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린 여성 노동자가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적잖다. 하청 노동자라면 더욱 말하기 어려운 조건에 처한다. 지난 2월 한국여성민우회 등은 르노삼성자동차 본사 앞에서 이 회사의 성희롱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한겨레 류우종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다른 공장으로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녀는 공장에서 작업복을 입은 채 쫓겨나기도 하고 수차례 이사실로 불려가기도 하다가, 결국 그녀를 둘러싼 근거 없는 소문과 이야기만 남긴 채 해고를 당했다. 그녀가 원한 것은 회사의 제대로 된 사실 조사와 그에 따른 당사자의 사과였지만, 회사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회사는 “조용히 나가달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계약도 못 받고 너 하나 때문에 전체 직원이 짐 싸서 가야 한다. 혼자 조용히 나가면 다 해결될 일이다”라고 말했단다. 이것이 회사의 진심이었던 것이다. 의지했던 사람조차 외면할 때 “모르는 사람들은 하기 쉬운 말로 왜 그동안 참았냐고 해요. 근데 보세요. 뒤늦게라도 이렇게 말해봤지만 돌아오는 건 결국 해고예요. 그리고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고요. 학교 다니는 딸이 하나 있는데, 딸한테 얘기했어요. 앞으로는 부당한 일이나 조금 손해 보는 일이 있더라도 그냥 참고 살라고요.” 그 상담을 하고 한 달여가 흐른 뒤, 대학교 내 용역업체에서 근무한다는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몇 달 전 같은 소속의 하청업체 여성 직원이 대학교 정규직 직원에게 성추행을 당해왔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자신까지 그 사실을 알게 되어 현재는 행위가 중단되었지만, 지금이라도 뭔가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아마 해고된 그 하청 여성 노동자를 만나지 않았다면 당장에 고소라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겠지만, 여성 노동자가 이후에 겪는 과정을 보면서 당사자가 감내해야 할 것이 너무 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망설이게 됐다. 다만 그 여성분도 같은 마음이라면, 직접 다시 한번 찾아달라는 말만 했다. 자신의 작은 권리마저 포기하지 않는 것, 그리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동시에 타인의 권리 또한 지키는 것이고 우리 사회가 조금씩 변해갈 수 있는 힘이라고 믿었던 나지만, 가끔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히게 된다. 그 일에는 또 다른 불이익이 따르기도 하고, 불량한 시선들이 머물기도 하고, 의지했던 사람들에게조차 외면받기도 한다. 그런 것들이 두려운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환경을 받아들이고, 적당히 포기하고 안주하며 살고자 한다. 그래서 종종 상담하다보면 “누가 그걸 몰라서 안 하나”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운 거 아니냐” “민주노총에서 대신 좀 해주면 안 되나” 이런 불만 섞인 하소연을 듣기도 한다. 얼마 전 <노예 12년>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보는 동안은 내가 자유인이라는 사실에 새삼 감사했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한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것이 진정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인간을 노예는 만드는 것은 부유한 환경의 자유인에서 어느 날 갑자기 노예로 전락해버린 솔로몬 노섭이 처음에는 자신이 노예가 아니라고 맞서 싸우기도 하고 도망칠 기회를 엿보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어지는 무차별적 폭력과 생명의 위협은 그를 점점 노예의 삶에 안주하도록 했다. 하지만 솔로몬은 자유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끝내 버리지 않았고, 결국 사랑하는 가족들 곁으로 돌아간다. 솔로몬은 자신의 편지를 우편함에 넣어주는 조력자를 만나는 약간의 행운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자유인으로서 의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 행복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만약 솔로몬 노섭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영화가 끝나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고민했지만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부당함과 부조리에 맞서는 일, 진실을 밝히는 일, 정의를 찾아가는 길, 그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로문 노섭이 그랬듯, 나도 우리 모두도 인간이기에 그 또한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황이라 민주노총 부산본부 상담부장 *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농성을 벌일 당시 황이라씨는 하늘과 땅을 잇는 메신저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노동칼럼 ‘스머프 통신’은 제903호(2012년 3월26일치)부터 제951호(2013년 3월11일치)까지 연재됐습니다. 한진중공업의 파란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은 멀리서 보면 스머프처럼 보입니다. 황이라씨는 스머프처럼 작지만 아름다운 존재인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칼럼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