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특강-상상력] 생존을 넘어 물신에 저항하라
등록 : 2005-03-29 00:00 수정 : 2009-03-27 15:48
[인터뷰특강/ 21세기를 바꾸는 상상력 4]
홍세화와 함께한 ‘자아실현의 상상력’… 공공성과 무상교육의 의미를 가슴 깊이 새기다
▣ 글 김무늬/ 8·9기 독자편집위원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3월21일 저녁 7시. 시간 맞춰 도착한 장내에는 기대와 열망의 공기층이 두텁게 자리잡고 있었다. 공간이 있는 곳마다 의자들이 빼곡히 들어찼고 그 의자 위로 머리들이 빈틈없이 모여들었다. 우리는 <한겨레21> 인터뷰 특강에 무엇을 요구하는가. 강의를 시작하기 전 홍세화씨가 앉아 있는 곳에는 사인을 해달라는 요청이 줄을 이었다. 이를 본 사회자 김갑수씨가 홍세화씨는 인문학자 중 ‘오빠부대’가 있는 유일한 사람일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강연의 물꼬를 트자 여러 층위를 이루었던 장내 분위기가 일순간 흔들리며 섞어졌다.
누가 누구를 소유하고 있는 것인가
간단한 소개가 끝나고 무대 위를 잠시 정리하는 동안 홍세화씨는 수줍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마이크 앞으로 다가가는 순간 열정과 진지함으로 바뀌면서 단어의 묶음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에 돌아왔을 때 자신에게 말을 건넸던 광고 문구를 통해 현재 소유에 대한 인식 문제를 지적했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대한민국 1%의 힘’이라는 광고 문구들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청중들은 폭소를 터뜨렸고 나는 그 끝에서 씁쓸함을 맛보았다. 이런 광고 문구들이 사회 자본주의의 관철 형태를 말해준다는 뒤이은 홍세화씨의 따끔한 지적 때문이었다. 물질에 의해 사람이 평가되고 물질에 포섭·오염되는 세태, 그럼으로써 발생하는 소외의 문제에 대해 홍세화씨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과연 누가 누구를 소유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스스로 물질에 의하여 소유당하는 소외의 길을 가고 있지 않은가?
사회자 김갑수씨의 질문에 답하는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처음엔 수줍은 표정이었으나 금세 열정과 진지함으로 바뀌었다
또 홍세화씨는 ‘배반’을 이야기했다. 대한민국의 공공성이 사회 구성원들에 의해 배반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들이 대한민국 공화국에서 살고 있으면서 그 출발점인 공공성과 공익성 확보를 모른다는 것’이 배반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공공성은 무엇으로 발현될 수 있을까. 홍세화씨는 ‘무상 교육’이라고 답했다.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대학 교육까지 요구하면서도 이 모든 부담을 개인에게만 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상 교육은 사회적 연대의 구체적 실현이다. 이것은 계층간 연대, 즉 횡적 연대의 실현인 동시에 세대간 연대, 즉 종적 연대의 실현이다. 이러한 연대 의식은 궁극적으로 사회 환원 의식을 갖게 한다. 사람들은 무상 교육에 필요한 돈이 충분치 않다고 하지만 현재 무분별하게 지출되는 사교육비만 보아도 그것은 변명에 불과함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는 뒤이어 사회 보수 세력들이 무상 교육을 좌파적 사회주의적 사상이라고 몰아붙이는 상황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현 교육 과정과 대중매체를 보수 세력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계급적 의식을 스스로 배반하게 한다”며 그 예로 학교 구조가 병영 구조 그대로임을 들었다. 하지만 이것들이 내면화돼버린 우리들은 학교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고 힘주었다. 게다가 노동에 관한 것들이 배제돼 있는 교육 과정은 소외 노동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게 한다는 것이다. 대학이 산업으로 불리는 시대. 신자유주의의 자기 완결 구조 때문에 비판, 인문 정신, 인격적 소통이 변형·변질되거나 사라지고 있단다.
한 단계 확 올라간 느낌 드시죠?
