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팍팍 밀어주고 키워주는 남편 이야기… 배우자가 가진 가능성의 싹을 눈여겨보라
“간섭만 하지 않으면 도와주는 거다.”
아내의 성공에 남편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느냐고 운을 떼자마자 ‘인생을 아는’ 기혼 여자 선배들은 손을 내저었다. “남편은 방해만 안 하면 된다.” “지켜보고만 있어도 고마운 거다.”
어떤 빛나는 남자 뒤에 부인의 헌신적인 내조가 있었다는 건 새삼 놀라운 소식이 아니다. 그 반대의 경우는 없는 것일까. 있다고 해도 그건 예외적인 경우에 불과하거나 겉으로 포장된 환상에 불과한 걸까. 과연 여자들은 남자에게 너무 많이 기대하지 않는 게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법일까. 기대수준을 낮추는 것이 현명한 것일까.
올 연말도 힘겹게 한살 더 먹는 미혼 여성들을 위해 ‘희망’을 찾아보기로 했다. 아내 ‘키우는’ 남자들, 곧 아내의 성장을 위해 힘쓰는 남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혼 여부 자체가 선택인 시대에 남편감 역시 기준점이 필요하지 않은가. 여러분, 다음 중 어떤 남편이 ‘취향’에 맞으신가요?
의리 있는 친구 지난달 민주당 비례대표직을 승계해 처음으로 금배지를 단 안상현(40) 의원은 “남편이 가장 가까운 친구”다. “다른 사람을 흉봐도 말 옮길 걱정은 전혀 없잖아요. 하하하!” 1992년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당시 여행사를 운영하던 남편 이영우(41)씨는 “중학생 때부터 정치인이 꿈”이었던 안 의원을 밀어주기로 결심했다. 결혼 전 27살 새파란 나이로 원주에서 강원도의원 선거에 출마해 떨어졌던 안 의원은 1993년 신혼 때 보궐선거에 출마했으나 다시 한번 고배를 마셔야 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평민당에 들어가 중앙에서 일한 탓에 지역 기반이 약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아무 연고가 없던 원주로 여행사를 옮겼고, 여행객들과 함께 여행지를 다니며 “100% 잘해줄 일도 200% 최선을 다했다.” “남편의 고객 관리는 1995년 선거에서 든든한 뒷배경이 되었죠. 고객들이 구전 홍보단이 되었으니까요.” 남편은 여행사 차량을 개조해 연단을 만들어주었고 아내와 함께 발로 뛰어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1998년 도의원 재선 뒤, 더 큰 꿈을 가지고 있던 안 의원은 2000년 총선을 바라보고 도의원직 사표를 냈다. 그러나 정작 공천은 다른 이에게 돌아갔고, 안 의원은 국회에 진입하기까지 3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주변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이때 남편은 당의 실세를 찾아가 “우리 아내가 남보다 부족한 게 뭐냐”고 담판을 지어 전국구 앞 순위를 받는 데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전한다.
“공천을 받지 못하자 사실상 실업자와 다름없었죠. 너무 답답해서 남편에게 자주 묻곤 했어요. ‘내가 의원이 될 수 있을까? 여기서 끝나는 건 아닐까?’” 그때마다 남편의 대답은 분명했다. “걱정할 것 없어. 당연히 잘 될 거야.” 남편은 아내가 1년 동안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학비와 생활비를 대 공백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도록 도왔다. 지난달 난생처음 세금을 떼는 월급을 받아본 안 의원은 그동안 남편이 유일한 안정적인 ‘돈줄’이었다. 남편의 불만은 없을까. “남들은 의원 부인 모시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드냐고 하지만, 아내는 나를 정말 편하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아내가 정치하느라 돈 쓰는 거 저는 그냥 ‘생활비’라고 생각해요. ‘생활비’가 많이 들어 재테크 같은 데 전혀 여유 없지만 신경 안 써요. 저는 아내가 앞으로 대단한 정치인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들의 일화는 추미애 민주당 상임중앙위원과 서성환 변호사 부부와도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다. 1995년 추미애-서성환 부부가 동교동을 처음 방문한 자리에서 남편은 DJ에게 아내가 수도권 출마를 원한다고 이야기했고, 여자가 나가면 떨어질 수 있다는 걱정에 ‘열심히 하겠다’고 다부지게 답했다고 한다. 서성환 변호사는 서점에서 역대 기록이 다 들어 있는 총선 백서를 보따리로 사가지고 와서 어느 지역구를 고를지 연구·분석한 끝에 현재의 지역구인 광진을 선택해주기도 했다.
학부모 같은 남편
