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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인터뷰 특강-거짓말] 명상의 나라? 신흥강국? 모두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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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04 00:00 수정 : 2009-03-2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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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풀 비드와이와 함께한 ‘인도에 대한 거짓말’
현자는 기업이자 권력이며 빈곤과 문맹은 여전히 끔찍

▣ 김종옥 7·8기 독자편집위원

3월29일 마지막 강연이다. 때아닌 찬비에 몸이 시려서인지 마지막 강연이라는 사회자 오지혜씨의 인사말에는 모처럼 만난 친구와 헤어지는 아쉽고 애틋한 마음이 묻어 있다. 이어 인도 최대의 발행부수를 기록한 <타임스 오브 인디아>의 편집장을 역임하고 ‘인도핵군축운동’(MIND)을 공동 창설하고 현재 인도의 대표적 핵 문제 전문 칼럼리스트이자 평화운동가, 교육가로 활동하고 있는 프라풀 비드와이가 소개됐다.

인도의 유명 저널리스트 프라풀 비드와이는 현자들의 스캔들을 폭로하고 경제성장률의 허구성을 지적하면서 인도의 가면을 한 꺼풀씩 벗겨나갔다.

그의 글은 <한겨레21>에서도 여러차례 선보인바 있다. “<한겨레21>에 깊은 인상을 받고 있다"며 말문을 연 비드와이는 첫 한국 방문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듯했다.


두 번의 민주화 운동을 거치다

* 오: 개인적으로 한 달간 인도 배낭여행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다. 발끝에 차이는 돌멩이에도 인생을 논한다고 하던데, 인도 사람들의 삶은 정말 구도적인가.

* 비드와이: 인도가 좀더 종교적이긴 하지만, 인도뿐만 아니라 사람의 삶은 어디서나 다 그렇지 않을까?

* 오: ‘행복한 달’(happy moon)이라는 뜻을 가진 당신 이름과 평화전도사의 일이 잘 어울리는 듯하다. 그 일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가.

* 비드와이: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특별히 만족스럽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최근 인도-파키스탄이 연대해 평화운동의 길로 나아가는 등 고무적인 일이 생기고 있어 기쁘다.

* 오: 프랑스의 68세대, 한국의 386세대처럼 인도에도 그런 민주화 세대가 있는가.

* 비드와이: 두 번의 시기가 있었다. 60년대 후반~70년대 초반에 격렬하고 급진적으로 사회 변혁을 꿈꾸던 학생운동이 있었는데, 이 운동이 이후의 다른 운동을 촉발시키고 분발시켰다. 두 번째는 80년대 말~90년대 초에 일어났다. 이 시기에는 여성이나 달리트(불가촉천민), 소수민족, 강제이주자들의 권리 쟁취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졌다. 이 운동들은 개별화되지 않고 서로 연대해 전체적인 관련성을 지니고 전개된 특징이 있다.

강연의 주제는 한마디로 인도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는 것이었다. 과거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인도에 대해 두 개의 신화가 있다. 하나는 인도가 영적인 장소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새롭게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 틀렸다.” 언제부턴가 인도여행은 명상과 순례라는 특별한 이름을 가지며 유행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브릭스’ ‘넥스트 차이나’ 등의 용어를 빌어 인도 경제의 급성장을 전망하는 보고서들이 쏟아지고 있다. 얼마전 미국과 협핵정을 체결함으로서 정치적, 군사적 위상이 한껏 추어올려지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비드와이는 이것들이 거짓말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 과거의 인도에 대한 거짓말:

인도는 물질주의를 배격하는 숭고한 땅으로 상징되나 나는 인도가 특별히 영적인 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적 이미지의 심장부엔 이른바 ‘현인’(현자)의 권위가 자리한다. 그러나 기업체와 비슷한 형태를 갖추고 ‘영적인’ 영역에서 비롯된 막대한 경제적 힘을 유지함으로써 정치적 권력까지 가지게 된 현인들은 부패와 위선, 사기와 기만으로 인해 종종 스캔들에 휩싸인다. 그들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와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인간개발지수, 조사 대상 177개국 중 127위