여기서 홍세화씨는 자아실현과 생존의 문제를 꺼내들었다. “인간은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자아를 실현할 때 행복하다”며 이것이 ‘자아실현’이며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고 했다. “물신에 저항할 것(차라리 생존에 양보할 것을 요구하라)과 능력을 갖추라는 것. 이것은 끊임없는 자기 성숙의 모색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홍세화씨의 말에 뜨끔한 가슴을 감추며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애매한 표정의 사람들이 보였다. 나와 같은 생각들이리라. 난 나의 성숙을 위해 무엇을 하며 살아왔던가. 반복되는 일상, 그저 노력 없이 주어지는 것들에 익숙해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반성이 머릿속을 맴돌아 코끝이 찡해지는 순간 ‘긴장하면서 자아를 실현해가자’는 외침이 가슴에 박혔다. 인간이기 때문에 사회적 동물로서 생존이 목적이 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기 성찰을 통해 인간의 가치를 최종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말들은 홍세화씨의 입을 떠나 내 머릿속으로 쿵 하고 들어앉았다.
유쾌한 상상력의 한마당답게 진지함 속에서 웃음꽃이 그치지 않았다.
‘교육과 인간, 그리고 대한민국’을 이야기하기엔 강연 시간이 너무 짧았다. 홍세화씨가 강연을 끝내자 사회자 김갑수씨가 나와서 ‘이 강연을 들음으로써 자신이 한 단계 올라간 듯한 느낌이 들죠?’라고 물어보았다. 개나리 노란 표정으로 사람들이 손을 들어 동감과 감동에서 우러나온 깊은 박수를 쳤다.
청중들과의 솔직한 담화 시간. 밖에는 어느덧 찬 밤공기가 내려앉았지만 강연장의 들뜬 열기는 질문하기 위해 올린 손끝에서 더욱 뻗쳐올랐다. 사회자 김갑수씨가 먼저 질문했다. “그렇다면 인권, 평등과 같은 용어들이 우리 사회에서 아직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생존의 논리만이 지배하는데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공공성이 실현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민주주의가 우리나라에서는 지배 형태로서만 이해됐고 다른 부분 공화국, 즉 공공성에 대한 문제는 제기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이는 과거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과도 연결되는데 그 세력들의 물적·인적 토대가 오랫동안 주류를 형성해 그들에 의해 교육 과정과 대중매체가 장악돼왔기 때문입니다. 반공주의 우파들이 ‘너 빨갱이지’ ‘너 전라도지’라는 말들을 이용하여 다른 지역, 다른 사상을 배제함으로써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해나갔죠. 그래서 우리에게는 톨레랑스, 즉 관용의 정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남기고 가야지~"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해 강연을 기록하는 청중.
출신 지역을 의식해야 하는 건 ‘폭력’
그 뒤 대학 새내기, 공무원, 교사, 휴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시간은 없는데 열정적으로 손을 드는 청중들 때문에 사회자 김갑수씨는 즐거운 고민을 해야 했다. 인터뷰 특강이 모두 끝났지만 강연장에는 들뜬 청중들이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홍세화씨에게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다가 한참 만에야 돌아갔다.
자리가 모두 정리된 뒤 뒤풀이에서 만난 홍세화씨는 친절하고 점잖았다. 그날 광주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는 필자의 말끝에 지역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참고로 필자는 전라도 사람이다), 홍세화씨는 이것이 폭력이라고 말했다. ‘서울, 경기도 지역’의 사람들은 자신이 어느 지역 출신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고 살아간다. 하지만 ‘전라도’ 사람들은 자신이 전라도 출신임을 끊임없이 인식하고 살아가야 하는 사회가 바로 ‘폭력’이라는 것이었다.