지난 2월 결혼한 도영환(31·회사원)-박라영(28·사법연수원생) 부부는 주변에서 ‘부녀지간’이라고 놀린다. 원래 나이보다 좀 들어보이는 도영환씨와 화장 안 하면 고등학생 같아 보이는 박라영씨의 외모도 그렇지만, 두 사람의 관계도 독특하다. 캠퍼스 커플이던 이들은 1997년 사법고시를 함께 준비하기 위해 대구에서 서울 신림동 고시촌으로 올라왔다. 박씨는 1차 합격-2차 불합격을 오간 것에 비해 도영환씨는 계속 미끄럼을 탔다. 1999년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도영환씨는 사시 준비를 그만두고 보험계로 뛰어들었다. “나는 마음을 접었지만, 아내는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보다 집중력이 높아 합격 확률이 더 높았으니까요.” 도씨는 연이어 낙방해 시름에 젖어 있던 박씨를 설득해 다시 도전하도록 했고, 올해 합격하기까지 1년6개월 남짓 생활비와 학원비를 댔다. 본래 성취욕이 강했던 박씨는 공부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남편은 이때마다 눈물짓는 아내를 보듬어주었다. “대학 다닐 때도 시험 잘못 보면 혼자서 울었어요. 처음엔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엔 그게 저 사람의 동력이구나 이해가 되더라고요.” 끝이 보이지 않는 힘든 고시공부를 하면서 박라영씨는 자주 이렇게 부탁했다고 한다. “‘괜찮아’라고 말해줘. 그 말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거든.”
책상을 따로 쓰는 부부
‘아내 키우기’는 꼭 이처럼 남편이 헌신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내의 꿈을 이해한다면, 형편에 맞춰 대처하는 것도 방법이다. 회사원 김지호(33)씨는 지난봄 두대의 중고 노트북을 샀다. 아내와 자신의 몫이었다. 서재로 쓰던 방 한가운데에 책장을 놓아 방 하나를 두 개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서로 좀더 집중해서 일할 수 있기 위해서였다. “막내딸인 아내는 늘 언니·오빠랑 책상을 함께 썼대요. 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결혼하는 바람에 자기만의 공간을 갖기는 힘들었죠.” 문학동아리 후배였던 아내 김영미(29)씨는 본래 글을 잘 썼다. 결혼 뒤 아기를 낳고 집안 살림을 하면서도 틈틈이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아내는 얼마 전 <진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돼 정식 등단하게 됐다. “나는 늘 아내가 손해 본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혼제도 자체가 여자에게 불리하니까요. 내가 정말 좋은 남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직장에 다니니까 너는 집안일 잘해라’라고는 절대 말하지 않아요. 가장 좋은 건 각자 자아실현하는 거 아니겠어요?”
별거형 동거? 독립적 부부
김지호·김영미씨 부부보다 윗세대로서, ‘따로 또 같이’를 일찌감치 실천하고 있는 부부도 있다. 안종관(60·희곡작가)·김상경(54·국제금융연수원 원장) 부부는 과장을 섞어 자신들을 ‘별거형 동거’라고 말한다. “서로 지켜보고 놔두자는 거지요. 부부가 너무 감정적으로 고착돼 있으면 오히려 힘들어질 때가 많아요.” ‘국내 첫 여성 외환 딜러’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김상경씨는 첫 직장이 외국계 기업이었던 인연으로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은행에서 비서로 일하다 30대 초반 외환 업무에 자원하며 금융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비서의 수명은 짧잖아요. 힘들어도 앞으로 10년을 내다보자고 결심했죠.” 김 원장은 남자 동료보다 탁월한 성과를 보였고 초고속으로 승진해 부사장에까지 올랐다. “여자들이 고위직에 오르면 남자들과 부딪힐 일이 많아요. 시기하는 남자들이 많아지죠. 힘들었어요.”
교직 생활을 하며 짬짬이 희곡을 발표하던 남편 안씨는, 갈등하는 아내에게 대인관계에서 위기를 극복하는 기법을 전수했다. “윗사람에게 절대로 동료 남자들을 욕하지 마라. 남자 상사도 역시 그들과 한편이다. 어떤 일이 회사에 도움이 되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만 해라.” 새벽 일찍 출근하는 아내와 늦게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남편은 생활리듬이 달라 10년 전부터 방을 따로 쓰고 있다. “남편은 스스로를 잘 챙기는 타입이에요. 혼자 있어도 돌솥에 밥을 지어 근사하게 차려놓고 먹지요. 그러니까 전 스트레스가 없어요. 각 방을 쓰지만 우리 부부는 이야기를 많이 나눠요. 부부 사이에 대화가 없다면 가망이 없는 거죠.”
내조와 외조를 주고받는 연인
‘독립과 개별성’을 중시하는 김상경씨 부부와 달리, 천호선(60·쌈지공예골목 대표)-김홍희(55·쌈지스페이스 관장) 부부는 ‘친밀과 애착’이 키워드다. 김홍희씨는 남편과 항상 같이 다녀서 친구들 사이에선 ‘천홍희’라고까지 불릴 정도다. 서른이 넘어 미술 공부를 시작해 마흔 중반에서야 비평가·전시기획자로 활동한 김 관장은 늦깎이로 출발했지만 베니스비엔날레 커미셔너를 맡을 정도로 숨가쁘게 성장해왔다. “남편의 지지와 격려가 없었더라면 어려운 일이었지요.” 김홍희씨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게 된 것도 1979년 남편이 주미 한국문화원의 문정관으로 발령난 것이 계기가 됐다. 남편의 외교 활동을 위해 가야금까지 배울 정도로 내조에 열심이었던 김씨는 각종 리셉션이나 파티에서 뛰어난 사교력을 발휘하며 미국에 머물고 있던 예술인들과 친구가 됐다.
