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와팍 알 루바이] 미국은 그를 점찍었나
등록 : 2004-01-01 00:00 수정 :
“세상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요. 1979년에 그의 고문실에 내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가 내 앞에 무력하게 앉아 있으니….”
이라크 과도통치정부의 위원인 모와팍 알 루바이(55) 박사가 체포된 사담 후세인을 만나고 나온 뒤 한 말이다. 그는 후세인이 체포되자마자 이라크의 전후 지도자로서는 최초로 사담이 갇힌 곳을 방문해 사담에게 쓴소리를 뱉고 돌아왔다. 이라크 과도정부위원들은 이라크 저항세력의 테러 표적인 탓에 언제나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다. 비록 사담 후세인이 체포됐다고는 하지만 말을 극도로 조심하고 있는 형편이다. 실제로 이라크 과도정부위원 중 한 사람이 암살됐다. 알 루바이 박사 자신도 머물고 있던 바그다드 호텔이 공격을 받으면서 부상을 당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위험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후세인을 만난 자리에서는 “당신이 체포될 때 총이 옆에 있었는데 왜 사용하지 않았느냐? 당신이 용감한 사나이라면 한발의 총알은 사용했어야 하지 않느냐”며 사담이 자살하지 않은 것을 질타하기도 했다.
그는 후세인과 오랜 악연이 있다. 1979년 그는 사담의 비밀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후세인이 현재 심문을 받고 있는 조사실에서 고문을 당한 뒤, 이라크를 떠나 23년간을 영국 런던에서 망명생활을 해야 했다. 영국으로 망명한 뒤에는 의학을 전공해 런던의 킹스칼리지 병원에서 신경과 의사로 일해왔다. 또 이라크 무슬림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시아파를 대표하는 정당인 이라크 다와당의 국제 대변인으로 반사담 후세인 활동을 줄기차게 해왔다. 다와당은 80년대 이후 미국에 의해 테러 정당으로 낙인찍힌 상태였지만 전후 복구가 시급한 부시 행정부는 ‘면죄부’를 줄 수밖에 없었다. 현재 다와당은 다수당으로서 과도정부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알 아바이 박사는 이라크의 지도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영국 유학 배경과 탁월한 영어 실력으로 다른 과도정부의 위원들보다 정치적으로 훨씬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 등 서방세계와 이라크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서방의 주요 언론들도 그를 부상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부시 대통령이 바그다드를 전격 방문했을 때 이라크 과도정부의 대표로 그를 맞이했다. 그 뒤 부시 행정부가 그를 미래 이라크 대통령감으로 점 찍어놓은 게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하게 떠돌기도 했다. 그의 보수적 정치 성향은 미 행정부의 정치 노선과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이라크 국민들에게는 크게 알려지지 않아 대권을 장담하기에는 이른 듯하다.
아테네=
하영식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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