전라도, 광주로 돌아가는 심야 고속버스 안에서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라는 광고 문구가 떠올라 심란해졌다. 사회의 공공성, 무상 교육이 이루어지고 우리 모두 스스로 자아실현을 위해 애쓴다면 이러한 문제들이 사라질 수 있을까. 그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새벽녘 광주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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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무너무 궁금해요”[수강생 인터뷰 | 재수생 하정평씨]
▣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천장에 닿을 듯이 손을 추켜올렸지만, 야속하게도 사회자는 그를 외면해버렸다. 청중과 강연자의 대화가 있는 인터뷰 특강이라 해도 너무 많은 손들이 올라가니 사회자가 감당을 못한다. 아쉬워하는 표정이 가득한 하정평(21)씨에게 다가가 무엇이 그렇게 궁금했는지 물었다.
“제가 예전에 ‘다함께’라는 단체에서 연 강연회에서 홍세화 선생님 얘기를 들었어요. 그때부터 궁금한 게 있어서 오늘 벼르고 있었거든요. 선생님이 강조하는 무상교육이 유럽에서 입지가 좁아지는 건 아닌지, 그럼에도 서구 모델이 우리 사회의 모델이 될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대입 준비를 하는 재수생이라 바쁘지만 광고를 본 그는 신청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읽고 친구들과 가끔 토론을 해도, 내용 안에서 얘기가 맴도니 궁금한 게 해결이 안 되더라고요.” 필자들을 직접 만나고 싶었기에 바쁜 시간을 쪼개었다.
사실, 그는 이윤기씨의 특강에서도 “신화엔 도덕적이지 않은 내용도 많은데, 그런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특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라는 도발적인 질문으로 청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물론 이윤기씨는 세련된 원천봉쇄 전략으로 가볍게 위기를 넘겼다.
이메일로 그의 궁금증을 전해들은 홍세화씨는 “무상교육은 역사적 성과물이고 정체성이라 쉽게 사라질 수 없으며,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얘기는 들은 바 없다. 그리고 북유럽의 사민주의는 최선은 아니지만 현존한다는 점에서, 미국 일변도에서 벗어나 우리가 균형을 갖추기 위해 충분히 참조할 가치가 있다”고 답했다. 이를 전해들은 하정평씨는 감사의 말을 전했다. 특강은 그에게 큰 자극이 되고 있다. “<씨네21> 같은 영화 잡지에서 글을 쓰는 게 꿈이에요. 문화적 감수성이 필요한 일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며 살고 싶습니다.” ‘21세기를 바꾸는 상상력’을 마음껏 섭취하고 있는 그에게 우리 사회의 내일을 부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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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특강, 마지막 두번의 기회!한홍구-당신의 터부를 사정없이 깨버리세요 오귀환-20대에게 확실한 충격을 선물합니다
이번 인터뷰 특강엔 총 600여명이 수강 신청을 해주셨습니다. 6회를 모두 신청한 전체 수강자와, 듣고 싶은 특강만 따로 신청한 개별 수강자를 합친 수입니다. 현재 전체 수강 신청은 마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개별 수강 신청은 아직도 가능합니다. <한겨레21>은 더 많은 독자들에게 기회를 드리기 위해 보조의자 설치 등의 대책을 세운 뒤 수강신청을 받을 계획입니다.
제5회 3월28일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과거를 푸는 상상력- 금기를 깨고 꿈을 꾸어라)
제6회 3월30일 오귀환/ <한겨레21>전 편집장(문명에서 배우는 상상력- 과거에서 훔쳐온 발명특허 톱10)
※ 3월30일 <한겨레21> 3개월 정기구독권 상품 추첨이 있습니다.
교육방송은 3월28일부터 4월1일까지 매일 저녁(8시50분~9시30분) 1~5회분의 인터뷰 특강을 녹화 편집해 방영합니다. 3월28일(한비야), 3월29일(이윤기), 3월30일(홍세화), 3월31일(박노자), 4월1일(한홍구). 3월31일까지는 지상파와 위성방송으로 만날 수 있으며, 4월1일치만 교육방송의 생방송 일정으로 인해 위성으로만 방송됩니다. 4월 이후엔 한겨레문화센터 홈페이지(www.hanter21.co.kr)의 온라인 동영상으로 모든 특강을 볼 수 있습니다.
수강신청: 한겨레신문사 문화센터 02-3279-0900, www.hanter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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