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의 문에 들어서지 못한 청년들의 고통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청년들의 고통도 하나가 아니어서 여학생들의 경우 갑절의 고통을 당하는 것이 대학가의 보편적인 사정이다. 올 하반기 취업 시장도 거의 파장인데, 취업을 하지 못해 풀이 죽은 여학생들은 여전하다. 하기는 직장 여성들 역시 불경기 때면 으레 맨 먼저 정리해고나 구조조정 대상이 되기는 마찬가지여서 경제 위기 때면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더 고통을 받는 셈이다.
불편한 성공신화
그런데 그런 고통과 달리 올해 상종가를 치면서 절정을 구가한 여성들이 있다. 추미애와 강금실, 이효리가 그렇다. 올해 그야말로 떴고, 인기 짱이다. 추미애와 강금실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이효리는 자신이 원하면 한나라당 전국구 1순위도 내줄 수 있다고 할 정도이니 2003년은 분명 이들의 해였다.
세 사람은 올 한해 각자 개성 있는 방법으로 떴다. 얼마 전 추미애는 재미있는 발언을 했다. 강금실은 보라색 스타킹을 신었는데, 추미애도 보라색 스타킹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추미애의 답이 걸작이다. “내가 여성성을 남편에게만 확인하면 되는 것이지, 전 국민에게 확인시킬 필요가 있느냐.”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여성다움을 부각시키는 것이 정치적 출세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고, 여성 정치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전환 수술에 버금갈 정도로 남성으로 변신하거나 최소한 중성의 이미지를 만들어야 우리 국민들이 받아준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추미애의 뜨기 전략은 이효리와 정반대다. 이효리는 말할 것도 없이 섹시 컨셉트다. 도발적인 춤, 과감한 노출을 무기로 여성 특유의 예쁘고 섹시한 매력을 남성들에게 눈요깃거리로 제공한다. 이런 두 사람에 비하면 강금실은 절충적이다. 때론 보라색 스타킹도 신고 승무도 추고 여성다움과 미모도 지니고 있으면서 시답지 않은 남성 국회의원들과 과감하게 맞대결해 그들을 단번에 제압하는 능력과 강단, 카리스마도 지니고 있다. 적어도 남성들의 시선 속에서 강금실은 그렇다.
그런데 나는 올 한해 언론과 스타 제조 시스템이 부풀려서 제조, 유포한 이 세 여성의 성공신화에 솔직히 마음이 불편하다. 자신보다 토익성적이나 학업성적, 면접성적이 좋지 않은 남학생이 자신을 제치고 최종 합격했다는 여학생의 하소연을 들은 뒤부터는 더욱 그렇다. 한 중소기업 사장의 부탁을 받고 성실한 여학생을 그 기업에 추천했지만 결국 퇴짜 맞았는데, 사장에게 연유를 물어보니 그 여학생의 외모 때문이었다는 한 대학교수의 이야기를 들은 뒤로는 더더욱 그러하다. 추미애와 강금실, 이효리의 성공신화는 다른 여성들에게 무엇을 시사해주는가. 여성으로서 이 사회에서 성공하고 인정받으려면 추미애나 강금실, 이효리처럼 되어라. 여성이라는 ‘선천적 장애’()를 극복하고 남성들과 동등하거나 남성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니든지, 예쁘고 섹시하든지, 아니면 그 둘을 적절하게 조합시켜라. 세 사람의 성공신화는 혹 이러한 메시지를 여성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언론의 선정주의와 상업적 목적으로 세 사람의 성공신화가 가공되고 증폭되면서 남성들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처세법과 생존법을 암묵적으로 전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차원에서 보자면 세 여성의 성공신화는 근본적으로 남성들이 만들어내고, 남성 중심주의가 허가한 범위 내에서 만들어진 성공신화라는 점에서 진정한 여성들의 성공신화는 아닌 셈이다. 세상은 변했는가 이들 세 사람은 올 한해가 개인적으로는 더없이 의미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03년을 화려하게 장식한 세 여성의 성공신화가 찬란하면 찬란할수록 여성이 취업을 못하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것은 해당 여성 각자가 추미애나 강금실, 이효리가 되지 못한 때문이라고 여겨질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언론에서는 흔히 몇몇 소수 여성들의 성공신화를 증폭시키면서 세상이 변한 듯이 포장하곤 한다. 그 성공신화 속에서 여성들이 취직도 못하고 성공도 못하는 것은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남성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섹시하지도 않고 능력과 미모를 적당히 겸비하지도 못한 개인적 능력 탓으로 돌려지고, 결국 남성 중심주의 사회구조는 면죄부를 받게 된다. 많은 보통 여성들 입장에서는 2003년 추미애와 강금실, 이효리의 성공신화가 드리운 그늘이 너무도 짙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올 한해 언론과 스타 제조 시스템이 부풀려서 제조, 유포한 이 세 여성의 성공신화에 솔직히 마음이 불편하다. 자신보다 토익성적이나 학업성적, 면접성적이 좋지 않은 남학생이 자신을 제치고 최종 합격했다는 여학생의 하소연을 들은 뒤부터는 더욱 그렇다. 한 중소기업 사장의 부탁을 받고 성실한 여학생을 그 기업에 추천했지만 결국 퇴짜 맞았는데, 사장에게 연유를 물어보니 그 여학생의 외모 때문이었다는 한 대학교수의 이야기를 들은 뒤로는 더더욱 그러하다. 추미애와 강금실, 이효리의 성공신화는 다른 여성들에게 무엇을 시사해주는가. 여성으로서 이 사회에서 성공하고 인정받으려면 추미애나 강금실, 이효리처럼 되어라. 여성이라는 ‘선천적 장애’()를 극복하고 남성들과 동등하거나 남성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니든지, 예쁘고 섹시하든지, 아니면 그 둘을 적절하게 조합시켜라. 세 사람의 성공신화는 혹 이러한 메시지를 여성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언론의 선정주의와 상업적 목적으로 세 사람의 성공신화가 가공되고 증폭되면서 남성들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처세법과 생존법을 암묵적으로 전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차원에서 보자면 세 여성의 성공신화는 근본적으로 남성들이 만들어내고, 남성 중심주의가 허가한 범위 내에서 만들어진 성공신화라는 점에서 진정한 여성들의 성공신화는 아닌 셈이다. 세상은 변했는가 이들 세 사람은 올 한해가 개인적으로는 더없이 의미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03년을 화려하게 장식한 세 여성의 성공신화가 찬란하면 찬란할수록 여성이 취업을 못하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것은 해당 여성 각자가 추미애나 강금실, 이효리가 되지 못한 때문이라고 여겨질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언론에서는 흔히 몇몇 소수 여성들의 성공신화를 증폭시키면서 세상이 변한 듯이 포장하곤 한다. 그 성공신화 속에서 여성들이 취직도 못하고 성공도 못하는 것은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남성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섹시하지도 않고 능력과 미모를 적당히 겸비하지도 못한 개인적 능력 탓으로 돌려지고, 결국 남성 중심주의 사회구조는 면죄부를 받게 된다. 많은 보통 여성들 입장에서는 2003년 추미애와 강금실, 이효리의 성공신화가 드리운 그늘이 너무도 짙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욱연 | 서강대 교수 · 중국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