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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마지막 해방구, 카렌의 혼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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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2-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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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심장부’ 랑군을 찾은 최고사령관 보먀 장군… 버마-타이 국경의 혁명세력은 길을 잃는가

버마-타이 국경의 마지막 무장투쟁 세력인 카렌. 이 지역의 최고사령관인 보먀 장군이 지난 1월16일 버마 군부의 실권자 카눈 장군을 비밀리에 만난 것으로 드러났다. ‘아시아 네트워크’는 비밀회담 내용을 단독입수해 카렌해방구의 오늘을 취재했다.

버마-타이 국경 카렌민족해방군 6여단 지역= 글 · 사진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 아시아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날 믿어도 돼. 우린 휴전협정 같은 거 절대 없다. 군사정부 무너질 때까지 싸운다.”

1993년 여름, 카렌과 정부군 사이의 ‘밀담’ 낌새를 채고 찾아갔던 나를 카렌민족해방군(KNLA) 최고사령관 보먀 장군(Gen. Bo Mya)은 쓸데없는 소리 말라며 타박했다.

“놈들을 떠보는 거야. 못 만날 것도 없잖아. 그렇더라도 휴전협정은 없어!”


1993년 가을, 다시 ‘밀담’ 정보를 안고 찾아갔던 나를 보먀 장군은 누그러진 목소리로 설득하려 들었다.

국경의 평화는 아직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카렌민족해방군 6여단 게릴라들.

공군 특별기로 특별히 모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10년이 지난 2004년 2월18일, 비선을 통해 확보한 올 1월 휴전회담 기록 테이프를 샅샅이 훑어보고 찾아간 내게 보먀 장군은 당당하게 말했다.

“50년을 웃도는 이 분쟁 상황을 어떻게든 풀어야 하지 않겠어. 그쪽도 평화를 바라는 듯하니….”

그사이 세상은 많이 변했다. 1948년 버마 독립과 때를 같이해온 카렌 민족해방투쟁은 1994년 마너플라우(Manerplaw)가 정부군 손에 함락당하면서부터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그로부터 카렌민족해방군은 전투다운 전투 한번 해보지 못한 채 게릴라전으로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꼴이 되었고, 국경전선은 버마 정부군이 장악해갔다. 그리고 해방구 마너플라우의 상실은 버마 민족해방·민주혁명전선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다. 발판을 잃은 혁명세력들은 뿔뿔이 흩어지며 급격히 수그러들었다.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국법질서회복평의회(SLORC)에서 국가평화개발평의회(SPDC)로 간판을 바꿔 건 버마 군사독재 정부는 놀라운 생존력을 발휘하며 자리를 굳혀왔다.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은 지난 16년 동안 감방만 들락거렸을 뿐, 효과적인 투쟁도 협상도 벌이지 못하는 정치력 부재를 드러냈다. 그리고 국제사회는 천날 만날 아웅산 수치를 석방하라고만 외쳤을 뿐, 실질적인 버마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군인독재자들의 가슴에 꽂힐 만한 눈길 한번 준 적이 없었다.

그사이, 버마는 ‘잊혀진 전선’이 되고 말았다.

영원할 것만 같던 전설적인 게릴라 지도자 보먀 장군의 얼굴에도 세월이 할퀸 자국이 또렷해졌다. 천하장사로 소문났던 그이는 병원 신세를 지는 일이 잦아지며 몸놀림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그러면서 강경투쟁파를 이끌었던 보먀 장군 입에서 어느덧 ‘평화’가 풀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랑군이 제발로 찾아올 상황이었는데…”

결국 지난 1월15일 보먀 장군은 휴전협상단 21명을 이끌고 적의 심장부인 랑군을 몸소 찾아갔다. 반대쪽, 랑군 정치를 주물러온 킨 장군(Gen. Khin Nyunt)은 지난해 총리직에 취임하며 ‘민주’를 외쳐대기 시작했다. 그이는 아웅산 수치를 비롯한 민족민주동맹 지도자들을 투옥한 상태에서 평화정착을 위한 7단계 ‘로드맵’도 내걸었다. 그러더니 결국, 마지막 남은 실질적인 소수민족 무장해방투쟁 세력인 카렌을 불러들였다.

라마보 힐(Ramabo Hill) 지역의 카레니군. 카렌이 휴전에 돌입하면서, 이제 실질적인 무장 민족해방투쟁 세력은 카레니군만 남게 되었다.
킨 장군은 버마 공군 5001호기를 방콕에 띄워 보먀 장군 일행을 특별히 모셔갔다. 랑군에서 만난 보먀 장군과 킨 장군은 두 손을 마주 잡고 함께 평화를 노래했다. 킨 장군은 랑군에서 보먀 장군의 생일잔치를 성대히 베풀어주며 휴전회담의 윤활유를 퍼부었다. 그로부터 국경 전선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보먀 장군이 랑군으로 간 까닭은?” 국경 혁명지역은 놀라 자빠졌다. 2월18일 버마-타이 국경 카렌민족해방군 6여단 지역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평화인지 굴복인지 알 수 없는 기 빠진 적막감만 맴돌았다. 1994년 2월 버마민주동맹(DAB)의 주축이던 카친독립군(KIA)이 군사정부와 휴전협정을 맺었던 그날 그 땅에서도, 그리고 1995년 1월 카레니군(KA)과 또 같은 해 6월 몬민족해방군(MNLA)이 각각 군사정부와 휴전협정을 맺었던 그날 그 땅에서도 나는 모두 똑같은 기운을 느낀 적이 있다.

