가 발급한 결혼증명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AP연합)
밸런타인데이를 이틀 앞둔 2월11일 샌프란시스코 시장인 개빈 뉴섬은 ‘동성결혼 승인’을 발표했다. 샌프란시스코 시청은 미국 최초로 동성결혼 증명서를 발급하기 시작했고, 바로 이어진 주말 연휴에도 업무를 수행했다. 전국 각지에서 동성 커플들이 결혼 등록을 하려고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비 속에서도 이들은 행복한 모습으로 우산을 받쳐들고 시청 건물 바깥까지 길게 줄지어 섰다. 일주일 만에 공식적으로 동성 커플 3천쌍이 탄생했다.

1주일만에 3천쌍 등록


하지만 아널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부시 대통령은 동성결혼에 대해 분명한 반대 의사를 내비쳤고, 샌프란시스코 법원에서는 공청회가 열려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보수층에서는 샌프란시스코시의 결정은 위법이라며 시를 상대로 고소하고, 샌프란시스코시 정부는 주정부를 상대로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샌프란시스코시는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라고 규정한 법은 명백한 차별이며, 모두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시청 앞은 방송 차량과 기자들로 연일 장사진을 이뤘다.

동성결혼을 가장 극렬히 반대하는 쪽은 보수계 그리스도 교단이다. “성서에 의해 동성애는 명백한 죄이니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신앙의 내용을 널리 알리고 가르칠 수는 있지만 타인에게 강제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게이가 성공회 주교가 될 수 있느냐’와 ‘샌프란시스코시에서 동성결혼이 가능하냐’는 맥락과 기준이 다른 논의다. 샌프란시스코시는 모든 종교와 비종교를 포함한다.

또 다른 반대 의견은 동성결혼이 인류의 미래에 돌이킬 수 없는 해악을 가져온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법원 판사들은 두번의 공청회에서 그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해 시의 결정을 연기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결혼한 첫 동성 커플인 레즈비언 인권운동가 필리스 리온과 델 마틴은 51년을 함께 살아온 80살 안팎의 ‘호호할머니’ 커플이다. 과연 이들을 부부로 인정하는 일이 헌법을 뜯어고쳐야 할 정도로 사회적 위협인가? 부시 대통령이 동성결혼 이슈로 자신의 대선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헌법 개정안을 지지하고 나선 일은 눈여겨볼 만하다. 동성결혼의 법적 인정은 기본권과 인권보장에 관한 문제이다. 버몬트주에서는 시민의 결합(civil union)도 결혼한 부부와 동등한 법적 지위와 권리를 갖는다. 캘리포니아 현행법은 동성 동거자(domestic partner)에게 16가지 권리를 줄 뿐이지만, 2005년 1월부터는 세금 혜택만 제외하고 거의 동등한 권리를 준다. 하지만 이는 연방법상 결혼과 관련된 1049가지 권리와 책임이 제공하는 혜택과 비교하기는 어렵다.

결혼관계가 아니면 법적으로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보험이나 세제상 혜택이 없다. 35년을 함께 살아온 파트너가 죽었는데 장례 절차에서 법적으로 아무런 결정권이 없다. 게다가 고인의 명의로 되어 있는 집과 사업을 무상으로 물려받을 권리도 없는 탓에 엄청난 상속세를 내야 하고, 그 상속세를 감당할 수 없으면 갑자기 길거리에 나앉게 된다. 배우자가 죽었을 때 정부가 지급하는 국민연금도 당연히 못 받는다. 상대가 외국 국적을 가진 경우 그가 이민올 수 있도록 초청할 자격도 없다. 자녀 양육 등 아주 복잡한 문제부터 국립공원이나 놀이동산에서 입장료 가족할인을 받을 수 없다는 사소하지만, 분명한 문제도 있다.

논란은 대선까지 이어진다

현 단계에서 샌프란시스코시의 동성결혼 허용은 상징적 의미를 뛰어넘기는 이르다. 결혼 등록 사실이 일상의 권리까지 보장하려면 거쳐야 할 법적 단계가 많이 남았고, 그 과정도 그리 만만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뉴섬 시장은 자신의 정치 생명이 이번 동성결혼 이슈로 인해 끝장날지라도 모든 시민이 공평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굳은 소신을 거듭 밝혔다. 법정에서의 법률 논쟁은 물론이고 이 이슈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정치가들의 정쟁은 오는 11월의 대통령 선거는 물론, 그 뒤까지도 오래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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