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 “외국인 투자는 ‘평화’에 달렸다”

487
등록 : 2003-12-04 00:00 수정 :

크게 작게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이 밝히는 ‘투자를 막는 것들’… 북핵과 국내 정치 · 사회 불안 해소가 급선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현 경남대 총장)이 이번에는 외국인투자 유치를 위해 발벗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최근 한반도의 안보문제가 국가신용도나 외국인투자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감안해 그가 삼성전자·포스코·대우중공업·에스원·코오롱 등 국내 대표적인 기업과 함께 외국 투자가들의 안보 우려 불식에 나선 것이다. 삼성증권이 주관한 국내 5개 우량기업의 외국인투자 유치 설명회는 지난 11월17일과 19일 홍콩과 뉴욕에서 열렸다. 박 총장은 ‘한반도 평화 전망’을 주제로 강연한 데 이어 질의응답을 통해 북한 관련 민감한 문제들을 솔직하게 설명해 외국 투자가들의 우려를 크게 해소시킨 것으로 평가받는다.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은 “한반도 평화 전망에 대한 확신과 더욱 적극적인 홍보가 절실히 필요한 때”라고 강조한다.(이용호 기자)
그는 “외국 투자가들은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파병이나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보다는 북핵 문제와 국내 정치·사회적 불안정을 한국 투자의 더 큰 걸림돌로 인식하고 있더라”고 밝혔다. 이번 설명회에는 뉴욕의 금융투자 전문회사인 라자드(Lazard)·퍼트남(Putnam)·보스턴컴퍼니(Boston Company) 등 30여명의 기관투자가들이, 홍콩에서는 피델러티(Fidelity)·캐피털(Capital)·퍼스트스테이트(First State) 등 50여명의 주요 외국 투자금융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투자환경의 불확실성 제거에 한몫


-이번 외국인투자 유치 설명회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전과 달리 미국 회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우리 기업이 직접 한국 기업 투자에 관심 있는 회사를 초청해 그들의 한반도 안보 우려 사안에 대해 직접 설명하고 투자를 촉구해서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낸 데 의의가 있다. 이는 앞으로 기업들이 북핵 문제 등 안보 관련 이슈들에 대해 정부 당국만 바라보는 수동적 자세를 버리고 정부와 경제계가 힘을 합치고, 권위 있는 전문가들을 활용해 투자환경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외국 투자가들의 한국 투자환경에 대한 전반적 평가는 어떠했나.

=한마디로 ‘지금은 대규모 투자를 할 때는 아니다’라고 보더라. 이들은 한국 상황을 주로 언론을 통해 접하는데 한국 상황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있더라. 보도가 나올 때마다 그렇게 위험한 지역에 누가 투자하겠느냐는 식이다. 이들의 눈에 한국은 그야말로 폭풍 전야의 고요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내가 정말 한국의 안보환경 설명회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직접 이들이 우려하는 사안들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니까 크게 안도하는 듯했다.

-외국 투자가들은 주로 어떤 점을 우려하고 있었나.

=북한 관련 관심사항은 이런 것들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말 믿을 만한 인물인가. 지도자로서 자질을 갖췄나. 체제안전보장을 해주면 핵무기를 포기하겠다고 밝혔는데, 그의 말을 믿을 만하나. 김정일 체제가 경제적으로는 이미 망한 나라나 다름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버티고 있는 것이냐. 그 비결이 무엇이냐. 김 위원장이 군부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니냐 등이었다.

-북한의 개혁·개방이나 남북경협에도 관심을 보였나.

=물론이다.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특구에 이어 신의주 특구가 성공할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 묻더라. 이번 투자 설명회에 초청된 외국 투자가들은 대부분 투자 환경이 호전되면 한국에 투자하겠다는 의향을 갖고 있는 이들이라 귀를 쫑긋 세우고 듣더라. 이들에게는 북한 문제가 한국에 투자한 뒤 떼이느냐 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남의 일로 여기지 않는 듯했다.

무력충돌 가능성 희박… 노사화해 절실

-투자가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어떻게 설득했나.

