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1일 500회를 맞은 민가협 목요집회…거론된 양심수만 1500명, 외침은 계속된다
“양심수 강철민을 즉각 석방하라!”
“아주대 학생 김광수를 당장 석방하라!”
“양심수 민경우를 즉각 석방하라!”
12월1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 삼일문 앞에서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상임의장 조순덕)의 500회째 ‘목요집회’가 열렸다. 그리고 집회 도중 석방촉구 구호를 외치는 이 장면은, 꼬박 10년 동안 같은 장소, 같은 시각에 똑같은 구호를 들어야 하는, 한국의 인권 현실을 오롯이 드러내고 있었다.
“1년이면 양심수 모두 풀려날 줄 알았건만”
목요집회는 국내 최장기 집회 가운데 하나로 1993년 9월23일 시작됐다. 군사독재 시절을 막 끝내고 이른바 ‘문민정부’가 출범한 그해에 시작된 것이다. 목요집회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민가협 전 상임의장 임기란(74)씨는 얼마 전 척추 연골수술까지 받은 몸을 이끌고 이날 집회에 참석해 1993년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 목요집회를 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어요.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뒤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문민정부 아래서는 양심수는 없다’고 계속 주장하는 거예요. 우리가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얘기였지요. 그래서 직접 국민에게 양심수 현황과 인권 현실을 알리자는 목적에서 목요집회가 생긴 겁니다. 처음에는 100회는커녕 500회까지 가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죠. 우리는 당시 양심수가 금방 다 석방되고 국가보안법도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임씨의 말대로 첫 집회 당시 민가협은 “(1993년) 12월28일까지 모든 양심수를 석방하라”는 구호를 외쳤다고 한다. 취임 1년이 지나기 전에 양심수가 모두 풀려날 줄 알았던 셈이다. 그러나 양심수 석방의 구호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고, 당시 거리에 나섰던 민가협 어머니들은 모두 60대 이상의 할머니·할아버지가 됐다.
이날 목요집회에는 비전향 장기수로 1995년에 석방된 안학섭(73)씨와 납북 귀환어부로 간첩 혐의를 받아 고문기술자 이근안씨한테서 고문수사를 당했던 함주명(72)씨, 그리고 최근 양심수 대열에 합류한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씨의 아내 정정희(61)씨와 아들 린씨 등이 참석했다.
최근 개봉했던 영화 <선택>에서 신념이 확고한 원칙주의자로 그려진 안씨는 이날 집회 인사말에서 “많은 동지들이 형장에서 죽고, 영양부족으로 또는 자결해 감옥에서 죽었는데 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기는 했지만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민가협 어머니들의 힘”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 역사에 훌륭한 어머니들이 많았지만 이렇게 개별적인 가족의 테두리를 벗어나 사회제도를 개혁하는 어머니들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비전향 장기수 문제는, 목요집회의 끊임없는 문제제기로 2000년 ‘63명의 북송’이라는 결실까지 맺었다. 당시만 해도 비전향 장기수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전혀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세계 최장기수였던 김선명씨의 존재를 알리는 캠페인을 하는 데 얼굴 사진이 없어서 감옥에서 출소한 이들의 얘기를 전해 듣고 재구성해 그린 얼굴 그림을 피켓으로 만들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다른 장기수의 얼굴과 더 비슷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장기수 10여명은 이날 보라색 꽃을 민가협 어머니들에게 안겼다.