“당시 백남준과 플럭서스 멤버와 같은 아방가르드 예술인들은 정부기관 사람들을 백안시했지요. 그러나 공직자의 부인이라고 해도 김홍희씨한테만은 달랐어요.” 아내를 ‘김홍희씨’라고 깍듯이 이야기하는 남편 천호선씨는 국내에서 아방가르드 예술에 대해 이론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비평가가 없으므로, 그 역할을 부인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공부에서 일하면서 아방가르드 예술인들을 국내로 초청하려고 해도 이론가가 없어 애를 많이 먹었거든요. 그래서 김홍희씨한테 계속 주입했어요. ‘당신밖에 이 공부 할 사람이 없다’고.” 천호선씨는 1992년 7월 김홍희씨가 백남준을 소개하는 책을 냈을 때가 가장 기뻤다고 회고한다. 아내의 보람은 남편에게도 하나의 성취였던 셈이다. “무조건 외조는 불가능해요. 나도 그만큼 내조를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스스로는 가부장제의 모순을 많이 느꼈지만, 커플의 좋은 점을 취하도록 의도적으로 가꿔온 결과라고 여겨요.” 김홍희씨는 “동거든 결혼이든 형식은 상관없지만 페미니스트에게도 좋은 남자가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어찌보면 미혼 여성들에겐 상대적 박탈감이 더 심해질 수도 있는 장밋빛 인터뷰를 마치며 반드시 이런 남편을 골라야 한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남자들이 드물기도 하려니와 일견 평등해 보이는 부부 가운데도 빈틈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주가 되려면 왕자가 아니라 머슴이 필요한 것은 맞다. 그러나 머슴이 어느 순간 왕자를 주장하고 나선다면 더욱 상황이 꼬일 수 있다. 요는 ‘선택적 적응’이라는 것인데, 이제는 아내와 남편에게 고정적인 역할을 주장하는 시대는 어차피 지나갔으니, 파트너가 가진 가능성의 싹을 눈여겨보아 여린 싹은 지지해주고 잘될 싹은 무성하게 커나가도록 거름을 듬뿍듬뿍 주자는 것이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 장광석
의리 있는 친구 지난달 민주당 비례대표직을 승계해 처음으로 금배지를 단 안상현(40) 의원은 “남편이 가장 가까운 친구”다. “다른 사람을 흉봐도 말 옮길 걱정은 전혀 없잖아요. 하하하!” 1992년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당시 여행사를 운영하던 남편 이영우(41)씨는 “중학생 때부터 정치인이 꿈”이었던 안 의원을 밀어주기로 결심했다. 결혼 전 27살 새파란 나이로 원주에서 강원도의원 선거에 출마해 떨어졌던 안 의원은 1993년 신혼 때 보궐선거에 출마했으나 다시 한번 고배를 마셔야 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평민당에 들어가 중앙에서 일한 탓에 지역 기반이 약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아무 연고가 없던 원주로 여행사를 옮겼고, 여행객들과 함께 여행지를 다니며 “100% 잘해줄 일도 200% 최선을 다했다.” “남편의 고객 관리는 1995년 선거에서 든든한 뒷배경이 되었죠. 고객들이 구전 홍보단이 되었으니까요.” 남편은 여행사 차량을 개조해 연단을 만들어주었고 아내와 함께 발로 뛰어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1998년 도의원 재선 뒤, 더 큰 꿈을 가지고 있던 안 의원은 2000년 총선을 바라보고 도의원직 사표를 냈다. 그러나 정작 공천은 다른 이에게 돌아갔고, 안 의원은 국회에 진입하기까지 3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주변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이때 남편은 당의 실세를 찾아가 “우리 아내가 남보다 부족한 게 뭐냐”고 담판을 지어 전국구 앞 순위를 받는 데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전한다.

안상현 의원은 “당신은 대단한 정치인이 될 것”이라며 정신적,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남편이 든든한 친구라고 말한다.

도영환씨는 사법시험 낙방으로 시름에 젖어있던 부인 박라영씨를 설득해 끝내 합격까지 이르도록 도와주었다.(김진수 기자)

김지호씨는 부인 김영미씨가 집중해서 일할 수 있도록 서재로 쓰던 방 한 가운데에 책장을 놓아 방 하나를 두개의 공간으로 만들었다.(김진수 기자)

국내 첫 여성 딜러 김상경씨. 남편 안종광씨는 아내가 직장에서 갈등할 때 대인관계의 위기를 극복하는 기법을 전수했다.

김홍희씨가 미술계에서 늦깎이로 출발했음에도 숨가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지지와 격려 덕분이다.(박승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