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중국이 직면한 문제는 무엇인가… 실업 · 부패 등과 화약고 같은 대만 · 북한 문제를 넘어
중국인들의 술자리에서 자주 회자되었던 해묵은 유머 한 토막이다. 미국의 레이건과 옛 소련의 고르바초프 그리고 중국의 덩샤오핑이 각자 길을 걷던 중 우연히 세 갈래 길로 나뉘는 길목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 중 두 방향으로 표지판이 붙어 있었는데, 한 갈래 길은 ‘자본주의’를, 다른 한 갈래 길은 ‘사회주의’를 가리키고 있었다. 미국의 레이건은 아무런 주저 없이 ‘자본주의’ 길을 따라 걸어갔고, 고르바초프는 잠시 망설이는 눈빛을 보이다 역시 레이건을 따라 ‘자본주의’ 길로 걸어갔다. 남은 사람은 중국의 덩샤오핑. 세 갈래 길 위에서 한참을 망설이던 덩샤오핑이 드디어 갈 길을 정했다. 그는 과연 어느 갈래 길로 갔을까.
2003년이 남긴 깊은 상처
레이건과 고르바초프가 시야에서 사라질 무렵, 덩샤오핑은 과감히 방향표지판을 바꾸기 시작했다. 원래 자본주의를 가리키는 표지판을 떼서 사회주의 표지판쪽으로 옮기고, 사회주의 표지판을 자본주의쪽 도로표지판으로 가져다 놓았다. 방향표지판을 바꾼 덩샤오핑은 아무런 주저 없이 사회주의 길을 따라 유유히 사라졌다. 그 뒤 덩의 후세대인 장쩌민과 후진타오 역시 세 갈래 길 위에서 아무런 망설임 없이 사회주의 길을 따라 걸어갔다. 훗날 중국 사람들은 무엇이 원래의 자본주의 길이었고 무엇이 사회주의 길이었는지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표지판을 바꾼 사회주의 길을 따라 걸은 지 26년의 세월이 지난 2004년 새해, 중국은 과연 어떤 표지판 위에 서 있을까. 중국 내 대표적인 격주간 시사잡지 <남풍창>은 신년특집 기획 서문에서 “우리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기대가 있다”고 했다. 그 ‘기대’란 바로 ‘대국으로 가는 길’이다. 그들은 지금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대국으로 가는 마음속 길’ 위에 멈춰서 있다. 2004년 새해, 중국은 과연 그 길 앞에서 무엇을 주저하고 있을까? 지난 2003년은 중국으로서는 그야말로 ‘다사다난’한 한해였다. 3월 초 개막된 제10기 전국인민대표자대회(전인대)에서 새롭게 선출된 후진타오-원자바오를 주축으로 하는 제4세대 지도부의 입김이 채 마르기도 전에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라는 희대의 전염병이 중국을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었는가 하면, 사스가 물러난 7월1일부터는 홍콩에서 터져나온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또 한 차례 대륙 정부를 바짝 긴장시켰다. 이 밖에도 하반기에 불거진 대만의 독립 문제와, 미국과 일본 등에서 줄기차게 압력을 행사한 인민폐 평가절상 문제, 미-일간 무역분쟁, 새 정부의 외교력을 시험한 북핵 문제 등 첩첩산중의 국내외 문제들이 지난해 내내 마치 ‘악령’처럼 중국의 심기를 괴롭혔다. 청년실업, 위험수위 넘었다 또 중국 인권운동의 새 지평을 연 ‘쑨즈강 사건’(광저우의 부랑자 수용소 안에서 한 청년이 맞아죽은 사건으로 촉발된 중국 민권운동)과 톈안먼 광장에서 일어난 농민들의 잦은 분신자살 기도, 텐펑산 전 국토자원부장을 대표로 하는 대규모 부패사건, 그리고 사상 최대의 대량 실업사태 등 갖가지 크고 작은 내우외환들 역시 지난해 중국이 직면했던 악재들이다. 비록 중국 최초의 유인우주선 ‘선저우 5호’의 발사 성공과 사스 여파에 불구하고 8.5%라는 초고속 경제성장률을 달성해 실추된 중국인들의 자존심이 조금 위로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2003년 한해는 분명히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그리고 그 생채기들은 다시 고스란히 치유해야 할 새해 과제로 남았다.
