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던 어린 시절, 내 눈에 비친 아버지는 한국전쟁에서 인민군과 용감하게 싸우다 부상까지 당한 그야말로 ‘전쟁영웅’이었다. 동네 친구들 사이에서 아버지의 무용담은 늘 화젯거리였고, “우리 아버지는 대장이었다(분대장을 과장한 것이지만)”라는 말 한마디에 아이들은 풀이 팍 죽어버렸다.
밥상머리에서 반찬 투정을 할라치면 으레 시작되는 일장훈시, “내레 전쟁 때는 주먹밥 한 덩어리 못 먹고 며칠씩 버텼서야. 니네들은 지금 호강에 겨워서 그러지. 이 아버지레 정말 고생 많이 했디….” 그리고 이어지는 무용담, “내레 도솔산 전투에서 말이야….” 열아홉의 나이에 나이를 속이면서까지 국군에 자원입대해 무공을 세우셨던 아버지. 그것도 혈혈단신 월남민으로 북한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형제들을 향해 총을 쏘신 아버지는 전쟁광이었을까?
아버지는 ‘전쟁광’이었을까
한국전쟁을 연구하면서 난 아버지가 전쟁광이 아닌 너무나도 평범한, 이 땅의 현대사가 빚어낸 허다한 비극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 조용히 해주신 다음 얘기는 이 생각에 확신을 갖게 했다. 인천상륙작전 직후, 아버지가 속한 해병부대가 퇴각하는 인민군을 소탕하던 어느 날, 매복하고 있던 아버지 코앞에 황급히 도망가는 인민군 병사를 발견했더란다. 아무 생각 없이 방아쇠를 당기려다 유심히 보니 고향에 두고 온 열댓살 먹은 남동생과 너무나 흡사하더란다. 총을 내려놓고 그 어린 인민군이 도랑을 건너 산등성이를 무사히(?) 넘어가기를 기도했는데 어디선가 그만 ‘탕 탕 탕…’ 총성이 울렸다고 한다. 아버지는 여느 실향민과 마찬가지로 “잠깐 서울에 다녀 오겠노라”며 고향을 떠나셨고, 동구 밖 멀리까지 나와 한없이 당신을 바라보셨던 어머니를 잊지 못하는 분이었다.
누가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을 전쟁으로 내모는가?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외치는 자들은 전쟁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양상을 띤 국제정치에서 자국의 안보를 위해서는 피할 수 없다고 강변하는 현실주의자들이다. 이들에게 안보란 국가의 군사적 안보와 동일시된다. ‘무정부적인’ 국제정치 환경에서 국가행위에 관한 비관적 가정들 때문에, 대부분의 현실주의자들은 국가가 완벽한 안보를 성취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현실주의자들은 국제정치 환경을 많은 국가들이 자기보존을 넘어서는 국가안보 이익을 추구하는 곳으로 또는 국가들이 야망을 통제할 수 있는 세계정부가 없는 불완전한 세계로 보기 때문에, 전쟁을 방지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전쟁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는 미국의 용병이 되지 마라” 이들은 안보와 국익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애국적 희생, 용맹 등을 부추겨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보내는 ‘노회한’ 전문가, 즉 ‘전쟁광’들로서 작금의 한국군 이라크 파병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자들이다. 파병에 찬성하는 정치·외교·군사·경제 전문가들이 모두 한입으로 떠들고 있다. “미국과의 동맹은 국제 여건상 한국 안보에 불가피하다. (500만명 이상의 한국인이 죽은) 한국전쟁에서 3만여명의 미군이 피흘렸다. 보답해야 한다. 이라크 재건 참여는 한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전문가들이여, 석유확보와 아랍권에서의 패권확대를 위한 침략전쟁을 벌이는 미국, 그리고 대량살상무기를 찾겠다며 공격한 이라크에서 그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열화우라늄탄이라는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해 평범한 이라크 국민의 과다출혈을 강요하는 미국이 과연 진정한 우방인지, 우리 젊은이들의 이라크에서의 피흘림이 역사적으로 정당한지를 생각하라. 자신이 미국의 패권주의 체제에 고용된 하수인으로, 그 체제를 영속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만주 핵폭격’과 ‘북베트남 대량폭격’의 주인공들이 아직도 이 땅에서 존경받는 미국인으로 기록되는 것이 정당한지. 지난 겨울 베트남에서 만난 한국군의 베트남전쟁 양민학살 생존자인 한 할머니는 강한 눈빛으로 이라크 파병찬성론자인 이 땅의 노회한 전문가들, 전쟁광들에게 일갈한다. “다시는 미국을 따라 다른 나라 용병으로 가서 그 나라 사람 죽이는 일은 하지 마. 또 그러면 난 정말 당신들을 미워할 거야.”
“다시는 미국의 용병이 되지 마라” 이들은 안보와 국익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애국적 희생, 용맹 등을 부추겨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보내는 ‘노회한’ 전문가, 즉 ‘전쟁광’들로서 작금의 한국군 이라크 파병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자들이다. 파병에 찬성하는 정치·외교·군사·경제 전문가들이 모두 한입으로 떠들고 있다. “미국과의 동맹은 국제 여건상 한국 안보에 불가피하다. (500만명 이상의 한국인이 죽은) 한국전쟁에서 3만여명의 미군이 피흘렸다. 보답해야 한다. 이라크 재건 참여는 한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전문가들이여, 석유확보와 아랍권에서의 패권확대를 위한 침략전쟁을 벌이는 미국, 그리고 대량살상무기를 찾겠다며 공격한 이라크에서 그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열화우라늄탄이라는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해 평범한 이라크 국민의 과다출혈을 강요하는 미국이 과연 진정한 우방인지, 우리 젊은이들의 이라크에서의 피흘림이 역사적으로 정당한지를 생각하라. 자신이 미국의 패권주의 체제에 고용된 하수인으로, 그 체제를 영속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만주 핵폭격’과 ‘북베트남 대량폭격’의 주인공들이 아직도 이 땅에서 존경받는 미국인으로 기록되는 것이 정당한지. 지난 겨울 베트남에서 만난 한국군의 베트남전쟁 양민학살 생존자인 한 할머니는 강한 눈빛으로 이라크 파병찬성론자인 이 땅의 노회한 전문가들, 전쟁광들에게 일갈한다. “다시는 미국을 따라 다른 나라 용병으로 가서 그 나라 사람 죽이는 일은 하지 마. 또 그러면 난 정말 당신들을 미워할 거야.”

안정애 | 평화여성회 국방과제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