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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12 · 12의 주범들은 지금] 12월의 의리는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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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2-11 00:00 수정 : 2008-11-2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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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씨를 떠나는 쿠데타의 주역들… 자기 몫 챙기느라 측근들 처지 외면

12·12 24주년을 맞아 돌아본 쿠데타의 주범들. 한때 ‘의리’를 과시하며 전두환 전 대통령 주변을 떠나지 않았던 측근들이 자기만 챙긴다는 불평을 늘어놓으며 하나둘 등을 돌리고 있다. 반성은 여전히 없다.

장세동(67). ‘5공 향수’를 간직한 사람들은 그를 ‘의리의 사나이’라 부르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지난 1993년 전두환씨에 대한 사법처리 여론이 들끓었을 때, “어른을 구속하려 한다면 내가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막을 것이고, 그렇게 못한다면 나는 어른의 뒤를 따라가겠다”며 기염()을 토했던 그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배신과 변절이 판치는 이 시대에 장씨의 충성심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정서에 힘입어 장씨는 지난해 단기필마로 대선에 출마했을 때 여론조사에서 뜻밖의 지지율(2%)이 나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사진/ 12 · 12 쿠테타로 나란히 최고 통치자의 자리에 오른 전두환, 노태우씨. 그들은 2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솔한 사과나 참회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강재훈 기자)

수지김 사건, 장세동 혼자 덮어썼다

그러던 그가 최근 전씨와 ‘소원한 관계’로 돌아선 것으로 전해져 관심을 끈다. 연희동을 제 집 드나들 듯하던 장씨가 최근 전씨 집에 발길을 뚝 끊었다는 것이다. 전씨 측근들에 따르면 전씨와 장씨 사이에 ‘이상기류’가 감지된 것은 지난해 11월 대선이 시작됐을 때부터다. 전씨가 장씨의 대선 출마를 강하게 만류하는 바람에 둘 사이의 관계가 멀어졌다는 것이다. 전씨의 한 측근은 “장씨가 연희동을 찾아가 출마 뜻을 밝혔을 때, 전 전 대통령이 ‘우리 시대는 이제 끝났는데 왜 또 나서는가. 차분히 역사의 평가를 기다리자’며 말렸다. 그러나 장씨가 결국 출마하자 전 전 대통령이 매우 섭섭해했다”고 말했다. 장씨는 선거운동 기간에 전씨의 전폭적인 지원을 기대했으나 철저히 외면당해 ‘배신감’까지 느꼈고, 결국 대선 하루 전날 후보에서 사퇴했다.

장씨는 지난 10월 ‘수지김 간첩 조작사건’으로 법원으로부터 재산 가압류를 당해 더욱 궁지에 몰렸다. 법원이 ‘수지김’씨의 유족에 대한 배상과 관련해 서울고검이 당시 안기부장이었던 장씨의 재산에 대해 신청한 가압류를 받아들여 재산권 행사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장씨는 지난해 대선 때 후보들 중 가장 많은 38억원대의 재산을 신고했다). 장씨는 이 일과 관련해서도 전씨에게 서운한 감정을 갖고 있다고 한다. 전씨의 한 측근은 “수지김 사건은 5공 정권이 흔들리던 말기에 오직 전씨를 지키기 위한 충정에서 저지른 일인데, 그 피해는 장씨 혼자 뒤집어쓰고 있다”며 “장씨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지만, (전씨로부터)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장씨는 법원의 결정 이후 본인 명의 부동산을 처분하는 등 재산을 빼돌리려다 검찰의 경고를 받기도 했다.


사진/ 12 · 12 때 내란기도 방조혐의로 신군부에 체포된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연합). 신군부 진압에 나섰으나 실패한 장태완 수경사령관(강재훈기자)과 정병주 특전사령관(한겨레 자료사진).(오른쪽 위에서부터 아래로).
전씨 측근 중 전씨와 소원한 관계로 돌아선 것은 장씨뿐만이 아니다. ‘12·12 쿠데타 가담자’ 중 상당수가 더 이상 전씨와 왕래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전씨가 지난 97년 특별사면·복권으로 감옥에서 풀려난 뒤 골프장과 산으로 몰려다니며 결속력을 과시했었다. ‘5공비리 청산’으로 5공 세력과 거리를 둔 노태우 전 대통령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것과 대조적이었다. 조폭을 연상시키는 이들의 행동은 여론의 거센 질타를 받았지만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들이 최근 전씨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전씨 주변 사람들은 최근 전씨 일가를 둘러싼 각종 추문이 그의 측근들을 하나둘씩 떠나게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씨의 또 다른 측근은 “전 전 대통령은 과거 자신의 돈을 남의 돈 다루듯 하면서 부하들에게 돈을 썼고, 그런 모습이 부하들의 두터운 신망을 샀다”며 “그러나 지금은 손자, 손녀의 몫까지 챙기는 평범한 노인으로 전락해버렸다”고 꼬집었다.

