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혁명에 대한 믿음 하나로 16년 동안 버마-타이 국경을 지켜온 유일한 의사
버마-타이 국경= 옹 나잉(Aung Naing)/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이 병원에 들어오기만 하면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픈 적이 없는 건장한 버마 사나이 탄소(30·Than Soe)가 무슨 이유로 병원을 찾았고, 왜 병원에서 안도감을 느낄까?
타이-버마 국경 매솟에 자리잡은 매타오(Mae Tao)병원에서는 심심찮게 ‘건강한’ 이들을 만날 수 있다. 타이로 넘어와 날품을 파는 불법 버마 노동자들에게 매타오는 병원이기보다 ‘해방구’ 노릇을 해왔다. 바로 닥터 신티아(45·Synthia)가 있었던 탓이다.
1988년 ‘랑군의 봄’이 군사독재자들에게 총칼로 짓밟힌 뒤 수많은 젊은이들이 버마-타이 국경으로 빠져나올 때, 갓 수련을 마친 카렌족 출신 의사 신티아는 주사기 3개만을 들고 산악 밀림 대열에 합류했다.
“붕대가 다 떨어졌어요.” “지혈제도 바닥났고… 해열제도 없고… 소독약도….” 이런 말을 귀에 못박히도록 들으면서 신티아는 사람과 혁명에 대한 믿음으로 버텨냈다. 그사이 국경에 합류했던 제법 많은 의사들은 저마다 살길을 찾아 미국으로 오스트레일리아로 유럽으로 떠났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뒤, 신티아는 버마-타이 국경을 지키는 유일한 의사가 되어버렸다. “몸이든 정신이든 아픈 이들을 돌보라는 게 의사잖아요. 타이 경찰에 쫓기는 버마 불법노동자들의 아픔도 ‘치료’ 대상이 되었는데, 사실 이건 정치가 치료해야 할 몫이지만….” 신티아는 그렇게 갖가지 고통을 당하는 국경 소수민족과 버마인들에게 안식처가 되었다. 처음부터 대책도 없이 ‘무료치료’를 내걸었던 신티아는 오직 열심히 일하는 모습 하나로 돌파구를 찾아냈다. 다행히 그녀에게 감동받은 세상은 1999년 ‘조나탄 만 세계인권의료상’과 ‘존 험프리 자유상’을 안겨주며 성원했다. 2002년에는 ‘막사이사이상’이 뒤를 이었다.. 그렇게 해서 지금 매타오병원은 분만실에다 소아병동, 엑스레이를 갖춘 수술실과 약국까지 갖춘 ‘거대한’ 병원으로 국경을 돌보고 있다. “저 개인에게만 자꾸 초점을 맞추면 전체가 뒤틀려요. 국경을 오해할 수 있단 말이죠.” 신티아는 달려드는 국제언론들을 거북해했다. “이 국경이 얼마나 넓은데,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의료인력이 필요해요.” 그래서 신티아는 매년 20~30명에 이르는 숙련 간호사를 길러내는 데 전력을 투입해왔다. “실패한 프로젝트가 없어. ‘불가능은 없다’란 말의 뜻을 신티아를 보며 느꼈어.” 한때 매타오병원을 도왔던 버마계 캐나다인 닥터 민탄(Myint Than)의 말처럼. 말 없고 나서기 꺼리는 신티아는 ‘가지지 않는’ 단순한 삶의 모습으로 국경 사람들에게 깊숙이 들어가 있다. “버마 상황을 복구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릴 거예요. 그때까지 나도 같이 가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신티아(사진/ 정문태)
“붕대가 다 떨어졌어요.” “지혈제도 바닥났고… 해열제도 없고… 소독약도….” 이런 말을 귀에 못박히도록 들으면서 신티아는 사람과 혁명에 대한 믿음으로 버텨냈다. 그사이 국경에 합류했던 제법 많은 의사들은 저마다 살길을 찾아 미국으로 오스트레일리아로 유럽으로 떠났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뒤, 신티아는 버마-타이 국경을 지키는 유일한 의사가 되어버렸다. “몸이든 정신이든 아픈 이들을 돌보라는 게 의사잖아요. 타이 경찰에 쫓기는 버마 불법노동자들의 아픔도 ‘치료’ 대상이 되었는데, 사실 이건 정치가 치료해야 할 몫이지만….” 신티아는 그렇게 갖가지 고통을 당하는 국경 소수민족과 버마인들에게 안식처가 되었다. 처음부터 대책도 없이 ‘무료치료’를 내걸었던 신티아는 오직 열심히 일하는 모습 하나로 돌파구를 찾아냈다. 다행히 그녀에게 감동받은 세상은 1999년 ‘조나탄 만 세계인권의료상’과 ‘존 험프리 자유상’을 안겨주며 성원했다. 2002년에는 ‘막사이사이상’이 뒤를 이었다.. 그렇게 해서 지금 매타오병원은 분만실에다 소아병동, 엑스레이를 갖춘 수술실과 약국까지 갖춘 ‘거대한’ 병원으로 국경을 돌보고 있다. “저 개인에게만 자꾸 초점을 맞추면 전체가 뒤틀려요. 국경을 오해할 수 있단 말이죠.” 신티아는 달려드는 국제언론들을 거북해했다. “이 국경이 얼마나 넓은데,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의료인력이 필요해요.” 그래서 신티아는 매년 20~30명에 이르는 숙련 간호사를 길러내는 데 전력을 투입해왔다. “실패한 프로젝트가 없어. ‘불가능은 없다’란 말의 뜻을 신티아를 보며 느꼈어.” 한때 매타오병원을 도왔던 버마계 캐나다인 닥터 민탄(Myint Than)의 말처럼. 말 없고 나서기 꺼리는 신티아는 ‘가지지 않는’ 단순한 삶의 모습으로 국경 사람들에게 깊숙이 들어가 있다. “버마 상황을 복구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릴 거예요. 그때까지 나도 같이 가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