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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여학생도 바지 입고 등교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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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2-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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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부, 치마로 규정된 여학생 교복에 쐐기… 개선권고에 그쳐 바지 선택은 학교별로 결정

이제는 칼바람에 종아리를 비비지 않아도 될까. 당당하게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갈 수 있는 날이 드디어 오는 걸까.

‘여성 복장=치마’라는 일상적인 편견에 ‘쐐기’가 박혔다. 일선 학교에서 여학생에게 교복으로 치마만 입도록 규칙으로 정하는 것(<한겨레21> 481호 사람과 사회)은 남녀차별의 소지가 있다는 여성부의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사진/ 여학생들이 바지교복을 입을 수 있게 됐다. 그동안 많은 중 · 고등학교에서는 학교 규칙으로 여학생이 치마만을 입도록 했다.(김진수 기자)

순종적 이미지의 여성상 획일화에 한몫


여성부는 지난 11월24일 남녀차별개선위원회를 열어 “여학생 교복이 치마여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부족하고, 치마만을 입을 경우 여학생의 행동과 태도를 규제하게 되어 성별에 따른 차별적 감정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여학생에게 교복으로 치마만 입도록 학교 규칙으로 강제하는 것은 ‘관행적으로 여성에게 치마를 강요하는 전근대적 의식의 반영’이라는 설명이다.

여학생들과 학부모, 교육단체들은 여학생들의 치마교복이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 이를 강요함으로써 순종적이고 전형적인 여성의 모습을 재생산해내고 있다며 바지교복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장해왔다. 여성부는 이에 따라 각 시·도 교육청에 여학생들이 교복을 입을 때 치마와 바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일선 중·고등학교를 ‘지도’하도록 권고했다.

학부모들과 교육단체들은 두 손 들어 환영하고 있다. 진영옥 전교조 여성위원장은 “여학생들이 스스로 활동하기 편한 복장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며 “여성부의 권고가 형식에 그치지 않도록 교육부가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부의 조사결과, 지난 5월 현재 전국 4036개의 남녀공학 및 여중·고교의 54%(2181곳)가 치마교복을 입도록 교칙으로 정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치마와 바지교복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여성부의 개선권고는 말 그대로 ‘권고’일 뿐 강제성은 없다. 일선 학교에서 “우리는 여성이 다소곳하게 치마를 입는 게 좋다고 본다”거나 “치마교복은 학교의 고유한 전통”이라고 주장하면 딱히 손을 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여성부 관계자는 “전국의 모든 학교를 감독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렵고, 교복은 각 학교의 재량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교칙을 바꾸라고 강제하기는 힘들다”고 털어놨다.

자기결정권 확대… 치마는 미풍양속?

게다가 ‘역차별’을 주장하는 일부 남성들의 반발도 거세다. 여성부 인터넷 게시판(www.moge.go.kr)은 결정 뒤부터 거친 욕설과 반발로 도배질되고 있다. “전통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한탄부터 “남학생들도 여름에 반바지를 입게 해달라”는 실리적인 요구, “남성 차별하는 여성부는 자폭하라”는 섬뜩한 구호까지 의견과 요구도 다양하다. 심지어 여성부 보도자료를 받은 일부 기자들까지 “그럼 남자들도 치마 입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수준 낮은 개그()를 선보였다고 전해진다.

여학생들에게 ‘강요된’ 치마는 정치적이다. 불편함과 같은 표면적인 이유도 있지만, 치마는 기본적으로 ‘남’을 끊임없이 의식하게 하고, ‘순종적이고 소극적인’ 이미지를 스스로 재생산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바지교복의 문제는 치마든 바지든 스스로 선택하는 ‘자기결정권’의 문제이며, 여성이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디딤돌’의 역할을 할 ‘기념비적’ 사건이다. 물론, 잘 된다면 말이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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