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 ‘킹 · 드류 병원’, 잇따른 의료사고와 방만한 운영으로 수술대에
로스앤젤레스= 글 · 사진 신복례/ 전문위원 boreshin@hanmail.net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마지막 ‘상징’이 몰락하는가.
미국 최대의 흑인 전문병원인 로스앤젤레스(이하 LA)의 ‘마틴 루서 킹 주니어 & 드류 메디컬센터’(약칭 킹·드류 메디컬센터)가 잇따른 의료사고와 방만한 운영으로 폐쇄 위기에 몰렸다. 이 병원은 흑인운동이 쇠락하는 가운데서도 ‘흑인을 위한, 흑인에 의한’ 병원으로 30여년간 명망과 지위를 지켜왔다. 그 상징성을 인정해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모든 예산을 지원하는 미국 유일의 병원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병원쪽의 관리 소홀로 환자들이 무려 5명이나 사망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해 결국 스스로 수술대에 오르고 말았다.
‘와츠폭동’ 뒤 불모지에 세워져 번창
킹·드류 병원은 지난 1965년 미 인종차별사의 최대 오점인 ‘와츠폭동’의 결과물로 탄생했다. 와츠는 LA시 남부의 흑인 밀집지역인 사우스 센트럴의 중심도시다. 서부에서 가장 많은 흑인들이 살고 있다. 폭동 뒤 진상 조사를 맡은 연방정부 산하 맥콘위원회는 인종차별 외에 이 지역에 병원이나 보건소가 단 한 군데도 없는 것이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보고했다. 연방정부와 지역행정을 책임진 LA카운티는 이 지역에 대형 종합병원을 짓기로 하고 1968년부터 공사에 착수했다. 폭동의 진원지인 와츠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인 윌로우브룩에 터전을 잡았다. 3년여의 역사 끝에 1972년 3월27일 드디어 병원이 개원하고 첫 환자를 맞았다. 병원 이름은 당연히 흑인 평등운동의 선구자인 킹 목사의 이름을 따 ‘마틴 루서 킹 주니어 종합병원’으로 명명됐다. 당시 분위기를 감안해 병원 행정부터 의사, 간호사에 말단 용역직원까지 모두 흑인들로만 구성됐다. 소유주이자 관리감독을 맡은 LA카운티 당국의 책임자조차 흑인이 돌아가면서 맡았다. 연방정부는 설립 비용에 운영예산의 절반을 지원하기로 했다. 흑인사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이 병원은 1982년 남가주 최대의 혈관질환 전문병원이던 찰스 드류 의과대학과 제휴협정을 맺고 확대, 개편했다. 미 혈관의학의 효시로 꼽히는 찰스 드류 박사의 이름을 합쳐 병원 이름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 드류 메디컬센터’로 바뀌었다.
킹·드류 병원은 이후 번창 일로를 걸었다. 특히 갱과 폭력 다툼이 많은 지역의 특성상 총상, 자상 등 외상 환자들이 대부분이었고 이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병원으로 자리잡았다. 또 와츠 지역은 신생아 사망률이 미국에서 최고였다. 킹·드류 병원은 산부인과와 소아과 전문의들을 집중 배치하고 ‘신생아 클리닉’을 만들었다. 그 결과 병원은 미국 전체에서 가장 명망 있는 신생아 전문병원으로 떠올랐다. 한편으로는 드류 의과대학에서 관련 전문의 양성을 맡아 전국에서 흑인 의학도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당직 간호사, 심전계 판독도 못해
이 병원에 암운이 드리운 것은 지난해 3월이다. 올루치 맥도널드라는 20살 청년이 응급실로 실려오면서부터다. 급성 장폐색으로 구급차에 실려온 맥도널드는 병원에 온 지 8시간 만에 복도에서 자신의 구토물에 널브러져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발견 당시 환자는 평상복 그대로였고, 부검 결과 아무런 응급 조치도 취해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충격이 가라앉기도 전인 불과 4일 뒤에 똑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이번엔 50대 패혈증 환자가 응급실에 들어왔으나 또 사망했다. 이 환자는 하룻동안 방치된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
사고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넉달 뒤인 7월엔 두명의 여성 환자가 사망했다. 사인은 더욱 어이가 없었다. 가슴에 심전계를 부착하고 병실에 있던 이들은 급작스러운 이상징후를 일으켰다. 당연히 간호사실에 연결된 심전계가 이상신호를 나타냈다. 그러나 당직 간호사들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뒤늦게 병실을 찾은 간호사들 앞엔 싸늘한 시신이 누워 있었다. 12월에 발생한 다섯 번째 희생자도 앞선 사례와 똑같은 상황에서 간호사들이 이상신호를 방치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
연방정부가 뒤늦게 진상 조사에 나섰다. 전국의 병원을 관리감독하는 대통령 직속 의학보건센터가 12월 중순 조사단을 파견해 원인 규명에 들어갔다. 한달여간의 조사 끝에 나온 실태보고서는 미 의료계를 발칵 뒤집어놓기에 충분했다. 조사결과 병원의 간호사 가운데 상당수가 전문교육 과정을 거치지 않은 간호보조사들로 밝혀졌다. 지난해 사망사고 때의 당직도 바로 이들이었다. 이 무자격 간호사들은 심전계의 판독 방법조차 알지 못했다. 이상신호는 인지했으나 무엇을 뜻하는지는 몰랐다는 것. 그나마 간호사 수가 태부족해 당직자가 자리를 지키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또 이 병원에서는 무책임한 환자 방치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응급환자도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경우가 아니면 치료 순번이 뒤로 밀리는 경우가 잦은 것으로 드러났다. 앞선 맥도널드의 경우는 이런 무책임이 낳은 끔찍한 결과였다. 더 충격적인 것은 병원 당국과 의사들이 이같은 현실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이들은 한술 더 떠 간호사들에게 환자의 상태를 ‘과장 보고하지 말 것’을 근무수칙으로 강요했다. 그 결과 이 병원의 간호사들은 분초를 다투는 위급상황이 아니면 ‘응급’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월 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특종 보도로 조사보고서가 공개되자 미 국민들은 충격과 분노로 할 말을 잊었다. 비난의 화살은 LA카운티 당국으로 쏟아졌다. 지난해 첫 사고 발생 이후 진상 조사와 병원운영 개선을 약속하며 법석을 떨었으나 사정은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더욱 궁지에 몰렸다. 뒤늦게 심각성을 깨달은 카운티 당국은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일단 킹·드류 병원의 행정책임자들을 전원 교체하기로 했다. 30여년간 의사와 간호사들은 인종 개방이 이뤄졌지만 아직 행정 파트는 흑인 일색이었다. 카운티 당국은 ‘병원 개혁 특별팀’을 구성하고 멤버를 전원 백인과 라틴 계열의 전문가들로 파견했다. 또 검찰쪽에 의료사고 관련자들과 당시 책임자들을 고발하고 수사를 공식 요청했다.
