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수용 찬반 집회가 동시에 열린 6월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불법 난민·외국인 대책 국민연대’ 회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난민법과 무비자 제도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집회 참가자들은 난민과 무슬림의 증가가 국내 외국인 범죄로 이어지고 법제도를 흔들 수 있다며 걱정했다. 무대에 오른 한 남성은 “인도주의의 이름으로 난민을 받은 대가는 유럽에서 이미 잘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샤리아’라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자치경찰을 만들고, 샤리아를 어기는 사람에게 폭력을 일삼는다. 자신을 받아준 나라의 문화와 제도를 수용하지 않는 이슬람 난민을 보내는 게 옳지 않은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에서 교직에 있다 중동으로 갔다는 한 여성은 “(중동에서) 내 의사와 상관없이 강요로 내 몸을 검은 망토로 가리고 다녔다. 외국인 이교도의 다른 시각은 무조건 배척했다. 그들은 한국 법을 따르지 않고 샤리아를 따를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무턱대고 들어와 체류 중인 500명의 성인 남성의 본국 송환을 청원한다”고 했다. 난대연은 “특정 정당과 관련 없고, 기독교 단체와도 관련 없다”고 밝히면서 순수하게 난민 문제를 우려하는 시민들의 집회임을 강조했지만 일부 극우 성향 참가자가 가세하면서 곤욕을 치렀다. 극우단체 ‘엄마부대’의 주옥순 대표가 집회에 참석해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고,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회원이 무대에 올라 연설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난민을 반대하면서도 나름 진지한 논의를 해보겠다는 주최 쪽 의도가 왜곡된 것이다. ‘난민대책 정의행동’ 카페와 100여 명이 참여하는 ‘제주 예멘난민 결사반대’ 카카오톡 대화방에는 혐오 발언이 넘쳐나고 있다. 카카오톡 대화방은 “욕설, 정치 편향 등 논란이 될 수 있는 발언은 삼가라”고 공지했지만 일부 극단적 성향의 참석자들이 ‘문재인 대통령 난민 탄핵’을 언급하고, 근거가 부족한 무슬림 비하 발언과 예멘 난민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 대표적 사례가 “제주도에 있는 예멘 난민이 여중생을 성추행했다”는 이야기다. 난민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예멘 난민이 잠재적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이를 인용하고 퍼뜨렸다. 하지만 이는 예멘 난민 문제를 다룬 한 인터넷 기사 댓글에 제주도에서 여중생이 성추행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올라온 뒤 일파만파 퍼진 내용으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제주 경찰청 관계자는 “아직까지 예멘 난민이 제주도민에게 성희롱을 하거나 범죄를 저질렀다는 신고가 들어온 것은 없다”고 밝혔다. 한국인을 상대로 한 범죄는 없었지만 예멘인들끼리 싸워 경찰에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제주 서부경찰서는 7월1일 오후 4시께 제주시 한림읍의 한 선원 숙소에서 식사 뒤 설거지 문제로 다투다 주먹다짐을 하고 흉기를 들어 위협한 예멘인 난민신청자 두 명을 폭행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만 한 명이 흉기를 들고 위협한 점 때문에 특수폭행 혐의가 적용됐다. 제주 경찰청 “난민 범죄 신고 0건” 예멘인이 한국인을 해코지한 일이 없지만 외국에서 벌어진 일부 극단적인 사건·사고가 인터넷 카페와 메신저 등으로 빠르게 퍼졌고, 예멘 난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시선이 늘었다. 선입견을 갖고 예멘인을 대하는 제주도민도 생겨나고 있다. 제주 시내 한 호텔에 묵고 있는 예멘인은 “언론 보도 뒤 우리를 보는 제주도민들의 시선이 부정적으로 바뀌었음을 느낀다. 최근에는 한 남성이 우리에게 다가와 소리를 지르며 욕하는 것을 봤다”며 두려움을 나타냈다. 이슬람을 믿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 ‘한국에 들어오는 무슬림 수가 빠르게 늘어나면 한국이 이슬람화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국 사회에 이슬람교가 퍼지면 법과 제도도 이슬람 율법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지만 현실 가능성은 낮다. 충북 제천의 예사랑감리교회 변영권 목사는 “무슬림 500명이 들어와서 대한민국 이슬람화가 가속화한다고 걱정하는 것은 지나치다. 한국은 기독교인이 1천만 명이나 있지만 기독교 국가가 안 됐다”고 지적했다. 변 목사는 “여성들이 외국인과 낯선 종교를 믿는 남성에게 느끼는 공포감은 이해하지만 그런 공포가 타인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근거는 될 수 없다. 정부와 언론이 음모론이나 괴담이 퍼지지 않도록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고, 여성 안전 대책도 보완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근거 없이 퍼지는 소문과 인터넷에 넘쳐나는 혐오 발언은 확증편향이 되어 다시 무슬림 난민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강화하고 확산시키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정부 회피하면 안 돼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부)는 “난민을 반대하는 쪽에서 우려하는 부분이 있고, 이것이 다 거짓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난민 문제는 역사적으로 전세계에 걸쳐 있는 복잡한 문제로 다양한 분석과 대책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난민이나 무슬림 전체를 하나의 특성을 가진 집단으로 단순화해 혐오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바람직한 방향도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제도적, 정책적 책임과 해결의 열쇠를 쥔 정부는 ‘뜨거운 감자’ 앞에서 뒷짐을 지고 있을 뿐이다. 홍 교수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데 난민 문제가 곤혹스럽다고 답을 회피하면 안 된다. 난민을 받지 않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난민을 혐오하는 것이 문제 해결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린 뒤 난민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를 듣고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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