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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도광] 면사무소 뛰어다니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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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1-0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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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을 떠났던 자가 다시 속세로 돌아간 격이죠. 하지만 마을 이장 일을 직접 해보니 이것이 또 다른 중생 구제라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충북 옥천군 군북면 이평리의 마을 이장은 스님이다. 이 마을에 자리 잡은 보현사의 주지 도광(속명 박찬모·49) 스님이 마을 주민을 대표하는 이장으로 뽑힌 건 2003년 초. 30가구 57명인 이평리 사람들끼리 모임을 갖고 그한테 이장을 맡기기로 벌써 추대해둔 상태였다. “동네 모임에 나오라고 마을 주민들이 하도 성화여서 가봤는데, 가서 보니 그동안 동네 일 추진이 아주 엉망이었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지적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나중에 나를 이장으로 지목하고 자기들끼리 벌써 결정해버렸더라고요.”

이평리는 원래 12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작은 농촌마을이었다. 그러나 80년대 대청댐이 들어서면서 마을이 둘로 갈리고 나룻배 하나 없는 오지 중의 오지가 되고 말았다. 댐이 들어선 뒤 많은 주민들은 받은 보상금 갖고 사업한다고 도회지로 떠났고, 남아 있는 주민이래야 환갑, 칠순의 노인네들이 전부다. 기력이 쇠잔한 노인만 있다보니 마을 발전을 위해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이장직을 해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 보다 못해 도광 스님이 이장직을 수락한 것이다.

적막한 산사에서 잠시 외도해 1년 동안 마을 이장 일을 하면서 이 풍진 세상을 새삼 느낀 것일까? “27년 전 출가한 뒤 그동안 부처님 설화법만 알고 살았는데, 이장직을 맡은 뒤 마을 도로포장이며 농지 정리 사업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혼자 수행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더군요.” 그는 면사무소로, 군청으로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공무원들한테 배우고 동시에 마을 사업을 건의하기도 했다.

발로 뛴 성과는 곧 나타났다. 이평리는 트랙터·경운기도 못 들어가는 오지였는데, 올해 댐 주변을 따라 마을까지 닿는 도로에 임시방편으로 자갈이 깔린 것이다. 이제는 비료·퇴비를 마을까지 실어나를 수 있게 됐다. 도광 스님은 그동안 받은 이장수당(월 10만원) 전액을 옥천 증약초등학교에 끼니 굶는 아이들 급식비로 기탁하기도 했다.

글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진/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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