* 현재의 인도에 대한 거짓말:

인도가 ‘경제 슈퍼파워’ 또는 ‘차세대 중국’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주장되고, 한편에선 인도경계론마저 나오는 등 인도 띄우기에 한창들이다. 그러나 이는 너무나 어이없는 거짓이다. 지난 3년 동안 인도의 국내총생산(GDP)이 매년 6~8%의 성장세를 보여왔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고용 없는 성장이었다. 오히려 농업과 제조업의 일자리는 줄었다. 인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여전히 빈곤층이며, 실제로 유엔개발계획(UNDP)이 내놓은 인간개발지수(HDI)는 조사 대상 177개국 가운데 127위에 머물렀다. 인도가 매년 8%의 성장을 이루고 앞으로 30년 동안 이런 성장세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인도의 1인당 국민소득은 5100달러에 불과하다.

요가에서부터 카스트 제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몰랐던 인도’를 탐색하는 청중들의 질문이 3월29일 마지막 강연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절대다수 인도인들은 여전히 가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인도는 카스트제도의 위계서열 구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미신과 종교적 교조는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 달리트층, 빈곤노동 계층, 여성에 대한 차별과 착취, 압제도 이어지고 있다. 지역별 불균형과 계층 간 소득불균형이 폭발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배경에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있다. 중산층 8천만 명(3억 명이라고 알려졌지만 그것은 허위다)이 나머지 10억 명의 인구를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대답은 분명하다. 인도는 경제 슈퍼파워로 떠오르고 있지 않다. 엄청난 인구가 안고 있는 식량, 물, 보건, 교육, 주택 등 산적한 문제를 풀기 위해 갈 길이 멀다. 삶에서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쪽에 경제성장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필요한 것은 구조적 개혁인데 인도 내부의 현실은 엄혹하다.

* 희망은 있는가: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1947년 이후 인도 민중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게 됐고, 자신들의 권리를 강화할 수 있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원하게 됐다. 특권층과 권력층에 맞서 싸울 줄 알게 된 그들이 승리한다면 인도의 미래는 밝다.

비드와이는 “이 싸움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세계 인류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인류 전체의 6분의 1이 걸린 문제니까”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우리는 아직도 싸우고 있고, 이 싸움에 우리의 미래가 걸려 있다”며 말을 맺었다.

1947년 이후 얻은 ‘민주주의’가 희망

질의응답 시간에는 카스트의 폐해나 명상과 수행의 역할, 인도 내 비정부기구(NGO) 활동, 양극화 해소를 위해 사회적 공감을 이끌어낼 방도 등에 대한 간단한 논의가 있었다.

사회자가 끝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요청하자, 그는 “진정한 진보를 위해 계층 간 분야를 넘어선 전체적인 연대가 필요하다. 지금 바로 전쟁 무기를 포기하고 그 비용을 인류의 기본적 삶의 보장에 들이는 평화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대안이나 비전을 내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인터뷰 특강은 평화운동을 기원하는 것으로 인상적인 맺음을 했다.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내년을 기약하며 아쉬운 인사들을 나눴다. 1년 동안 우리는 각자 자신에게도 또 우리가 속한 사회에도 얼마간 진보를 이뤄내야 하리라. 다음날 3월30일자 <한겨레> 3면에는 ‘강국 도약 꿈’이라는 인도관련 기획 기사 밑에 “조만간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파르타사라티 주한 인도 대사의 자신에 찬 인터뷰가 실렸다.

<한겨레21>의 인터뷰 특강 내용은 3월19일부터 매주 일요일 문화방송 라디오 표준FM(95.9MHz) <오지혜의 문화 속으로>(오전 11시5~57분)에서 방송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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