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새해가 밝았다. 하루에 하루를 더한다고 생각하면 해가 바뀌는 것이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러나 달력의 포로가 될지언정, 새해를 맞으면서 한해 계획을 새롭게 세우거나 환한 얼굴로 다른 사람들과 덕담을 나누는 것도 나름대로 한해를 의미 있게 시작하는 한 방법일 것이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새해에는 제발 이라크전 같은 침략전쟁이나 한순간에 수만명이 몰살되는 이란 대지진 같은 살벌한 사건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고 지구촌 모든 곳이 사랑과 평화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 한반도에서도 백두대간의 기상이 남과 북에 고루 퍼져 통일에 성큼 다가서고, 국제사회의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남과 북이 함께 헤쳐나가기를 기대해본다.
2003년에 이어 새해에도 미국이 지구촌 뉴스의 중심에 있을 거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이라크 전후 처리도 주목거리지만 11월 대통령선거가 예정돼 있고 부시 대통령의 재선 여부에 세계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한겨레21>이 이번 신년호 표지이야기로 미국 대선 기사를 심층적으로 다룬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미 대선 판도에 따라 전쟁의 먹구름이 한반도에 몰려올 수도 있고, 미국의 이익과 이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나라는 어디든지 이라크처럼 미국의 제물이 될 수도 있다.
더 눈여겨볼 것은 부시 대통령이 재선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근본주의’가 얼마나 위세를 떨칠 것인지다. 이 시점에 1925년 미국 남부의 테네시주에서 벌어진 ‘원숭이 재판’(Monkey Trial)이 다시 떠오르는 것은, 그 재판이 미국의 기독교적 근본주의 탄생을 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공립학교 교사가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진화론을 가르친 것을 문제 삼아 기독교인들이 교사를 고소한 이 사건은 배심원들이 교사에게 100달러의 벌금형을 평결하고 막을 내렸지만, 80년쯤 지난 지금 부시와 네오콘 전사들의 ‘막가파식’ 세계 전략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박노자 교수(오슬로국립대)는 최근 출간한 <하얀 가면의 제국>에서 “이슬람 근본주의를 ‘제1의 적’으로 보는 미국의 보수적 지배층은 이슬람 근본주의보다 어떤 면에서 더 광신적인 기독교 근본주의를 ‘우군’으로 보고 있다. 그 사이 교회 교류와 선교 등을 통해 기독교적 근본주의의 메시지는 점차 세계화되어간다”며, 새로운 제국 시대를 꿈꾸는 미국과 부시 행정부에 일찌감치 깊은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부시 대통령의 낙선을 바라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세계인들에게 미 대선을 지켜보는 것은 ‘감상’이 아니고 처절한 사투가 될지 모른다.
새해에는 <한겨레21>도 미국만큼이나 바빠지고 변화가 많을 것 같다. 3월이면 창간 10돌을 맞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정론의 길을 올곧게 갈 수 있도록 지켜주신 독자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계획이다. 나눔의 정신을 되살려 <한겨레21>이 우리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깊이 고민하고 있다. 창간 10돌을 계기로 독자 여러분과 함께 이 시대의 진정한 희망을 찾아나설 수 있도록 올 한해 많은 관심과 격려를 당부드린다.
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peac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