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바야흐로 상어알 수난시대!

493
등록 : 2004-01-14 00:00 수정 :

크게 작게

러시아산 캐비아의 명성이 저물고 있다… 옛 소련 붕괴 뒤 불법 채취 · 유통으로 몸살 앓아

지난해 연말 성탄절, 러시아 극동 하바로프스크 인근 군용 공항에서 모스크바로 떠날 예정이던 러시아 공군 소속 튜플레 154기가 지역 검찰당국의 갑작스러운 수색 명령에 따라 출발이 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실을 처음 보도한 일간 <가제타>에 따르면 수색 결과 기내에는 불법으로 모스크바로 유통하려던 5.5t 분량의 연어알과 200kg의 캐비아가 실려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공군 당국은 이 물자가 국방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지만 수사진의 중간 발표에 따르면 이 알들은 모스크바 고위관리들의 신년맞이 식탁용으로 준비된 것이었다.

백 철갑상어알임을 표시하는 빨간색 뚜껑의 캐비어.

고위당국자들 ‘캐비아 마피아’

민물에서 나서 성장기에는 바다에서 살다가 다시 민물로 돌아와 산란기를 맞는 희귀어류군에 속하는 철갑상어에서 채취하는 검은색의 알 ‘캐비아’는 비교적 다량으로 잡히면서 양식도 용이한 붉은색의 연어알보다 월등하게 선호도가 높다. 그 희귀성 때문에 ‘러시아 캐비아’라는 수출명으로 전 세계 소비물량의 90%를 장악했던 전통적인 상어알 강국인 옛 소련에서조차 각 해역에서 학문적 목적 이외 상업 용도의 철갑상어 포획이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다. 유일하게 상업적 목적의 포획이 허가된 지역은 카스피해뿐이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상어알 불법 채취와 이렇게 채취된 알의 불법 유통은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 이번 하바로프스크 군용기 수색 사건도 사실 러시아연방극동관구 내무 경찰청과 하바로프스크 경찰청이 합동으로 지난해 5월17일부터 지역 철갑상어 불법 포획 및 상어알 불법 채취를 뿌리뽑고자 시행한 ‘블록 포스트 동방’이라는 작전 결과에 따른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사건 외에 굵직한 성과로는 지난해 10월 상어알 불법 채취자 5명을 현장에서 체포한 경우다. 이때 특이한 점은 불법 유통에 지역 검찰당국 근무자들이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아직까지 어느 한 사건도 제대로 법정에 제출된 적이 없다. 이런 상황을 놓고 현지 언론에선 심심찮게 사건에 연루된 고위 당국자들을 일컬어 ‘캐비아 마피아’라고 빈정대기도 한다.

러시아 대형 상점에 진열된 캐비어 상품들. 이중 80%가 불법제품들이다.
자연보호 대상인 철갑상어를 보호해야 할 당국자가 상어알 불법 채취에 직접 연루된 사례는 돌이켜보면 옛 소련 시절인 197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태평양 청어’라는 상품명을 붙인 채 불법으로 밀수출하려던 캐비아의 일부가 모스크바 국영상점에 우연히 배달되었다. 깡통을 열어보니 청어 대신 검은 알이 튀어나와 일부 상점 직원들이 횡재하는 웃지 못할 사건이 발생했다. 이 일로 스탈린 시절부터 옛 소련의 어업부 장관 자리를 독점해온 알렉산드르 이슈코프가 전격 해임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사건의 전모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업부 고위관리가 깊숙이 개입된 것으로 추정됐다.

맛도 좋으면서 고단백 영양식품으로 공인받은 러시아산 철갑상어알은 당초에는 채취 지역 중심의 좁은 소비자 망을 갖고 판매되어 세계적으로는 그렇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훌륭한 맛을 유지하기 위해선 소금을 약간 쳐서 절여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유통기간이 긴 경우 금방 상하기 때문에 운송이 발달되지 않았던 당시에는 수출이 불가능했던 셈이다. 본격적으로 러시아 캐비아가 상류층 인사의 고급 상품으로 선보인 것은 러시아에 철도가 건설되던 19세기 중엽의 일로 기록된다. 1860년대 중반 파리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의 러시아 전시관에서 처음 캐비아가 선보인 이후 러시아산 철갑상어알은 유럽 상류층의 선호식품으로 각광받았고, 이후 유럽의 성탄절 식탁이나 칵테일 파티에는 캐비아를 이용한 팬케이크나 샌드위치가 빠지지 않았다.

러시아산 저물고 이란산 뜬다?