=한반도 평화 전망은 생각보다 훨씬 밝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한반도에서 무력충돌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단언했다. 경제제재나 공해상에서의 북한 선박 운항 저지 등 강압 조처는 북한의 무력 대응 조처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어 실제 이행하기가 쉽지 않으며, 미국이 내년도 대선을 앞두고 북한과 정면충돌 하기를 원치 않고, 미국의 맹방인 한국과 일본이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또 북한도 어려운 경제 여건을 감안해 북핵 사태의 평화적 해결이 실보다 득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6자회담이 재개되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더 실용적인 조정 방안이 마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노무현 정부가 6자회담 등을 통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의지를 확고하게 견지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홍콩의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린 투자유치 설명회에서 강연하는 박재규 전 장관.
-남북이 언제쯤 통일될지에 대한 질문도 많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주로 북한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곧 무너지거나,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 시기가 예상보다 빨리 올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었다. 특히 이들은 투자가들의 속성 때문인지 통일이나 붕괴 등의 급변 사태시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2000년 정상회담에서 남북이 당장 통일 논의는 하지 말고 ‘선경제회복, 후통일’하는 데 이해를 같이한 뒷얘기들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현재의 북한 경제 수준을 감안하면 통일은 앞으로 20년이 지난 뒤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성공단과 관련해 투자가들은 특히 어떤 대목에 관심을 보였나.

=북한의 개발 성공 의지와 이에 대응한 한국 기업의 진출 움직임 등을 물었다. 북한 당국이 10년 전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에는 한국 기업을 배제했으나 지금은 다르다. 개성공단 및 신의주 특구에 한국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개성공단 관리 및 운영 책임도 한국인이 맡을 가능성이 크다고 알려줬더니 고개를 끄덕이더라. 더구나 개성공단이 지금까지 획기적 진전은 없으나, 개성공단의 성공은 북한의 개혁·개방을 촉진하고 북한 내 다른 지역으로의 파급 효과가 있으므로 사업의 성공을 위해 노무현 정부도 많이 노력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북한 문제 이외에 투자가들이 우려를 표시한 부분들은 어떤 것인가.

=불안정한 국내 사정들이다. 특히 노사갈등을 크게 우려하더라. 21세기에도 쇠파이프가 난무하고, 화염병이 날아다니는 나라가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하더라. 노무현 정부의 노력과 달리 노사관계가 날로 악화되는 데 당황하고 있었다. 심각한 여야간 대립 등 국내 정치 혼란상과 불법 정치자금 수사에 따른 주요 대기업 기업인들의 줄소환 등에도 크게 관심을 보였다. 정치 지도자들의 정치력과 리더십 부재도 우려하더라. 많은 외국 투자가들이 만약 당신이 돈을 갖고 유망한 투자처를 물색하는데 이런 불안정 요인들이 쌓여 있는 한국을 찾겠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이들은 ‘아직은 관망하겠다’는 견해가 많아 보였다. 더구나 북핵 문제까지 겹쳐져 외국 투자가들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이 상당히 불안정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의 상황을 매우 희망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는 한 단계 높은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금만 기다리면 한국 내부의 난제들은 곧 해결돼 더 투명한 정치자금 기부문화를 만들고, 전근대적인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의 긍정적인 결과를 낳아 궁극적으로 외국 투자가들을 위한 매력적인 투자환경을 조성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남갈등 풀어야 남북관계 개선된다

-앞으로의 외국투자 유치 전망과 과제를 말해달라.

=2004년이 참으로 중요한 한 해가 되리라 본다. 아직은 외국 투자가들이 인내를 갖고 지켜보겠으나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위기요인들이 그대로 존재할 경우 미련 없이 중국과 동남아로 달려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이 점차 외면당하면 반사이익을 즐길 주변 국가들이 적지 않다. 따라서 이번 투자유치 설명회와 같은 적극적 유치 전략이 요구된다. 내년에는 서울로 외국 투자가들을 초청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체험적으로 느끼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 등 남북화해협력에 기여한 공로로 한 사회단체와 언론사가 공동 수여하는 제1회 ‘통일문화 대상’ 수상자로 결정되기도 했다. 내년에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또 어떤 역할을 할지 궁금하다.

=내년에는 남북관계 개선의 가장 큰 걸림돌인 남남갈등을 푸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힘을 쏟을 작정이다. 당장은 6월 남북정상회담 4돌을 기념해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명 동포학자들을 초청하고, 국내에서는 대표적인 진보와 보수 인사들을 두루 참여시켜 남남갈등을 해소하고 남북관계 발전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방안 모색을 위한 국제학술세미나 개최를 준비 중이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