국경에서는 보먀 장군의 랑군 방문을 두고 말들이 무성했다.

“민족민주동맹은 카렌민족연합과 군사정부 사이의 휴전회담을 원칙적으로 지원한다.”

재외 민족민주동맹(NLD-LA)이 밝힌 공식적인 환영 입장과 달리, 그 내부에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많았다. “속단하기는 너무 이르다. 휴전이 문제가 아니다. 이후 벌어질 정치협상 과정에서 랑군이 휴전을 무력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치협상에서 밀리면 휴전 파기의 책임도 모두 혁명세력에 넘어오고 만다.”

우 틴옹(U THin Aung) 부의장은 사견임을 전제로 유보적 입장을 취했다.

“민족해방·민주혁명의 상징성을 지닌 보먀 장군이 직접 랑군을 찾아간 게 근본적인 결함이다.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그쪽에서 제 발로 찾아올 상황이었다. 독재자들에게 선전거리만 제공하고 말았다. 게다가 휴전협상이었다고는 하지만 아무런 문서도 서명도 없어 그 실효성과 합법성마저 의심스럽고….” 민주개발네트워크(NDD) 의장 쵸쵸(Kyow Kyow) 같은 이들은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더구나 카렌민족연합(KNU) 내부에서도 상당한 반발이 있었다. “우린 보먀 장군이 직접 랑군에 가는 걸 반대했다. 그이가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절대로 랑군에 가지 않겠다고 해서 모두들 그렇게 믿었는데….”

중앙위원회 위원 가운데는 보먀 장군의 ‘독선’이 도졌다며 언짢아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카렌민족연합 사무총장 만 샤 라판(Mahn Sher Lapan)과 만나고 있던 중, 한 친구가 전화로 보먀 장군의 랑군행 결정 소식을 전해줘서 그걸 다시 만 샤에게 알려주었다.” 쵸쵸 말에 따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카렌민족연합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만샤 사무총장마저 보먀 장군의 결정을 모르고 있었다는 뜻인데, 그건 카렌 내부가 정치적으로 진공 상태였음을 증명한다.

△ 개별적인 휴전회담은 ‘절대’ 없다고 선언해온 버마민주동맹(DAB)은 1990년대 초·중반을 거치면서 각 민족해방 세력들이 정부군과 각개 휴전협정을 맺어 실질적인 기능을 상실했다. 그 뒤, 카렌민족연합 주도로 겨우 명맥만 유지해오던 버마민주동맹은 최근 카렌의 휴전회담으로 완전 붕괴 위기에 놓였다.

게다가 보먀 장군은 협상대표단 21명도 모두 혼자 골라잡았다. “만샤 사무총장이 빠진 대표단은 지역사령관 수준인 하위 군사직들로 채워졌다. 대표단 가운데 정치적 식견을 지닌 이는 투투레이(Htoo Htoo Lay) 사무부총장과 촐투윈(Kwal Htoo Win) 타보이 지역 의장 정도뿐이었다.” 카렌민족연합 중앙위원들은 저마다 이번 휴전회담을 정치적 고려 없이 ‘수확’에만 급급했던 일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탐라보 장군(Gen. Tamla Bow) 같은 경험 많은 이들이나 만샤 사무총장 같은 정치적 식견을 지닌 이들을 랑군쪽에서 거부했다는 말이 있다.”

옹나잉(Aung Naing) 같은 국경 기자들은 이번 랑군 휴전회담에 카렌은 ‘동네 협상단’을 파견했다고 비꼬았다. 보먀 장군의 랑군 방문을 바라보는 여타 소수민족 해방투쟁 세력들도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그건 카렌쪽 일일 뿐이다. 그쪽이 말한 ‘연속적인 정치투쟁’이 대체 뭘 뜻하는지? 정치적 고려 없는 추상적인 휴전회담 같다.” 카레니(Karenni)의 정치대표기구인 카레니민족진보당(KNPP) 사무총장 리몬드 투(Rimond Htoo)는 각기 자신들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못내 아쉬워했다.

‘밀담’과 ‘독선’의 끝은…

“카렌이 이미 평화협정을 맺은 다른 소수민족들 짝 나지 않기만을 빈다. 휴전의 대가로 카렌이 벌목권을 인정받는 식이라면, 버마 평화에도 시민 안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샨 무장해방 세력들 가운데 유일하게 생존한 샨주군(SSA) 여성대변인 쿠르센(Khur Hsen)은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2004년 2월 버마 국경은 숨이 넘어가고 있다. 하늘은 또 왜 그리 텁텁한지! ‘독선적인 랑군 방문’ ‘얻은 것 없는 휴전회담’ ‘흩어진 혁명전선’….

보먀 장군의 ‘역사적’인 랑군 방문으로 현대사에서 가장 길고 지루한 길을 걸어 오던 카렌-버마 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결론짓기에는 아직도 국경의 어둠이 너무 깊다. 국경 사람들은 여전히 배고픔과 공포라는 전통적인 화두를 붙든 채 살아가고 있다. 이미 길 잃은 버마 민족해방·민주혁명전선은 이제 막다른 골목으로 몰렸다.

랑군 독재자들은 마지막 남은 고지 ‘카렌’이 총을 내리는 순간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랑군의 평화를 국경의 평화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고단한 상상력이 필요할 뿐이다.

지난 15년 동안 버마전선을 따라오면서 ‘밀담’과 ‘독선’으로 민족해방·민주혁명전선이 무너져내리는 꼴을 보아온 내 눈엔 아직도 갓밝이 기운조차 차오르지 않았다.

여전히, 버마는 잊혀진 전쟁터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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