최근 법원에서 재심청구를 받아들여 재심이 개시된 함주명씨는 집회에서 고문기술자 이근안씨의 체포와 고문근절 운동을 벌여온 목요집회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어 전대협 동우회원들도 민가협 어머니들에게 큰절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목요집회가 지난 10년 동안 ‘인권신문고’로서의 구실을 한 사실은, 집회의 주제만 쭉 훑어봐도 금방 드러난다. 비전향 장기수 석방 캠페인, 고문기술자 이근안씨 검거 촉구, 조작간첩 사건의 진상규명 촉구, 전두환·노태우 사면 반대와 과거청산 촉구, 국가보안법 철폐 및 공안수사기구 폐지, 경찰폭력 개선, 감옥인권 개선, 독립적이고 실효성 있는 국가인권위원회 설치 등 굵직한 인권 현안들은 모두 목요집회의 주제였다. 그동안 거론된 양심수의 수는 1500여명에 이른다. 최근에는 장애인·이주노동자·철거민·여성·재소자·양심적 병역거부자 등 소수자들의 인권 문제도 목요집회의 단골 이슈다.
목요집회는 또 새로운 집회문화를 만들어내는 구실도 했다. 아르헨티나 5월광장 어머니회 초청 집회, 동티모르 독립운동가 초청 집회, 노벨평화상 수상자 에스키벨 등 국제적인 인권운동가나 인권단체들과의 국제연대 활동은 물론이고 가수와 시인, 배우들이 등장하는 거리음악제 형식의 집회, 고난과 희망의 아이콘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보랏빛 수건 등은 모두 목요집회의 산물이다. 가수 안치환·권진원·송시현씨와 노래패 ‘꽃다지’,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된 가수 김광석씨도 목요집회의 단골 참석자들이었다. 한주도 빠지지 않고 집회에 참가하는 성균관대 사회과학대 노래패 ‘아우성’도 주요한 문화 일꾼이다.
새로운 집회문화 만드는 역할도
목요집회에는 전통적으로 양심수 가족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이날도 지난 12월 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민경우 통일연대 사무처장 아들 준홍(11)군이 엄마와 함께 집회에 참가했다. 민군은 “아빠가 북한에 전화를 했다는 이유로 잡혀갔는데, 아빠처럼 억울한 사람은 모두 내보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두율 교수의 아내 정정희씨는 “남편은 천식이 심해졌는데도 구치소에서 적절한 조처를 취하지 않아 위험한 상황까지 가기도 했다”면서 “국가보안법의 피해를 입으면서도 희생자로 주저앉지 않고 500회 동안 목요집회를 이어온 것이 존경스럽다”는 소감을 밝혔다. 정씨는 민가협 어머니들이 집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 태어나 이 강산에 투사가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30년~”이라는 노래를 듣자마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물고문으로 숨진 서울대 학생 고 박종철씨의 아버지 박정기씨는 목요집회 10년 활동을 이렇게 정리했다. “민가협 어머니들은 둘을 낳았습니다. 민주화운동을 하는 자식을 낳았고, 또 하나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낳았습니다.”
목요집회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사회권’의 논의가 활발한 전 세계적인 추세와는 달리 ‘자유권’의 보장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국내 인권 현실로 비춰보면 당분간 목요집회의 주제는 끊임없이 생길 것 같다.
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아주대 학생 김광수를 당장 석방하라!”
“양심수 민경우를 즉각 석방하라!”
12월1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 삼일문 앞에서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상임의장 조순덕)의 500회째 ‘목요집회’가 열렸다. 그리고 집회 도중 석방촉구 구호를 외치는 이 장면은, 꼬박 10년 동안 같은 장소, 같은 시각에 똑같은 구호를 들어야 하는, 한국의 인권 현실을 오롯이 드러내고 있었다.

사진/ 500회를 맞은 목요집회는 국내 인권 현실을 고발하고 집회문화를 한 단계 높이는 구실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날 목요집회에는 비전향 장기수로 1995년에 석방된 안학섭(73)씨와 납북 귀환어부로 간첩 혐의를 받아 고문기술자 이근안씨한테서 고문수사를 당했던 함주명(72)씨, 그리고 최근 양심수 대열에 합류한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씨의 아내 정정희(61)씨와 아들 린씨 등이 참석했다.

사진/ 전대협 동우회원들이 민가협 어머니들께 큰절을 하고 있다.

사진/ 목요집회의 산증인 임기란 전 민가협 상임의장(왼쪽)과 채은아 민가협 총무(오른쪽).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