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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가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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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2-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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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서 한국인들이 피살됐다는 소식이 2003년 한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12월의 시작과 함께 날아들었다. 한장 남은 올해 달력이, 오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에 등장하는 담쟁이넝쿨 잎처럼 삶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기보다는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는 것 같아 착잡하고 불길한 예감까지 엄습해온다.

전투병 추가파병이 거론되면서 언젠가 예기치 않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감지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추가파병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우리가 보복의 대상이 되고 첫 희생자가 민간인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부시 대통령의 종전 선언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전쟁이 계속되고 있음도 어렴풋이 알았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이번 사고는 우리에게 날카롭게 일깨워주고 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식의 부질없는 짓인 줄 잘 알지만,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는 믿음으로 다시 한번 쓴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파병 결정을 철회하라는 것이 그것이다. <한겨레21>은 그동안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명분 없는 전쟁이기 때문에 중단되어야 하며, 침공 뒤에는 그것이 사실로 드러났으니 즉각 철수해야 한다고 지적해왔다. 특히 국익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국민 동의 없이 군대를 파병하는 것은 세계 평화를 외면하는 침략전쟁의 공범이 될 뿐이라고 여러 차례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가 파병 규모와 시기만을 저울질하고 있는 지금, 모든 게 공허한 메아리로 남아 안타까울 뿐이다.

얼마 전부터 <한겨레21> 편집진 사이에는 올해 4월3일자로 발행된 452호 잡지가 자주 화제에 오르내린다. ‘미국은 진다’라는 표지기사 때문이다. 이라크 침공 초기인 당시로서는 무척이나 ‘엉뚱한’ 주장을 편 셈인데, 종전 이후 이라크 무장 저항세력의 게릴라전이 계속되면서 이제는 미국과 이라크 중 과연 누가 최후의 승리자가 될지 내기하자는 농담까지 오고 갈 정도다. “미국은 이라크전을 통해 민주주의 정통성을 스스로 훼손했으며, 미국 패권에 대한 다른 국가들의 자발적 동의를 절대적으로 약화시킬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전은 소탐대실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 엉뚱한 주장이 점차 현실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미국의 한 군사전문가는 “미국과 부시 행정부, 그리고 모든 것이 이라크라는 거대한 ‘블랙홀’로 빨려들어가고 있다”며 이라크 침공의 종말을 조심스럽게 예언하고 있다.

미국의 요청으로 이라크전에 참전했거나 참전이 예정된 나라들의 공항은 미국에 대한 보복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주검들이 운구되면서 눈물바다를 이루고 있다. 먼 나라 얘기로 들렸지만 결국 한국도 예외일 수는 없게 됐다.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pea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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