폐쇄 반대 시위, 폭동 재발 우려
그러나 파문은 더욱 커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조사단의 보고가 모두 사실로 확인될 경우 연방정부 규정에 따라 예산지원이 전액 삭감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해마다 연방 예산지원의 규모는 병원 1년 예산의 절반이 넘는 2억2천만달러(2600여억원)나 된다. 이 예산이 삭감되면 킹·드류 병원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LA카운티 당국은 자체 개혁을 약속하며 연방정부에 선처를 호소하고 있지만 결과는 불투명하다. 게다가 지역언론의 추적 보도에 의해 카운티 당국이 수년 전부터 이 병원의 방만한 운영 사례를 파악하고 있었으면서도 정치적 파장을 의식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공신력이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다.
흑인사회의 반발도 거세다. 이미 조직적인 병원 지키기 운동이 시작됐다. 지난 1월24일에는 이 지역 연방 하원의원인 맥신 워터스(민주당)가 참석한 가운데 폐쇄반대 시위가 병원 앞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워터스 의원은 “병원의 폐쇄나 축소와 관련된 어떤 결정도 받아들일 수 없으며, 흑인사회의 강력한 투쟁에 직면할 것”이라고 앞장서 주장했다. 흑인 운동가들은 킹·드류 병원 사태를 ‘흑인사회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하고 당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미 LA 지역에선 와츠폭동에 이어 지난 1990년 한인 동포사회가 쑥밭이 됐던 4·25폭동까지 겪은 터라 킹·드류 병원 사태가 지닌 폭발성에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미국 최대의 흑인 전문병원인 로스앤젤레스(이하 LA)의 ‘마틴 루서 킹 주니어 & 드류 메디컬센터’(약칭 킹·드류 메디컬센터)가 잇따른 의료사고와 방만한 운영으로 폐쇄 위기에 몰렸다. 이 병원은 흑인운동이 쇠락하는 가운데서도 ‘흑인을 위한, 흑인에 의한’ 병원으로 30여년간 명망과 지위를 지켜왔다. 그 상징성을 인정해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모든 예산을 지원하는 미국 유일의 병원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병원쪽의 관리 소홀로 환자들이 무려 5명이나 사망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해 결국 스스로 수술대에 오르고 말았다.

병원 종사자들에서 환자까지 흑인 일색이던 킹·드류 병원이 의료사고를 계기로 행정책임자들을 백인과 라틴계열 전문가로 교체했다.
킹·드류 병원은 지난 1965년 미 인종차별사의 최대 오점인 ‘와츠폭동’의 결과물로 탄생했다. 와츠는 LA시 남부의 흑인 밀집지역인 사우스 센트럴의 중심도시다. 서부에서 가장 많은 흑인들이 살고 있다. 폭동 뒤 진상 조사를 맡은 연방정부 산하 맥콘위원회는 인종차별 외에 이 지역에 병원이나 보건소가 단 한 군데도 없는 것이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보고했다. 연방정부와 지역행정을 책임진 LA카운티는 이 지역에 대형 종합병원을 짓기로 하고 1968년부터 공사에 착수했다. 폭동의 진원지인 와츠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인 윌로우브룩에 터전을 잡았다. 3년여의 역사 끝에 1972년 3월27일 드디어 병원이 개원하고 첫 환자를 맞았다. 병원 이름은 당연히 흑인 평등운동의 선구자인 킹 목사의 이름을 따 ‘마틴 루서 킹 주니어 종합병원’으로 명명됐다. 당시 분위기를 감안해 병원 행정부터 의사, 간호사에 말단 용역직원까지 모두 흑인들로만 구성됐다. 소유주이자 관리감독을 맡은 LA카운티 당국의 책임자조차 흑인이 돌아가면서 맡았다. 연방정부는 설립 비용에 운영예산의 절반을 지원하기로 했다. 흑인사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이 병원은 1982년 남가주 최대의 혈관질환 전문병원이던 찰스 드류 의과대학과 제휴협정을 맺고 확대, 개편했다. 미 혈관의학의 효시로 꼽히는 찰스 드류 박사의 이름을 합쳐 병원 이름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 드류 메디컬센터’로 바뀌었다.

킹·드류 병원의 전경. 잇따른 의료사고와 방만한 경영으로 폐쇄위기에 몰려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