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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인터뷰 특강-교양] 테러 없는 세상을 위하여, 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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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3-31 00:00 수정 : 2009-03-2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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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오우드 쿠탑의 인터뷰 특강’보고서… 이스라엘은 물론 팔레스타인 지도부를 향해서도 따끔한 비판

김성훈/〈한겨레21〉 독자편집위원
“듣다가 지루하면 손을 드세요. 그럼 관둘게요. 허허허….”
다오우드 쿠탑(Daoud Kuttab)은 웃으면서 말했지만, 그 이야기는 기실 농담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웬만해선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힘든, 그야말로 ‘별나라 이야기’ 같은 팔레스타인 언론인의 이야기를 들고자 모인 400여 개의 눈동자 앞에서 그는 잠시 고민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얼마나 한국의 청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 궁금하게 생각했다. 사회자 김갑수씨가 앞서 말한 것처럼, 역시 청중들은 ‘프로’였다. 한 시간이 넘도록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청중들의 질문들은 시종일관 이날 통역을 맡았던 〈한겨레〉경제부 서수민 기자를 진땀나게 만들었다.

‘서울에 와서 무엇을 했느냐’는 김갑수씨의 질문에 다오우드 쿠탑은 “아들이 여러 나라의 국기 모으는 것을 좋아해서 아들놈 주려고 태극기도 한장 샀다”고 말하며 사람 좋게 웃었다.

팔레스타인판 최불암 아저씨?

그가 깁갑수씨보다 고작 세살 위라는 사실에 청중들은 박장대소. 청중들이 웃는 까닭을 알리 없는 그는 나중에 통역을 듣고서야 다시 한번 파안대소, ‘팔레스타인판 최불암 아저씨’ 같은 넉넉한 웃음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청중들의 질문에 대한 다오우드 쿠탑(가운데)의 답변은 재치가 번뜩였다. 왼쪽은 사회자 김갑수씨. 맨 오른쪽은 통역을 맡은 한겨레 경제부 서수민 기자.(사진/김진수 기자)
당연한 이야기지만 다오우드 쿠탑은 팔레스타인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기독교인이다. ‘팔레스타인 사람’과 ‘기독교인’이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 않은 옷을 동시에 걸치고 있는 그는 그것을 ‘축복이자 저주’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가 서 있는 칼날 같은 경계는 언론인으로서 냉철한 판단력과 비판력을 가져다준 축복이었다. 반면에 그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쪽의 감옥에 ‘처박힌’ 특이한 경험도 가지고 있다. 그는 종교와 민족을 넘어선 끈질긴 언론 투쟁을 통해 국제언론연구소가 2001년 제정한 ‘언론 영웅상’을 비롯한 각종 언론자유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이런 ‘기구한’ 인생유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제 생각에 기자는 언제나 진실만을 믿고 또 그것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언제나 모든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고 듣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팔레스타인에서도, 이스라엘에서도 감옥살이를 한 것 같습니다.”

다오우드 쿠탑은 팔레스타인은 늘 국제 사회에서 주체가 아닌 ‘대상’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은 스스로 국제 사회에 대한 그들의 이미지를 만들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고 그는 지적했다. 오랜 기간 팔레스타인의 지배적인 이미지는 ‘희생자’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대한 반문명적 폭력에 대한 저항과 독립 국가 건설을 위한 인내의 과정은 국세 사회의 ‘골칫거리’가 되고 마는 역설적 상황에 그는 불만을 털어놓았다.

김갑수씨는 “한국에는 열심히 대통령을 뽑은 다음에 막 미워하는 전통이 있다”고 너스레를 떨며 청중들을 한바탕 웃겼다. 이어 그는 다오우드 쿠탑에게 ‘그들의 지도자’인 아라파트에 대한 팔레스타인 대중들의 인식에 대해서 물었다. 쿠탑은 “아무래도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기 전에 더 인기가 높았다”고 대답했다. 물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아라파트를 좋아하고 그를 지지하지만, 지금 아라파트의 측근들은 수많은 비리에 연루되어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러나 쿠탑은 아라파트도 비리들에 연루되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그를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최근 이스라엘에게 폭살당한 하마스 지도자 야신에 대해서 “종교적으로 그를 존경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하마스가 이야기하는 ‘이슬람교에 기반을 둔 독립국가 건설’은 결국 ‘시오니즘에 따른 이스라엘’과 똑같은 어리석음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라는 주장을 분명히 했다. 참으로 ‘경계인’다운 대답이었다.

