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마찬가지겠지만 ‘노무현 치하’에서 1년 가까이 살면서 이런저런 감회가 참 많다. 지지난해 12월의 그 대단했던 흥분과 기대는 취임 이후 ‘노짱’의 연이은 실망스러운 행보와 이런저런 돌출행동 또는 언사와 왠지 어설픈 전략적 발언들, 아마추어 측근들의 소소하지만 줄을 잇는 비리들 때문에 어느덧 차갑게 식어버린 게 사실이다. 그놈의 ‘현실정치’가 무엇인지, ‘국익’이 무엇인지 그 때문에 한 사람의 소박하고 우직했던 정치가가 1년 만에 무참하게 동네북 신세가 되어버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에게 기꺼이 한 표를 던졌던 사람으로서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대통령의 위신이 이처럼 대명천지에 공공연하게 땅에 떨어진 것은 설사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즐거운 일은 아닐 것이다.
표현하는 자유의 이행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자신과 그를 그토록 열렬히 지지했던 사람들이 처한 이 명백한 곤경의 틈새에서 나는 어떤 새로운 변화의 기운을 발견한다. 고졸 출신의(그래서 흔히 말하는 교양 있는 어법과 매너가 몸에 익지 않은), 준비되지 못한(그래서 집권 초기 내내 우왕좌왕하는), 그러면서도 꿋꿋이 전진해나가는 우리 대통령을 보면서 나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해방감이라고 해도 좋다. 심심하면 한번씩 터져나오는 대통령의 ‘막말들’과 좌충우돌의 파격적 행보는 나를 즐겁게 한다. 대한민국 수립 이후 처음으로 나는 인간의 얼굴을 한 대통령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 파병 결정이나 적대적 노동정책이 담긴 그의 말들은 나를 슬프게 한다. 하지만 ‘국기를 흔든다’고 난리를 치는 재신임 선언을 비롯한 그의 수많은 돌출 언사들을 나는 ‘즐긴다’. 표현의 자유를 이행하고 있는 대통령이 나는 밉지가 않다. 대통령으로서의 공적 언어와 담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에 질식되거나 그것으로 두꺼운 위장막을 치고 뒷구멍으로 호박씨를 까듯이 정말로 국기를 위협하는 수많은 위선과 음모를 저질러온 이제까지의 대통령들 모습과는 분명히 다른 자유분방하고 양명한 인간, 그게 지금 우리 대통령의 모습이다.
물론 이는 그를 수반으로 하는 현 정부의 행보를 지지한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나는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위선과 가식 없이, 그로부터 야기되는 비난이나 억압에 대한 공포 없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자유의 이행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대통령의 생각을, 장관은 장관의 생각을, 국회의원은 국회의원의 생각을, 말단 공무원은 말단 공무원의 생각을, 시민은 시민의 생각을, 여성은 여성의 생각을, 노동자는 노동자의 생각을, 어린이는 어린이의 생각을, 장애자·외국인 노동자·성적 소수자·혁명론자는 각기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위선과 타인의 억압에 의해 방해받지 않고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자유를,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말의 실천과 이행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 그것 때문에 타인의 자유와 실존이 심각하게 위협받지 않는 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의해서 억압받거나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설사 대통령이라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시인 김수영은 1960년대 중반에 “창작에 있어서는 1퍼센티지가 결한 언론자유는 언론자유가 없다는 말과 마찬가지다”라고 썼다. 그리고 그 40년 뒤 원로작가 최인훈은 최근 발표한 단편에서 “죽어라, 단 한 사람도 글 위에서 죽으려 하지 않으니 보리는 땅속에서 썩지 못한다”라고 썼다. 그들은 평생을 그놈의 ‘표현의 자유’를 이행하지 못한 것 때문에 괴로워했다. 수구초심으로 귀국한 철학자 송두율은 자신의 표현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은 대가로 감옥에 들어갔다.
자유로운 말들의 카니발을 위해
대통령의 ‘막말’에서 나는 식민지시대를 거쳐 분단시대에 이르는 동안 한번도 걷히지 않은 이 놋쇠 하늘, 신동엽이 말한 ‘먹구름’이거나 ‘쇠항아리’가 이제는 걷혀도 좋을 때가 오고 있음을 감지한다. 이 짓 못해먹겠다고 대통령부터 표현의 자유를 거침없이 솔선수범으로 이행한 이참에 다들 자기 안팎의 위선과 검열을 뿌리치고 그의 뒤를 따르자. 이젠 그런 세상이 열려도 좋지 않은가. 마음속에 친친 감긴 군사분계선의 철조망을, 꿀꿀이죽과 악수표 밀가루의 추억을, 가부장제와 파시즘의 공포를 모두 토해내고 벗어던지는 자유로운 말들의 카니발을 시작해도 좋지 않은가.
나는 대통령의 막말이 즐겁다. 그리고 그 막말 한마디에 호들갑을 떠는 수많은 이중인격들을 비웃는다. 그리고 누구나 거침없이 막말을 해도 좋은 세상을 간절히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