러시아 캐비아는 전통적으로 채취된 알의 보관방법에서, 최고의 맛을 보존하면서도 유통과정에서 상하지 않을 만큼 적절한 양의 소금에 절여져 다른 지역 상품에 견줘 절대우위를 확보해왔다. 게다가 철갑상어의 품종에 따라 알을 정확하게 분리해 포장함으로써 이런 노하우가 개발되지 않은 타국산 상어알과는 차별성을 가지면서 소비자 선호도의 우위를 유지해왔다. 이를테면 빨간색 뚜껑은 흰 철갑상어의 알이고 노란색은 비늘이 별 모양인 철갑상어 그리고 청색은 보통 품종의 철갑상어의 알임을 표시한다.

하지만 러시아 캐비아의 이런 독보적 지위는 옛 소련의 해체와 더불어 점차 위기 일로에 놓인다. 우선 옛 소련 해체 이후 합법적 철갑상어 포획 및 상어알 채취 지역인 카스피해에서 연안국인 독립국가연합 일원의 카자흐스탄·타지키스탄·아제르바이잔·러시아와 옛 소련권 국가가 아닌 이란 등 총 5개국이 채취 권리를 분할했다. 그와 함께 1998년 희귀어류보호라는 세계 여론이 드세짐에 따라 카스피해 지역 철갑상어알 채취도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생물의 국제통상에 대한 유엔 상설위원회’와 같은 국제기구의 권고에 따라 그간의 채취량을 대폭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각 나라는 줄어든 채취량 가운데서 적당량의 쿼터를 승인받았다. 강화된 규제는 그렇지 않아도 희귀성 때문에 불법 채취가 만연하던 캐비아 산업을 더욱 암시장으로 몰고 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각종 불법 채취된 알들이 러시아 캐비아라는 이름으로 반출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가짜가 판치는 세상이다 보니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어차피 러시아산이라고 사봤자 잘못하면 불법으로 제조한 다른 지역 알을 비싼 값에 사게 되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이래서 차라리 다른 지역에서 직접 사는 게 낫다는 경향도 생겼다. 이런 조류를 타고 현재 50g짜리 조그만 병 하나에 50유로에 팔리는 러시아 캐비아 대신 절반 정도의 값에 살 수 있는 이란산 캐비아의 수요가 급증했다. 1980년대 말 러시아가 연간 200t, 이란이 70~90t을 유럽으로 수출했으나, 2000년의 통계는 러시아가 350t을 수출한 데 비해 이란산 판매는 거의 200t에 이르렀다. 최근 가짜 러시아 캐비아 제작에 미국산 가짜가 등장해 주목을 끈다. 이는 옛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의 수요가 유럽인들의 수요를 넘어선 데 기인한다. 1998년 미 행정부는 러시아산 캐비아 수입에 대한 철저한 규제에 착수했다. 이런 엄격한 규제 상황 아래서 편법으로 가짜 캐비아를 제작하는 일이 늘어났다. 그 결과 2000년 7월 한때 13.6t의 캐비아 수입판매로 미국 내 최대 상어알 회사로 등록됐던 ‘유에스 캐비아 & 캐비아 로크윌’과 대표들이 전격 체포되기도 했다.

“차라리 불법 채취 합법화하라”

캐비아는 적법한 해외 유통경로가 없는 상황에서 보따리장수를 통해 유럽으로 유통되는 양을 제외하고 나머지 물량은 러시아 내 소비수준이 높은 대도시에서 유통된다. 전문가들의 평가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 내 대형 상점 등에서 공공연히 판매되는 캐비아는 정해진 물량에 입각해 공인허가를 받은 제품이 아니고 거의 80%가 조작된 인가에 의해 유통되는 불법 제품들이다.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주요 유통경로는 러시아 남부 체첸 지역 마하취칼~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의 남북을 잇는 경로다. 주로 철도로 이동되는 이 불법 캐비아의 주요 운반책, 혹은 운반 보조자들은 거의 철도 승무원들로 알려져 있다.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주요 기차역에서는 한 차례씩 대대적인 검문이 이뤄지곤 하지만 의례적인 일로 치부되고 있다.

현지에서 불법 캐비아 중개업을 하는 한 러시아인은 “차라리 현재 카스피해 일대에서 성행하는 불법 채취업을 합법화하는 게 판매자나 소비자에게 훨씬 유리하다”면서 “철갑상어가 희귀어류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 차원에서 양식기술 개발 같은 장기적 투가가 긴요하지 않겠느냐”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글 · 사진 박현봉 전문위원 parkhb_spb@yahoo.com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