지난해 10월, 중국 공산당은 전국 각지의 간부들을 대상으로 ‘2003~2004년 중국 사회 정세에 대한 기본판단’이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새해 초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펴낸 ‘2004년 중국 사회 정세분석과 예측’이라는 백서에 실린 이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각 지방 간부들은 소득 격차와 실업, 부패 문제를 지난해 중국 사회 발전과정에서 발생한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로 꼽았으며, 이 중 올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회 문제로 실업 문제 해결을 꼽았다. 또 올해 간부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중요한 개혁으로는 ‘정치체체 개혁’이 1순위로 나왔으며, 그 다음으로 ‘기구인사 개혁’과 ‘소득분배제도 개혁’을 꼽았다. 이 밖에도 연말연시 각종 언론매체에 발표된 올해 중국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 역시 실업과 도-농간 소득 격차가 우선순위로 지적되었다.
중국 노동사회보장부 산하의 <노동일보> 기자는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공식 도시실업률은 4.2%이지만, 이 통계 안에는 농민과 대학생 실업률이 포함되지 않았다. 만일 이들을 포함하면 실질적인 도시실업률은 10%를 넘어선다”며 현재 중국 사회가 직면한 실업 문제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때문에 이른 시일 내에 정부 차원의 각종 효과적인 직업창출 정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조만간 심각한 사회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지난해 사스 등의 여파로 불거진 대학생을 포함한 청년실업 문제는 심각성이 더하다. 중국 시사주간지 <신문주간>의 관련기사에 따르면, 이러한 실업 여파로 인해 지난해 구직을 한 대학 졸업자들도 전년과 비교해서 임금이 무려 40%나 깎이는 ‘아픔’을 감수해야 했다.
이런 기업들의 전반적인 임금삭감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일자리를 찾지 못한 대학 졸업생들만 7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펴낸 ‘2004년 중국 사회 정세분석과 예측’에서도 대학생 실업 문제는 앞으로 몇년 동안 중국 사회의 가장 큰 난제가 될 가능성이 크며, 단기간 안에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런 국내 문제 외에도 올해 중국이 직면한 국제 문제 역시 중국 지도부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10일, 미국을 방문 중이던 중국 국무원 총리 원자바오는 하버드대학 강연에서 중국은 앞으로 “평화적인 발전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 발전과 더불어 세계 무대 위로 우뚝 일어서기는 하지만 결코 패권주의를 행사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왜 갑자기 ‘평화적인 부상’을 들먹인 것일까. 그것은 1990년대 초반 이후 서방 등지에서 끈질기게 제기해온 중국위협론에 대한 의도적인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발전은 결코 주변국에 해가 되지 않고 평화적이고 건설적인 도움이 될 것이니 그만 ‘의심’을 끄라는 소리다. 그러나 ‘평화적인 부상과 발전’에만 전념하기에는 현재 중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가 그렇게 평화적이고 건설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대두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중국 인민대학교 국제정치학과 스인홍 교수는 2004년 중국이 직면한 가장 큰 국제적 문제로 대만 문제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지난해 대만 총통 천수이볜의 대만독립시간표 및 국민투표를 통한 독립선언 발언 등으로 불거진 양안(중국-대만)간 위기는 올해 이후 2008년까지 중국에 가장 중요하고도 위험한 국제 문제로 대두될 가능성이 크다.
대륙 정부 입장에서는 올해 3월20일 치러지는 대만 총통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이며, 만일 천수이볜이 재선된다면 그것은 분명히 양안간 중요한 위기의 빌미로 작용할 것이다. 전쟁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대만 문제는 중국 국내 문제이기도 하지만 중-미 관계를 포함해서 주변국들간의 복잡한 관계가 얽힌 것이라서 국내 문제이자 국제 문제이기도 하다.”
