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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주소실명제/ 김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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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2-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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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북 주민이다.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3동 ○○○번지. 거기엔 비록 전세일망정 3년째 우리 네 가족이 둥지를 틀고 있는 아늑한 내 집이 있다. 그렇다고 내가 무주택 서민은 아니다. 가까운 동네에 국민주택 규모의 아파트 한채를 소유하고 있다. 다만 내 집 살림에 그 아파트는 너무 좁아서 세를 내주고 따로 나와서 살고 있을 뿐이다. 그게 나의 부동산 실록이다. 내게도 아파트값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르지 않는다 해서 무슨 다른 수를 생각할 여지는 없다. 이것도 그나마 가진 자의 여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집을 굴려서 불로소득을 올릴 능력도 시간도 없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좀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강남이 배타적인 영토가 되기까지

하지만 이런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라는 것을 사는 집인 동시에 재산 불리기의 도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아파트를 통해 재산을 불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럴 만한 능력과 조건과 의지가 갖추어져야 한다. 그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강남이 생각난다. 대충 귓전에 들리는 대로만 해도 내 아파트와 같은 평형의 강남 아파트의 가격은 내 아파트의 거의 세배에 육박하고 있다. 그들은 그 아파트를 가지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겠지만 그 중 일부의 사람들은 이를테면 그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융자를 얻어 마련한 2억, 3억원의 자금으로 강남이나 신도시의 새 아파트에 투자해 간단하게 적게는 몇천만원에서 많게는 억대에 이르는 이득을 올린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잠재적·실재적 골드러시가 존재하는 강남이라는 지역은 서울의 다른 지역일 뿐 아니라 전국의 모든 지역에 대해 특권적인 지역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1970년대 막대한 투기차익의 정치자금화를 노린 박정희 정권에 의해 강북 과밀화 해소라는 명분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강남지역은 처음에는 그저 조금 나은 교육 및 생활여건 때문에 그 중 일부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서울의 다른 지역에 비해 약간 높은 정도로 형성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신개발지로서의 투기수요의 항존과 8학군이라는 이름으로 상징되는 교육여건의 상대적 우세가 먼저 견인차가 되고, 상대적 부유집단의 거주지라는 데서 비롯된 신상류층형 ‘고급’ 문화의 형성과 재생산이 또 하나의 요인이 되어 강남이라는 곳은 하나의 신흥개발지에서 점차 계급적·문화적 차별성이 지역적 경계로 현상하게 되는 한국 사회의 한 특권적이고도 배타적인 영토가 되어버린 것이다.

최근 강남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투기를 잡아보겠다고 또다시 이런저런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이 역시 강남지역의 투기역량을 잠재우는 데는 처음부터 역부족이라는 생각이다. 강남이 이미 하나의 특권적 지역이 되어버렸다 하더라도 강남의 물적 토대의 큰 뿌리는 여전히 부동산 차익이고, 그런 한에서는 어떠한 투기대책도 강남 사람들에게는 적대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저항도 필사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저항은 조직적이고 전방위적일 것이 분명하다. 입법·행정·사법·언론 모두가 그 저항의 전선이다. 하지만 그 저항의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 모든 전선에 배치되어 있는 ‘강남 사람들’이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때로는 능동적이고 격렬하게, 때로는 수동적이지만 완강하게. 그러면 모든 부동산 대책은 예전에도 그랬듯이 슬그머니 또 핵심을 비껴갈 것이다.


부동산 대책을 제시하는 강남인?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부동산 대책을 연일 발표하는 경제부처와 세무당국, 이를 입법화하는 국회, 이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학계, 투기범법자를 처벌하는 검찰이나 사법부, 이를 보도하고 여론화하는 언론 등에 얼마나 많은 강남 사람들이 포진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 하나같이 입을 모아 부동산 투기를 개탄하는 그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 투기의 직·간접적 수혜자일까 하는 생각. 이어서 나는 이런 농담 같은 생각을 또 해본다. 절대로 그렇게 될 리는 없겠지만 신문이나 텔레비전 등에 나와서 강남의 부동산 투기 문제를 이야기하고 그 대책을 언급하는 모든 사람들의 이름 곁에 그의 현주소를 써넣는 주소실명제를 도입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그러면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우스꽝스럽거나 비장하거나.

그게 이 글의 첫머리에서 내가 나의 별 볼일 없는 ‘강북 주소’를 먼저 써놓고 시작한 이유이다. 이것도 일종의 자해공갈일까.

김명인 | 문학평론가 · 인하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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