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 평화를 노래하는 역사박물관 건립 추진… 관광개발에 의한 파괴 대신 살림의 정신 새겨
건물을 짓지 않고 ‘지리산 역사박물관’을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11월28~29일 전남 구례군 지리산 한화리조트에서 열린 ‘지리산 역사박물관 건립 준비 심포지엄 - 지리산은 생명을 노래한다’는 이런 고민의 해법을 찾는 자리였다. 지리산생명평화결사와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 함께 마련한 이번 심포지엄은 2000년대 들어 ‘지리산 생명·평화 정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를 어떻게 시각적 형태로 구현할지 논의하는 자리였다.
11월28일 오후 3시에 시작된 심포지엄은 강정구 교수(동국대 사회학)의 발제 ‘지리산이 품은 한국 현대사와 우리의 과제’와 화가인 임옥상씨의 발제 ‘평화 콘텐츠의 보고 - 지리산은 나를 상상하게 한다’로 구성됐다. 심포지엄 뒤에는 지리산생명평화결사 운동을 벌이고 있는 도법 스님(실상사 주지)의 강연 ‘왜 지리산에서 평화와 생명을 이야기하는가’가 이어졌다. 이날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지리산을 가장 적게 변형시키면서, 가장 많은 이들에게 지리산 정신을 전하는 것이 해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참석자들은 다음날인 11월29일 노고단에 올라 이런 마음을 ‘민족화합기원제’로 표현했다.
좌우 이념대립의 상처 오롯이 간직
지리산은 한국 근현대사의 최대 비극 중 하나인 ‘좌우 이념대립’의 모습이 가장 극단적이고 압축적인 형태로 남아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6·25 직후 실제로 형은 빨치산으로, 동생은 토벌대로 참여해 서로 총부리를 겨누기도 했다. 또한 지리산은 남한의 국립공원 1호라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 생태계가 잘 보전돼 있는 곳이다. 지리산은 규모면에서도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의 3개 도에 걸쳐 있을 정도로 웅장하다. 이에 따라 지리산은 커다란 아픔을 겪었지만, 어머니처럼 모든 아픔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비친다. 지리산의 이런 모습들은 ‘지구 전체 생명의 위기’가 거론되는 21세기에 ‘살림의 정신, 생명의 정신’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지리산은 생명을 노래한다”를 공동 주최한 ‘지리산생명평화결사’(공동 대표 이병철 녹색연합 대표 등)와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사장 변형윤)도 지리산 정신이 한반도 평화·통일의 근본정신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애쓰는 단체라는 공통점이 있다.
11월28일 발제에서 화가 임옥상씨는 “지리산에 역사박물관을 세우려면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한 성찰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씨는 “특히 현재 우리의 문화마저 미국에 예속돼 있는 상황에서 이런 노력이 없다면 국적 없는 박물관이 탄생하기 쉽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 서 있는 김구 선생 동상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임 화백은 “그 동상은 누가 봐도 링컨의 형상이지 김구 선생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토론자로 나선 박하운 구례 문화원장은 “지리산 역사박물관이 이념갈등의 골을 해소하자는 것이 목적인 만큼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진행과정이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역시 토론자로 나선 건축평론가 이주연(건축디자인 전문지 월간 <공간> 주간)씨는 “지리산에 무엇인가를 짓는다는 것이 공해일 수 있음”을 전제로, “건물이 없는 박물관이 가능할 수는 없는지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역사기념관에서 중요한 것은 건물이라는 껍데기가 아니라, 지역 주민 등 이해 당사자들이 아픔을 기억해내고 화합해가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지리산 보전 운동을 벌이고 있는 지리산생명연대 양재성 집행위원장(목사)도 “지리산을 흠집내지 않고 만들 수 있는 것이 가장 좋다”며 “하나의 건축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지리산 전체를 박물관화하면 어떠냐”는 제안을 내놓았다.
지리산평화결사 이병철 공동 대표는 “박물관의 목적이 갈등의 시대를 그대로 드러내놓는 것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박물관 건립 과정은 상처 치유와 미래 희망을 보여주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이에 따라 “박물관의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아픔의 당사자가 함께 참여하거나 박물관 주변에 춤과 노래의 마당을 마련해 과거의 박물관이 아니라 미래의 박물관임을 보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연자로 나선 도법 스님은 박물관에 대해 “어떤 형식이 되든 우리 시대 생명 위기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담은 곳이 돼야 한다”며 “그럴 때에만 역사박물관이 지리산에 있는 나무나 새와 같이 지리산 그 자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각종 증언 청취 등 통해 건립 토대 마련
이번 심포지엄은 지리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리산 개발 움직임이 가시화하는 상황에서 열려 눈길을 끈다. 현재 전남 구례, 전북 남원, 경남 함양·산청 등 지리산과 접해 있는 7개 시·군이 협의체를 구성해 지리산 관광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문화관광부는 내년 예산에 ‘지리산권 관광개발 기본계획 수립 연구용역비’로 12억원을 신청해놓는 등 ‘관광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은 상태다.
하지만 지리산을 단순히 관광개발이라는 형식으로 접근할 때 지리산은 흉하게 일그러져버리기 쉽다. 그 대표적 예가 경남도에서 진행한 ‘지리산 공비토벌 관광화사업’이다. 경남도가 하동·산청·함양군과 함께 2001년 말 건물을 완공한 이 사업은 현재 일반화된 용어인 ‘빨치산’을 ‘공비’로, ‘북한’을 ‘북괴’로 표현하는 등 이름부터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에 따라 심포지엄 주최쪽인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은 앞으로 지리산권에 있는 빨치산·토벌대의 증언 청취, 관계자 간담회 지속 개최 등 ‘지리산의 생명의 소리를 담는 작업’을 계속하면서 역사박물관 건립의 토대를 만들어갈 예정이다.
지리산은 아픔을 겪어내면서 그 자신이 생명의 목소리를 키워왔다. 이제 그 목소리를 살려 쓸 것인지, 다시 개발의 소음 속에 묻어버릴지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았다.
구례= 글 · 사진 김보근/ 한겨레 tree21@hani.co.kr

사진/ 지난 11월28~29일 전남 구례 지리산 한화리조트에서 ‘지리산 역사박물관 건립 준비 심포지엄’이 열렸다. 참석자들은 지리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정신을 계승하는 박물관을 제안했다.
지리산은 한국 근현대사의 최대 비극 중 하나인 ‘좌우 이념대립’의 모습이 가장 극단적이고 압축적인 형태로 남아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6·25 직후 실제로 형은 빨치산으로, 동생은 토벌대로 참여해 서로 총부리를 겨누기도 했다. 또한 지리산은 남한의 국립공원 1호라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 생태계가 잘 보전돼 있는 곳이다. 지리산은 규모면에서도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의 3개 도에 걸쳐 있을 정도로 웅장하다. 이에 따라 지리산은 커다란 아픔을 겪었지만, 어머니처럼 모든 아픔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비친다. 지리산의 이런 모습들은 ‘지구 전체 생명의 위기’가 거론되는 21세기에 ‘살림의 정신, 생명의 정신’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사진/ “지리산은 생명을 노래한다.” 참석자들은 11월29일 노고단에 올라 ‘민족화합기원제’를 열기도 했다.

사진/ 지리산은 상처로 남은 현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948년 여순사건 관련자 소탕 작전때 불탄 노고단의 외국인 선교사 별장터.(윤승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