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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베를린의 겨울, 중국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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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1-1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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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관광객 급증에 중국 수출 규모도 확대… “양심마저 저버린 경제외교”라는 비판도

중국인이 몰려온다
따스한 남쪽나라가 부쩍 그리워지는 베를린의 겨울, 파란 깃발을 앞세우고 활기차게 거리를 활보하는 무리들이 종종 눈에 띈다. 바로 중국인 단체관광객이다. 베를린 숙박업계도 중국인 손님맞이 준비에 한창이다. “중국 손님에게는 객실번호가 4로 시작하는 방을 배정하지 말 것” 등이 숙박업주 교육프로그램에서 강조되기도 하고, 중국어에 능통한 직원을 찾는 채용광고가 줄을 잇고 있다. 베를린시의 관광 사이트는 곧 중국어로도 서비스될 예정이며, 시정부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본토 음식 맛을 즐길 수 있도록 전문 음식점 개점을 앞장서서 지원하고 있다. 베를린뿐 아니라 다른 관광도시들도 앞다퉈 중국 관광객 유치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독일의 중국 유학생도 급증하는 추세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유학사기 등의 피해사례도 늘고 있다.

중국인 유학생 사기 피해도

2003년 독일을 찾은 중국 관광객은 약 20만명에 이른다. 독일과 중국은 2003년 2월에 체결한 양국간 비자협정을 통해 단체관광객에 한해 무비자 관광을 허가했다. 이에 따라 독일 여행업계는 중국 관광객 수가 머지않아 약 100만명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꽉 막힌 베이징과 상하이의 거리를 벗어나 독일의 아우토반을 맘껏 달려보자!” 오는 봄부터 시작되는 독일·중국 합작 여행사의 한 여행상품 광고 문안이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베엠베(BMW)의 고장 뮌헨까지 중형자동차를 몰고 속도 무제한의 독일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가히 아찔한 상품이다. 2003년에도 33%에 이르는 시장점유율로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지킨 독일 폴크스스바겐사도 이 관광상품을 지원하고 나섰으나, 교통 안전을 무시한 상업 제일주의라는 비판이 거세고 일고 있다.


단체관광객과 함께 중국인 유학생도 최근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독일 대학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중국인 학생 수는 2003년 겨울학기에 약 14만명에 이르렀고, 이로써 중국인 유학생은 단숨에 독일 내 최대 외국인 학생그룹으로 등장했다. 급증하는 유학생으로 인해 중국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어학학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가 하면, 이들을 대상으로 한 ‘유학 사기’ 등의 피해 사례도 늘고 있다. 가짜 어학증명서와 대학 졸업장 발급에 대해 독일 검찰의 조사가 시작되었고, 중국인을 대상으로 ‘사설 경영 대학’을 운영하며 폭리를 취한 이들이 법정에 서게 되었다.

1999년부터 한해도 거르지 않고 중국을 방문해온 슈뢰더 독일 총리는 지난 11월 또다시 중국을 방문하였다. 2003년 독일의 중국 수출 규모가 86억유로에 이르면서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독일의 아시아 제1교역국의 위치에 성큼 올라섰다. 상하이 공항과 상하이 중앙역을 연결하는 세계 최초 자기부상열차를 건설한 독일 업계는 이어 베이징과 상하이를 연결하는 중국 고속철도 사업 입찰에도 뛰어든 상태다. 입찰이 유력시되던 일본 신칸센 고속열차가 일본인들의 집단 매춘관광 파문으로 사실상 낙마하자 프랑스의 테제베(TGV)와 독일의 이체에(ICE)가 최종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때에 맞추어 슈뢰더 총리의 중국 방문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슈뢰더 총리는 이번 방문에서,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내려진 유럽연합의 대중국 무기 금수조치 철회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서슴없이 해버렸다.

플루토늄 공장 판매하겠다?

나아가 그는 중국 정부의 ‘하나의 중국’ 정책을 독일 통일과 비교하면서 지지를 표명하였고, 중국 정부에 독일의 플루토늄 가공공장을 판매하겠다는 약속까지 함으로써 독일 정가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독일 내에서는 2030년까지 원자력 발전소의 단계적 전면 폐지가 결정된 마당에, 그 기술을 중국에 수출하겠다는 계획은 연합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녹색당을 발칵 뒤집어놓았음은 물론이다.

또 슈뢰더 총리 환영 만찬회 연설에서 “독일 노조가 독일에서 사업하려는 중국 기업들에게 방해가 된다”는 상하이 시장의 발언에 슈뢰더 총리가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자, 독일 언론은 “노동조합에 기반한 정당인 사민당의 총재로서 양심마저 저버린 경제 외교”라고 비난을 퍼붓기도 하였다. 독일과 중국 양국간 관계가 한층 강화되는 시점에서 이뤄진 슈뢰더 총리의 이번 방문은 독일 내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면서 독일 정부의 대중국 정책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베를린= 글 · 사진 강정수 전문위원 jskang@web.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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