끝낼 줄 모르고 이어지는 청중들의 뜨거운 질문공세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국적이 있는가, 어느 나라 여권을 가지고 다니나’부터 시작해서 ‘뭘 주로 먹고 사는가’ ‘팔레스타인은 어떤 정치 형태를 가지고 있나’를 거쳐, ‘한국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팔레스타인을 도울 수 있는가’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다양했다. 다우드 쿠탑은 ‘이름을 알고 있는 한국 정치인이 있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현?”이라고 대답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성이 ‘현’인 줄 알았단다)

그는 한국인들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도울 수 있다고 대답했다. 폭력적으로 팔레스타인 가옥을 철거하는 이스라엘의 불도저 앞을 맨몸으로 막아서는 ‘국제연대(IS)’와 같은 대표적 단체 활동은 물론이고, 이스라엘로부터 투자금 회수나 이스라엘 상품 불매운동 같은 방법으로도 그들을 압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본질적인 문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우리가 가진 협상의 요구조건은 분명하다. 3년이 넘게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는 그들은 정작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스라엘은 우리가 ‘협상’을 이야기하면, 우리에게 폭력을 멈출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우리가 ‘휴전’을 이야기하면, 이스라엘은 우리가 ‘테러리스트’이기 때문에 우리와 휴전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은 매우 비열한 방법으로 우리의 지도자들을 암살한다. 암살은 또 다른 ‘복수’를 불러온다. 이것이 지금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가장 큰 문제다.”

이날 강연에는 '팔레스타인 평화연대' 회원들이 팔레스타인 평화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반지와 티셔츠 등을 판매했다.(사진/김진수 기자)

한국인들이 팔레스타인을 돕는 길

그는 이러한 폭력의 순환을 중단하는 것이 평화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팔레스타인에 의미 있는 평화가 찾아오기 위해서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의 개입이 필수라고 그는 분석했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팔레스타인은 미국의 개입을(군사적 개입을 포함하여) 적극적으로 원하고 있는 지구상에서 거의 유일한 나라”라고 말했다.

그는 ‘살람’(아랍어로 ‘평화’)이란 단어를 청중들에게 가르쳐주었다. 어찌 보면 ‘사람’ 같기도 하고 어찌 들으면 ‘사랑’처럼 들리기도 하다. ‘살람’(다오우드 쿠탑의 부인 이름이기도 하다)을 큰 소리로 서로에게 말하며, 평화를 외치며, 한 사람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이름을 목청껏 부르면서 다오우드 쿠탑의 특강은, 한겨레21〉 창간 10돌 기념 인터뷰 특강은 그렇게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뜨거운 ‘교양’의 열기 실감”

[인터뷰/‘인터뷰특강’ 녹화한 EBS 김형준 PD]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김형준PD(사진/류우종기자)
열변을 토하는 강연자와 옆에서 맞장구치는 사회자. 짧은 강연 시간에 질문 공세를 펼치는 청중들. 매 강연 때마다 이들 모두의 일거수일투족을 쫓던 시선이 있었으니 이는 지식과 교양의 ‘확산’을 준비하던 교육방송(EBS)의 카메라들이었다.

‘특별기획-21세기를 바꾸는 교양’은 3월13일부터 28일까지 총 7회 가운데 6회가 EBS를 통해 전국으로 녹화 방영돼 현장을 함께하지 못한 사람들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이를 위해 4명의 PD와 여러 스태프들이 동원됐고 바삐 움직이는 가운데 주최쪽이 미처 생각지 못한 꽃바구니까지 챙기는 등 상호보완의 미덕까지 발휘했다.

4명의 PD 중 한명인 김형준(35)씨는 이번 방영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인터넷이나 전화 등 여러 출처를 통해 확인된 시청자들의 소감은 꽤 호의적이었다.” 강사의 돌발 발언들로 편집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주최쪽과 강사가 마련한 강연 취지를 최대한 살려서 편집하자는 게 내부의 가이드라인이었다”며 양보다 질을 우선하는 공영방송의 면모를 확인시켜준다.

<한겨레21>을 통해 발굴된 필자들이 지면으로 쌓아온 내공을 생생한 화면에 실어 전달한 데 대해 김 PD는 “각기 고유한 매체 특징이 있는 시사주간지와 텔레비전이 만나 시너지효과를 냈다”며 “일정 수준을 담보하는 교양 강연에 목말라하던 이들이 있음을 확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김 PD는 짧은 강연 시간에 아쉬움을 표시했다. “한 사람의 생각을 1시간에 전달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며 “장기간에 걸친 기획을 시도해보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사원들과 돌려보고 싶다”거나 “1시간짜리 편집본보다 더 긴 분량을 볼 수 없냐”는 온라인의 소감들을 보니 ‘교양’의 열기는 한동안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계속 전파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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