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중화
하지만 일베는 병신 게임의 해방적 계기를 곧바로 부정한다. 여성과 외국인과 호남인을 공격함으로써 일베는 차별을 철폐하는 대신에 공고화한다. 일본에서 신분제 철폐에 가장 극렬히 반대한 것은 외려 상민들이었다. 신분제가 철폐되면 상민들이 천민을 차별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무라이로부터 차별받는 수모를 견디게 해준 것은 그들이 차별할 수 있는 천민계층의 존재였다. 그것이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이 ‘자이니치’를 공격하는 심리다. ‘너희보다 못났을지 몰라도, 최소한 나는 니뽄진이다.’ 최종병기 ‘정신승리’가 있으니까 일베의 심리도 다르지 않다. 설국열차의 마지막 칸에 탄 주제임에도 심리적으로는 자신들을 앞 칸의 승객들과 동일시한다. 이 차별에 항의하는 동료 승객들을 공격하고, 그들을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의 객차에 태워 자신들의 객차 뒤에 달아놓으려 한다. 현실에서는 차별‘당’하는 그들도 일베에 들어오면 차별을 ‘가’할 수 있다. 찌질한 이들에게도 자아 형성을 위한 도덕적 원리가 필요하다. 그 원리로 소환된 것이 절대다수가 공유하는 안전한 가치, 즉 애국이다. “애국심은 불한당들의 마지막 도피처다.” 애국은 동시에 서사의 원리가 된다. 주류에서 배제당한 그들은 자신도 주류에 속해 누군가를 배제해보기를 절실히 원한다. ‘주류’에 속하려고 그들은 자신을 대한민국과 동일시하고, 이어서 거기서 배제할 누군가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좌빨’이다. 이로써 자신들이 힘을 합쳐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붉은 무리에 맞서 싸운다는 장엄한 애국 게임의 서사가 완성된다. 일베를 교두보로 회원들은 온갖 사이트로 원정을 떠난다. 게시판에는 이른바 ‘산업화’의 영웅담이 올라온다. 누군가 “화력지원”을 요청하면, 기꺼이 지원군이 되어 함께 악플을 달거나 별점 테러를 가한다. 이때 고렙들은 다양한 자료와 논리로 병졸들의 싸움에 필요한 아이템을 보급해준다. 그들이 좋아하는 ‘팩트’는 대부분 조작되거나 왜곡된 것. 그럼에도 무적의 용사들은 결코 패하지 않는다. 최종병기, ‘정신승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속에서 그들은 사회에 쓸모없는 자신이 국가엔 쓸모가 있음을 발견한다. 일베의 애국 게임은 자발적 게임이나, 이 자생성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지난 대선 국면에서 국가정보원은 본격적 의미에서 ‘게이미피케이션 전략’을 사용했다. 국정원에서는 일베 회원들에게 좌익을 신고하라는 구체적인 미션을 주며, 미션을 성실히 수행한 회원들에게는 ‘절대시계’를 나눠주었다. 이 전략은 특히 일베의 어린 회원들을 열광시켰다. 절대시계는 엄청난 충성을 바쳐야 ‘득템’할 수 있는 ‘절대반지’로 통하며, 일베 회원들 사이에서 게임 아이템처럼 비싼 값에 거래되기까지 했다. 알카에다·국정원·일베의 공통점 정치적 목적으로 게이미피케이션을 활용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정원만이 아니다. 알카에다나 헤즈볼라 같은 무장단체도 이미 오래전부터 젊은 층의 충성과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커뮤니티 운영에 게임의 원리를 도입하고 있다. ‘감사 포인트’나 ‘명성 포인트’를 모아 레벨을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운영 원리는 일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포스트의 내적 가치보다는 외적 보상에 집착하게 만드는 시스템에서는 당연히 극단적 견해일수록 높은 포인트를 받는다. 그 결과 커뮤니티 회원들의 의식은 날로 과격해진다. 게이미피케이션을 통해 ‘성스러운 전쟁’(Holy War)은 “성스러운 워크래프트”(Holy Warcraft)가 되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조국을 위해 성전을 치르는 일베의 전사들에게 축복 있으라. 조국은 그대들의 드높은 ‘병신력’을 기억하리라. 진중권 동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