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야 클레바노프] 외골수, 화려하게 돌아오다
등록 : 2003-12-17 00:00 수정 :
지금 러시아에서는 한 외골수 행정전문 관료의 극적인 ‘부침’이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얼마 전 북서관구 특사 자리에
일리야 클레바노프(52) 현 산업과학기술부 장관을 임명했다. 클레바노프는 연방정부 부총리로 임명된 1999년 이후 모스크바 생활을 접고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그는 2001년 푸틴 대통령의 한국 방문 때 수행단장으로서, 그리고 올 7월에는 한-러 에너지공동개발위 러시아쪽 대표로 방한하는 등 한국 사람에게 낯설지 않은 인사다. 러시아 정부 내 군수 및 에너지 산업 분야의 전문가로 잘 알려진 클레바노프의 이번 특사 임명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깜짝 인사’로 여겨지고 있다. 이는 특사 물망에 오른 인사만 해도 현 러시아 정·관계의 내로라 하는 이들이 망라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클레바노프는 최근까지 사임설이 유력하게 나돌았던 탓에 모두들 더 놀랐다.
클레바노프의 복귀를 이른바 ‘프로페셔널리즘의 승리’로 보는 시각이 많다. 다른 한편에서는 레닌그라드 태생으로 이곳에서 공대를 졸업한 전형적인 기술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한때 푸틴 대통령이 부시장으로 재직 중일 때 레닌그라드 광학기술연합 사장으로 있으면서 쌓았던 교분이 전격적 특사 임명의 배경이라는 입방아가 오르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클레바노프의 중앙 진출은 이미 옐친 시절의 일로, 푸틴의 페테르부르크 인맥 끌어안기와는 거리가 멀다. 또 그는 정치적 로비가 일상적인 연방정부에서도 유독 전문행정 관료를 고집한 외골수로 소문나 있다. 그 결과 지난해 초에는 자신이 장관으로 취임한 산업과학기술부에서 무능한 인물로 찍힌 카시야노프 총리계의 사람인 보리스 알레신 차관을 전격 해임하기도 했다. 이에 발끈한 카시야노프 총리는 알레신을 클레바노프가 겸임하고 있던 부총리로 임명하고, 클레바노프를 평장관으로 강등해 한때 클레바노프의 관운이 다됐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 와중에도 클레바노프는 전통적인 기술자 출신답게 꾸준히 군수산업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 당시 진행 중이던 러-인도 무기판매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벼랑 끝에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또 이번 특사 임명에는 클레바노프가 지난 2000년 악몽의 원자력 잠수함 ‘쿠르스크’ 침수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정부 대책단장으로서 무난하게 처리한 것도 한몫했다. 이런 ‘충직한 전문가, 해결사’로서의 능력이 푸틴이 클레바노프를 떠나보내지 못한 원인으로 작용한 듯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박현봉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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