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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인터뷰특강-교양] 인간다운 사회는 언제 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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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3-18 00:00 수정 : 2009-03-27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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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1일 박노자의 ‘인터뷰 특강’ 보고서… “하얀 가면을 벗어야 우리들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김종옥/ <한겨레21> 제7기 독자편집위원
박노자가 누구인가. 우리가 미처 혹은 일부러 보지 않은 우리의 속모습을 까발려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사람, 더구나 ‘우리’라는 익숙한 틀조차 도대체 어리석은 사기극이며 조작극일 수 있다고 세게 뒤통수 쳐대는 사람, 방대한 연구목록과 왕성한 글쓰기를 통해 때로 우리의 열등감을 몹시 자극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어떤 신나는 ‘지적 파티’가 있을지 초저녁부터 침 삼킨 사람이 많았으리라.

황사 때문인지 여의도 전쟁 전야의 긴장 때문인지 사방은 뿌옇게 흐렸지만, 그래도 들을 건 들어야 하는 지식 채집가들과 고상한 취미를 즐기는 강연 순례자들과 어느새 그의 팬이 되어버린(“잘 생겼잖아요”라고 그의 첫인상을 외친 여성을 포함해서) 독자들로 250여석의 강의실은 일찍부터 가득찼다. 그러나 청중이 연단에 올라선 그를 보기까지는 무려 25여분(!)을 기다려야 했다. ‘베트남 방문 비디오’를 22분 보았고, 사회자 김갑수의 “박노자가 누구죠?” 하는 다분히 분위기 띄우기용 식전 행사를 또 몇분 치러야 했다.

근대-전근대 이분법에 통렬한 비판

박노자는 처음에 “박노자 하면 무엇이 생각나느냐”고 묻고 답했던 것을 상기하며 국가나 직업, 가정 등 그런 꼬리표와 소속의식에 관심이 우선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사회자는 쑥스럽게 웃으며 “워낙 단일민족 국가로 살아왔으니…”라고 말했고, 이에 대해 박노자는 대차게 들이댔다. “왜요, 고구려 때 겪었잖아요?”


두 번째로 열린 박노자 교수의 특강에도 방청석은 꽉 찼다.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는 이는 거의 없었다.(김진수 기자)
웃음이 터졌다. 허스키가 섞이고, 억양이 세고, 무척 빠른 우리말로 가면을 벗으라고 외치는 본격적인 강의 속으로 우리는 벌써 들어가 있는 셈이었다.

강연의 주제는 근대와 전근대의 이분법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것이었다. “근대와 전근대로 나누는 이분법은 과거에 대한 현재의 우월감에서 비롯된 편견입니다. 곧 그것이 객관적인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온갖 부정적인 가치들을 전근대적 유산이다 잔재다라고 탓하는데, 그러기보다는 우선 지금의 문제를, 근대의 문제를 그 자체로서 탓해야 합니다.”

오리엔탈리즘(동양을 타자화하여 비하하는 서구중심주의적 인식)과 옥시덴탈리즘(서양을 정형화·범주화하는 서양 대 비서양 식의 이분법적 인식)에 포섭된 태도를 버리라는 것이다.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근대적 자본주의 국가가 민중들에게 그 우월성을 강요하기 위해 근대라는 포장으로 세뇌시킨 것이 근대와 전근대의 이분법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그 이분법적 사고는 한국사 내면에서 생겨난 게 아니라 일본을 통해 유입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근세사에서, 근대화를 지향했던 지식인들이 모두 서구나 일본의 근대화를 흠모하면서 근대의 모델을 밖에서 찾았다는 점에서 친일과 항일이 같은 행태를 보인다고 말했다. 중심부 따라잡기에 급급한 모습, 중심부에 약점 잡힌 모습을 보이면서 우리는 결국 주변부에 대해 가혹해지는 ‘아류 제국주의’의 흉악한 몰골로 가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런 태도는 예측이 불가능한 제국주의 세계에서 내일 어떤 전쟁이 터지고 어떻게 되든 간에 오늘은 ‘본토인’보다 더 완벽한 하얀 가면을 쓰고 ‘선진적인 그들’ 이상으로 ‘선진적으로’ 흉내내려는 서글픈 몰자기, 무반성으로 드러난다.

이것이 강연의 전체 내용이다. 인터뷰 특강이라는 형식을 의식한 듯 박노자의 강연은 매우 짧았다. 아마도 박노자 자신은 간결한 강연에 이어 질의응답에서 더 심도 있게 얘기를 나누고자 의도한 것 같았는데, 불행히도 질의가 그 뜻에 맞추어서 나와주지 못했다는 점을 먼저 밝힌다.

