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웬 티 니] 어느 베트남 할머니의 죽음
등록 : 2004-01-08 00:00 수정 :
할머니는 2004년을 맞지 못했다. 2003년 12월24일 오전, 할머니는 크리스마스를 넘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향년 88살.
베트남 중부지방인 쿠앙남성 디엔반현 투이보촌의
응웬 티 니 할머니. 그는 <한겨레21>이 보도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자 중 가장 처절한 케이스에 속했다(2001년 6월15일치 <한겨레21> 312호 참조). 할머니는 1967년 12월 청룡부대의 땅굴 수색과정에서 외손자(당시 3살)의 두개골이 산산조각 나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아들과 딸, 사위와 외손자를 모두 잃은 그는 혼자 살아남았지만 턱과 혀의 절반이 날아가는 중상을 입었다. 이 때문에 식사를 할 때마다 자리에 누워 음식물을 부어넣어야 하는 고충을 36년간이나 감당해왔다.
<한겨레21>의 보도 이후 한국의 시민단체 ‘나와 우리’(대표 김현아)는 홀로 쓸쓸하게 살아가는 응웬 티 니 할머니의 생활비를 지원해왔다. 베트남전 생존자 할아버지 할머니 10명에게 각각 매달 20만동(우리돈 약 2만원)씩 부쳐주는 프로그램이었다. 2002년 여름에는 현지를 방문한 한국의 청년들이 토굴 같던 응웬 티 니 할머니의 집을 새로 지어주었고, 지난해 여름에는 영정 사진을 찍어드리기도 했다.
턱의 절반이 없어 발음이 이상하게 새나와 베트남 사람조차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는 할머니. 한국인 학생들이 찾아가면 아무리 만류해도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이끌고 기어코 문 밖까지 배웅을 했다는 할머니. 그래서인지 눈을 감기 직전 한 한국인 젊은이의 이름을 부르며 “보고 싶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했다고 한다.
일제에 의해 위안부로 끌려갔던 한국의 할머니들을 연상시키는 베트남 중부지방의 할머니들이 하나둘씩 그렇게 세상을 떠나가고 있다.
글 · 사진 고경태 기자
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