전역 조치 당한 군인들 연금 못 받아

실제로 전씨는 “재산이 29만원밖에 없다”며 1800억여원의 추징금을 내지 않고 있지만, 최근 전씨의 부인 이순자(67)씨와 그의 아들, 손녀, 손자 등이 250억원대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다. 지난 11월에는 검찰이 전씨의 차남 재용(39)씨의 ‘100억원 괴자금’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재용씨는 거액의 괴자금을 자신이 운영하던 금융회사의 국내 법인과 미국 법인간의 자금거래로 위장해 해외로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데, 이 돈의 일부가 유명 여자 탤런트 ㅂ씨의 계좌에 유입된 것으로 드러나 입길에 올랐다. 검찰은 현대 비자금 사건의 계좌추적 과정에서 100억원을 발견했고, 이 돈이 재용씨 소유가 아니라 전씨의 비자금에서 흘러나왔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1월18일 있었던 전씨의 자택 내 별채에 대한 경매도 구설수에 올랐다. 경매 결과 이 집이 전씨의 처남인 이창석(51)씨에게 감정가(7억6천여만원)보다 두배나 비싼 16억4800만원에 낙찰된 것이다. 이씨는 이 집을 곧바로 전씨에게 되돌려줬다. 이씨는 지난 1990년 ‘5공비리 청산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다. 이씨가 현재 외제 오디오를 수입·판매하는 업체를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감정가의 두배나 지불할 정도의 ‘능력’이 어디서 나왔는지 의심받고 있다. 이번 경매는 전씨의 미납 추징금을 추징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본채는 부인 이씨 명의로 돼 있어 경매를 피할 수 있었다.

사진/ 12 · 12 쿠데타 주범들. 정호용 50사단장, 박준병 20사단장, 유학성 국방부 군수차관보, 최세창 3공수여단장, 허화평 보안사령관 비서실장, 허삼수 보안사 인사처장, 이학봉 합수부 수사1국장, 장세동 수경사 30경비단장.(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전씨 일가가 이처럼 끈끈한 ‘가족애’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반면, 측근 중 일부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진다. 5·6공 때 정계나 관계로 진출하지 못하고 군에 남아 있다가 김영삼 정권 때 전역 조치 당한 이들이 그들이다. 12·12 및 5·18 사건 재판에 참여한 한 변호사는 “12·12 때 영관 장교였던 피고인들은 5·6공 때 장군으로 계속 군에 남아 있었는데 유죄 판결로 군인 연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며 “그들 중 일부는 모아놓은 재산이 없어 자녀들의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는데, 이들의 처지가 전씨와 비교되면서 상대적으로 전씨의 ‘야박함’을 부각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진솔한 반성은 여전히 없다

12·12 때 수경사 헌병부단장(중령)으로 쿠데타에 가담했던 신윤희씨는 연금을 받기 위한 소송을 준비 중이다. 신씨는 “연금은 월급에서 공제한 돈과 국가가 보조하는 돈으로 이뤄지는데, 사법처리를 받아 국가에서 돈을 줄 수 없다면 내 월급에서 공제한 돈은 돌려줘야 되는 것 아닌가”라며 “연금 생각만 하면 열받는다”고 말했다. 지난 94년 개정된 군인연금법은 내란 등의 죄로 형이 확정되면 연금을 받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변 소속의 한 변호사는 “그들이 연금을 돌려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괘씸하긴 하지만, 94년 이전에 월급에서 공제한 돈에 대해서는 소급입법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12·12 및 5·18 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된 뒤 퇴직금을 환수당했던 황영시, 허삼수, 허화평씨 등은 지난 99년 5월 소송을 내 퇴직금을 돌려받았다.

12·12 당시 전씨의 군 선배로 쿠데타 후원 역할을 했던 황영시 당시 1군단장은 지난 10월 전씨의 동산 경매 때 대리인을 보내 경매에 참여하기도 했다. 황씨와 함께 전씨의 후견인 역할을 한 유학성 전 국방부 군수차관보는 재판이 진행 중이던 지난 96년 지병으로 사망했다. 황씨를 비롯한 ‘장성급’ 측근들은 지금 일절 사회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전씨와 측근들 사이의 ‘이상기류’ 속에서도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게 있다. 그들이 아직 참회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을 저지른 잘못에 대해 진솔하게 반성하지 않은 채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을 빨리 잊기만을 바라고 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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