한국사람보다 더 해박한 박노자 교수의 역사지식은 방청객들을 즐겁게 했다.(김진수 기자)

‘열린 민족주의’는 없는가

첫 번째 질의자는 근대 이념과 사회진화론과의 관계는 어떤지, 열린민족주의라는 개념이 성립할 수 있는지 등 두 가지를 물었다. 박노자는 양계초가 근대를 표현할 때 ‘적자생존 우승열패’(適者生存 優勝劣敗)라고 했는데, 이러한 사회진화론의 특징은 일본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유입되었으며, 이것이 지금 한국 지배층의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열린민족주의에 대해서는 “민족주의가 자본주의 국가의 이데올로기인 이상, 그 한계를 현실적으로 뛰어넘을 수 없다”고 하면서, ‘열린’이라는 수식이 붙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오십 초반의 나이에 백수가 되어 술먹기가 지겨워 공부하러 나왔다는 네 번째 질의자는 청중들로부터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질의자는 과연 ‘하얀 가면의 시대’가 가고 인간다운 시대가 올 것인지, 언제 올 것인지를 물었다. 사회자도 마지막 질문으로 비전을 물었다. 이 대답에서 박노자는 최근의 펜타곤(미 국방성) 기후보고서를 예로 들면서 자본주의의 세계 지배 체제가 틀림없이 몰락할 것이라는 순수하고도(혹은 순진하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는) 열정적인 희망을 드러냈다.

이로써 강연은 끝났다. 논의가 막 시작되려는 찰나에 끝나버리는 감이 들어 섭섭하기 짝이 없었으나, 이에 관련해서는 이날 나누어준 ‘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역사, 그리고 견성(見性)을 위하여’라는 그의 글을 통해 보충수업을 할 수밖에 없다.

그는 강요된 서구적 척도, 즉 ‘하얀 가면’이 벗겨진 인식틀이라는 것은 무엇이며, 어떤 방법으로 세울 수 있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대답한다.

첫째, 우리 통념들이 대개 19세기 서구중심적 그리고 보통자본주의 옹호론적 사회과학에 의해 만들어져서 ‘당연한’ 것도 자연발생적인 것도 전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 전통시대 국가든, 아니면 훨씬 더 폭력적인 근대국가든, 국가 자체가 우리 인식 속에서 선(善)의 이미지와 격리되어 상대화해야 하며, 비판적인 분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셋째, 근대 패러다임 속의 각종 대립적 개념의 이분법들- 예컨대 ‘반동’과 ‘혁명’의 이분법-도 상대화, 지양되어야 한다. 넷째, ‘중심’의 주술로부터 깨어나고 지배 체제에 균열을 일으키는 ‘반란적 주변’을 주목해야 한다.

박노자는 의기와 혈기에 차서 이렇게 자신의 희망을 말하며 강연을 끝맺었다. “하얀 가면이 벗겨져야 우리가 우리 자신들의 진면목, 진아(眞我)를 볼 수 있다. 그것이 견성(見性)이며, 그게 이루어져야 사회적인 의미의 성불(成佛), 즉 자본주의 이후의 인간다운 사회의 건설이 가능할 것”이라고.

‘노르웨이어 인사’ 완강히 거절

이어, 좀 삐걱거린다 싶었던, 사회자와 강연자의 부조화가 마지막까지도 이어졌다. 사회자는 박노자에게 노르웨이어로 끝인사를 부탁했고, 무안하리만큼 완강한 거절에 사회자는 난처해졌다. 그는 그저 세 나라 말을 유창하게 하는 박노자의 재주를 보고 싶었겠지만, 박노자에게는 그것조차 선진국, 이른바 서양 근대에 대한 흠모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후기: 이 스케치를 쓰는 3월11일 밤 여의도는 긴박한 밤을 보냈고 그 상황 변화에 간간이 펜을 놓았다. 그러다 드디어 12일 오전 11시가 되어서는 기어코 손에서 힘이 몽땅 빠져나가 펜을 놓치고야 말았다. 지금 우리 눈앞의 야만을 보면서, 온갖 비하와 멸시의 상징으로 전근대를 구분지어 말하는 것이 얼마나 가련한 허위의식인가 하는 탄식이 나왔다. 희뿌연한 정오의 하늘을 올려다 보며 적어도 오늘 일어난 일에 관한 한은 누구라도 박노자의 말에 깊이깊이 공감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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