천수이볜이 재선된다면…
스인홍 교수는 북핵 문제에도 주목했다. “현재 북핵 문제를 둘러싼 정세들에 많은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핵심적인 문제는 북한의 핵개발 포기와 한반도 비핵화,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조건으로서 미국의 대북 안전보장이다. 올해는 지난해 보다 상황이 좀더 유연해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지만 섣불리 낙관적인 상황을 기대하기에는 아직 무리다. 중국 입장에서는 대만 문제 다음으로 북핵 문제가 올해에도 역시 가장 중요한 대외적 현안이 될 것이다.”
다시 해묵은 농담 얘기로 돌아가자면, 2004년 중국이 선택해야 할 길은 더 이상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니다. 표지판을 바꿀 필요도 없다. 이미 마음속으로 정해놓은 길이 있지만 그 길로 곧장 달려가기에는 아직 숨을 고르지 못한 상태다. 갈 길은 멀고 문제는 첩첩산중이다. 2004년 새해, 집권 1년을 맞은 후진타오 체제는 지금 ‘대국으로 가는’ 표지판 위에서 깊은 심호흡을 하고 있다.
베이징= 글 · 사진 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표지판을 바꾼 사회주의’의 길을 가는 중국은 이제 대국을 꿈꾼다. 베이징 톈안먼 광장.
표지판을 바꾼 사회주의 길을 따라 걸은 지 26년의 세월이 지난 2004년 새해, 중국은 과연 어떤 표지판 위에 서 있을까. 중국 내 대표적인 격주간 시사잡지 <남풍창>은 신년특집 기획 서문에서 “우리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기대가 있다”고 했다. 그 ‘기대’란 바로 ‘대국으로 가는 길’이다. 그들은 지금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대국으로 가는 마음속 길’ 위에 멈춰서 있다. 2004년 새해, 중국은 과연 그 길 앞에서 무엇을 주저하고 있을까? 지난 2003년은 중국으로서는 그야말로 ‘다사다난’한 한해였다. 3월 초 개막된 제10기 전국인민대표자대회(전인대)에서 새롭게 선출된 후진타오-원자바오를 주축으로 하는 제4세대 지도부의 입김이 채 마르기도 전에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라는 희대의 전염병이 중국을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었는가 하면, 사스가 물러난 7월1일부터는 홍콩에서 터져나온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또 한 차례 대륙 정부를 바짝 긴장시켰다. 이 밖에도 하반기에 불거진 대만의 독립 문제와, 미국과 일본 등에서 줄기차게 압력을 행사한 인민폐 평가절상 문제, 미-일간 무역분쟁, 새 정부의 외교력을 시험한 북핵 문제 등 첩첩산중의 국내외 문제들이 지난해 내내 마치 ‘악령’처럼 중국의 심기를 괴롭혔다. 청년실업, 위험수위 넘었다 또 중국 인권운동의 새 지평을 연 ‘쑨즈강 사건’(광저우의 부랑자 수용소 안에서 한 청년이 맞아죽은 사건으로 촉발된 중국 민권운동)과 톈안먼 광장에서 일어난 농민들의 잦은 분신자살 기도, 텐펑산 전 국토자원부장을 대표로 하는 대규모 부패사건, 그리고 사상 최대의 대량 실업사태 등 갖가지 크고 작은 내우외환들 역시 지난해 중국이 직면했던 악재들이다. 비록 중국 최초의 유인우주선 ‘선저우 5호’의 발사 성공과 사스 여파에 불구하고 8.5%라는 초고속 경제성장률을 달성해 실추된 중국인들의 자존심이 조금 위로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2003년 한해는 분명히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그리고 그 생채기들은 다시 고스란히 치유해야 할 새해 과제로 남았다.

베이징 건설 노동자들. 중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빈부격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