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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현영진] 우리가 ‘동네 축구’처럼 보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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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2-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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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신축구클럽은 한국판 ‘칼레’다. 칼레는 지난 2000년 프랑스 축구협회(FA)컵 대회에서 순수 아마추어팀이면서도 쟁쟁한 프로팀들을 꺾고 당당히 준우승을 차지한 팀. 4부리그 팀인 칼레가 결승까지 오르는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로 전 세계 축구팬들을 흥분시켰다.

봉신클럽도 지난 12월1일 끝난 축구협회컵 대회에서 실업 강호 할렐루야를 꺾고 32강에 올랐다. 비록 수원시청에 발목을 잡혀 16강 진출은 실패했지만, ‘진짜 노동자’들로만 구성된 팀이 ‘밥만 먹고 공만 차는’ 팀들에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줘 국내 축구팬들을 기쁘게 했다.

봉신클럽은 인천 공단의 한 기계공구 제조업체 직원들로 구성됐다. 이 팀의 사령탑은 (주)봉신의 총무과장인 현영진(46) 감독이다. 그는 지난 1989년 이 축구팀을 만들었다. “15년 전쯤 직원들의 화합을 위해 축구대회를 열었는데 경기 수준이 예상 밖으로 높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축구 동아리를 만들기로 했죠.” 동호회 수준으로 시작한 봉신은 곧 인천 ‘동네 축구’ 무대를 석권한 뒤 3∼4년 만에 전국 클럽 대회에서 단골 우승팀이 됐다. 선수들 중에는 중·고교 때까지 선수생활을 했던 이들이 많다. 모두들 일류 프로 선수가 되는 꿈을 꿨으나 그 꿈이 일찌감치 좌절된 선수들이다.

“운동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사회생활에 적응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우리 직원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축구를 할 수 있게 되니까 직장생활에도 잘 적응하는 것 같아요.” 선수들은 선반공 등 생산직 노동자가 대다수다. 이들은 월∼토요일은 일을 하고 일요일에만 공을 찬다. 평일에는 철야·야근 등으로 공을 찰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봉신클럽은 이번 축구협회컵 대회가 끝난 뒤 ‘전국구 스타’가 됐다. 여기저기서 축구팬들의 전화가 걸려오고, 고교팀과 실업팀들로부터 연습 상대가 돼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는다. 이쯤 되면 ‘프로’라고 생각할 만도 한데 현 감독은 손사래를 친다. “프로요 아마추어 정신을 잃는 순간부터 축구가 재미없어질 것 같아요.”

글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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