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암] 강우규 의사를 아십니까
등록 : 2003-12-04 00:00 수정 :
“젊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는 다 알지만, 강우규 의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장암 ‘평안남도 지사’의 말마따나 강우규 의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놈들에게 폭탄을 던진 독립투사’로 기억하는 사람이 어쩌다 있을 정도이다.
11월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구기동 이북5도청에서 ‘왈우 강우규 의사 순국 83주기 추모식’을 연 장암 지사는 “강우규 의사는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에 못지않는 독립 투사이다.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고,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만방에 알렸다”고 강조했다. 1859년 평남 덕천에서 태어난 강 의사는 1920년 11월29일 서대문 형무소 형장에서 순국했다.
강 의사는 1919년 3·1운동 소식이 전해지자 만세를 불렀으나 만세운동만으로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제는 3·1운동 뒤 헌병의 총칼을 앞세운 강압통치에서 유화적인 문화통치를 내세우고 조선 총독을 사이토로 바꾸었다. 당시 60살이던 강 의사는 기만적 일본 통치에 격분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폭탄 2발을 구입해 서울로 들어왔다. 시골 농부 차림으로 꾸민 강 의사는 1919년 9월2일 남대문역(현 서울역) 앞에서 제3대 조선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에게 폭탄을 던졌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사이토는 용케 살아남았지만 현장에 있던 일본인 37명이 다쳤다. 추격에 나선 일제 경찰이 서울의 청년들을 무차별 체포해 고문하자 피신 중이던 강 의사는 일제 경찰에 연락해 수감됐다.
장 지사는 “강 의사의 의거가 잊혀진 것은 분단 상황 때문이다. 강 의사의 직계 후손들이 모두 북쪽에 있는 바람에 다른 독립 의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평안남도 중앙도민회와 평안남도는 순국 83주기 추모식을 계기로 강 의사의 의거 장소인 서울역 앞에 흉상을 세우는 등 기념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글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사진 스카이라이프 정용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