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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놀러가자, 박물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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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2-25 00:00 수정 : 2008-11-28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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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하러 가는 박물관 기행은 그만… 부모와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며 살아 있는 지식을

장면 하나

따분한 표정의 학생들이 줄지어 박물관에 들어간다. 학생들은 전시물은 보지 않고 유물 안내문만 공책에 부지런히 베낀다. 전시물이나 박물관 간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장 찍는다.

장면 둘

유치원생쯤으로 보이는 아이가 박물관 바닥에서 울고 있다. 재미없고 다리도 아프니 빨리 집에 가자고 투정을 부리고 있다. 부모는 난감한 표정으로 아이 옆에 서 있다.

사진/ 12월20일 서울 떡 · 부엌살림박물관에서 ‘금천 끼리또래’ 대표 오현애씨가 아이들에게 떡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박승화 기자)

겨울방학을 맞아 박물관이 학생들로 붐빈다. 그런데 대부분 아이들은 박물관은 따분하다고 싫어한다. 박물관에 놀러가는 게 아니라 숙제하러 가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박물관에 흥미를 붙이려면 부모나 교사 등 박물관에 대한 어른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박물관은 비디오테이프가 아니다.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한번 본 비디오테이프를 집어들면 주인이 “본 건데요”라고 말한다. 박물관 전시물은 보고 또 봐도 된다.

박물관은 비디오테이프가 아니다

도서관에 있는 책을 하루에 모두 읽겠다고 덤비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박물관 전시물을 하루에 다 보겠다고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뜻밖에 꽤 많다. 박물관을 즐거운 놀이터로 여기는 아이들은 같은 박물관을 10번 이상 다녀오기도 한다. 어른들이 원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주입하지 말고 아이가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

오현애(40·서울 금천구)씨는 박물관에서 하나라도 제대로 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사전 조사를 통해 박물관 나들이 주제를 될 수 있는 대로 하나로 좁혔다. 첫 나들이를 갔던 한국통신박물관에서는 ‘만약 우리한테 전화가 없다면’이란 주제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부모들이 조심해야 할 게 박물관 견학기록지 쓰기다. 아이들이 전시 안내문을 보고 베끼는 숙제가 되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 오현애씨는 “보기 좋고 깨끗하게 정리하기를 바라지 마라”고 충고한다. 회사 보고서 같은 고정된 양식이나 내용의 견학기록지를 원하면 아이들에게 부담을 줄 뿐이다. 아이들이 직접 견학기록지를 쓴 뒤 공책에 날짜와 같이 간 사람, 본 것 등을 메모하고 팸플릿 등을 같이 붙이면 된다.

나들이갈 박물관 주제를 정하면 주제에 맞게 아이들에게 직접 할 수 있는 견학 내용을 미리 나눠주는 게 좋다. 예를 들어 금융박물관에서는 박물관 1층 은행에서 가서 부모들이 가져온 지로 용지로 아이가 직접 혼자서 세금을 내도록 한다. 아이들이 돈의 흐름을 직접 경험해보는 기회가 된다.

오현애씨는 4년 전 한 학부모단체가 주최한 박물관 활용 워크숍에 참여한 뒤 그해 여름방학 때 아이들을 배운 대로 가르쳐보았다. 오씨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이들 친구까지 불러 함께 박물관 나들이를 다녔다. “4년 가까이 박물관을 다닌 아이들은 단순히 보고 베끼고 외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찾고 공부하고 종합적인 사고력이 많이 커진 것 같아요.”

사진/ 아이들이 떡 · 부엌살림박물관에 가기 사흘 전에 직접 떡을 만들어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요즘 학원·과외에 중독되어 혼자서 공부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티처보이’(커서도 엄마 품을 떠나지 못하는 마마보이에 빗댄 신조어)가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오현애씨가 놀이로 즐겁게 배우는 학교 밖 학교를 표방하는 ‘금천 끼리또래’ 대표를 맡아 ‘엄마와 함께 박물관 가기’ 프로그램을 준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두 딸(8·13살)의 박물관 나들이를 옆에서 지켜본 남편(정두환 차세대전략연구소 소장)도 ‘금천 끼리또래’를 적극 돕고 있다.

정 소장은 “아이들이 중심이 되어 다양한 경험과 놀이를 통해 살아 있는 지식을 즐겁게 배우는 게 중요하다. 아이들에게 고기뿐만 아니라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게 중요하다. 이것이 미래의 경쟁력이다. 두 딸의 박물관 나들이를 통해 얻은 경험을 금천 지역의 학부모, 아이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금천 끼리또래’의 특별한 프로그램

‘금천 끼리또래’에서는 △엄마와 함께 박물관 가기 △박물관 배우기 △출발 지구촌 탐험대 △박물관에 간 엄마 등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12월 ‘엄마와 함께 박물관 가기 주제’는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이다. 초등학교 1~3학년 어린이와 어머니들 20여명과 함께 서울 종로구 떡·부엌살림박물관과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을 찾아간다.

오현애씨는 12월20일 오후 떡·부엌살림박물관을 찾아가기 전에 12월17일 참가 신청을 한 아이들을 모아놓고 사전 교육을 했다. 떡과 떡살의 문양 자료를 만들어 빔 프로젝터로 보여주고, 미리 주문해둔 떡에다 떡살을 찍어 아이들이 직접 떡해먹기를 해봤다. 이날 아이들은 옷에 떡가루가 묻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떡살을 찍어보며 깔깔댔다.

박물관에 가기 전에 비슷한 주제를 다룬 어린이 책을 읽고 가면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떡·부엌살림박물관은 <떡잔치>(보림 펴냄)를 읽고 가면 좋다.

박물관 교육에 대한 정보는 새롭게 보는 박물관학교(mschool.oo.co.kr)에 가면 많이 있다. 겨울방학을 맞아 각 단체나 박물관에서 운영하는 박물관학교 등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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