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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사회보장제도의 획기적 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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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1-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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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여액 하향조정에 상당수 수급권자에서 탈락…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저소득층의 목을 조른다

(사진/정부가 획기적인 사회보장제도로 내세우고 있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11월4일 열린 ‘기초생활보장제 급여액 하향조정에 대한 2차규탄집회’)
“죽음 부른 기초보장제도 최저생계보장하라.”

11월4일 오전 11시 과천정부종합청사 앞 공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목청껏 외치고 있었다. 지난 10월27일에 이어 열린 ‘기초생활보장제 급여액 하향조정에 대한 2차 규탄집회’이다. ‘생계보장’이란 머리띠를 두르고 격앙돼 있는 600명의 이들은 서울, 인천, 안산 등지에서 몰려든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 및 탈락자들이다. 거동이 불편한데다 하루벌이도 아쉬운 이들이 왜 “한국 사회보장제도의 패러다임을 바꾼 대사건”으로 평가받으며 지난 10월부터 시행된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되레 비판하고 있나?

5만원으로 한달을 살라니…


이날 집회에서 만난 박옥자(64·인천시 동구 송림동)씨는 “도대체 이럴 수가 있느냐”며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이래 가지고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요.” 그도 그럴 것이 초등학교 2학년생인 손자와 함께 살고 있는 박씨가 지난 10월에 받은 첫 생계비 급여는 기껏 3만5천원. 올 4월부터 9월까지만 해도 15만원이란 생계비를 정부로부터 지원받았던 터에 박씨의 충격은 매우 컸다. “며느리와 아들이 IMF 이후에 생활고로 다투다 갈라서고 집을 나가버려 제가 손자를 맡아 키웁니다. 하지만 노인에게 주어진 일자리라고 해야 기껏 몇푼 거머쥐는 허드렛일. 그나마 공공근로사업으로 자활농장에 나가 손자를 키울 수 있어 다행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동사무소에서 10월부터 최저생계비를 국가가 책임지는 기초생활보장법이란 새 제도가 시행되니 공공근로사업을 그만둬라고 해 그만뒀다. 이때만 해도 박씨는 정부가 고맙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지난 10월, 막상 박씨가 받은 생계비는 단돈 5만원도 안 되는 금액.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고, 배신감에 어쩔 줄 몰라 했다”는 박씨는 하여 다시 공공근로사업을 신청하겠다는 뜻을 동사무소쪽에 밝혔다. 그러나 동사무소에서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권자를 하든지, 공공근로사업을 하든지 한 가지만 선택해야 한다”고 해 박씨는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정부가 저소득층을 위한 획기적인 사회보장제도로 내세우고 있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 첫달부터 되레 저소득층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예산부족, 행정미숙 등으로 기초생활은커녕 심지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10월18일 장애인실업자 김남희(46·충북 천안)씨는 생목숨을 스스로 놓아버렸다. 김씨는 유서에서 “어머니 미안합니다. 오늘 어머니가 오셔서 면사무소에 갔더니 이달부터 (생계비가)6만몇천원이라고 하대요. 그거 가지고는 도저히 살 용기가 안 나 이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미안하군요. 용서바랍니다”라고 적었다. 10월23일에는 서울 월계동에서 장애2급의 조순열(49)씨가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먼저 수급권자들에게 지급하는 급여액의 지나친 하향조정. 이 문제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정부의 올 기초생활보장제도 관련 예산책정액은 2조2600억원. 이 돈으로 149만명을 대상으로 돈을 꿰어맞추다보니 시행 전부터 이미 기준을 엄격히 적용한다는 비난에 숱한 탈락자들을 양산했고, 게다가 급여액도 대폭 줄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구걸을 하며 목숨을 잇는 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2동의 남궁태우(83)씨는 이번에 8만5천원을 생계비로 지급받았다. 세칭 영등포 쪽방에서 한달에 15만원을 내고 살고 있는 그는 월세도 못 낼 형편에 어떻게 먹고사느냐고 울상이다. 이는 현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법에 규정된 최저생계를 전혀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부는 애초 4인가구 최저생계비를 93만원으로 잡았다. 하지만 실제 정부가 정하고 있는 최저생계비는 4인가구 기준 69만원. 추석 등 명절에 지급하는 특별위로비, 의료보험료와 별도급여로 지급되는 의료비와 교육비 등을 최저생계비에서 일률적으로 23만3천원가량 삭감했기 때문이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추정소득

(사진/“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수급권자에게 지급되는 급여액의 하향조정으로 많은 저소득층이 고통받고 있다)
정부는 게다가 노인이 많은 1, 2인가구의 경우 이들이 교육비 지원을 받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1인가구 1만5천원, 2인가구 2만5천원을 일괄적으로 공제하고 또한 의료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아 의료보호 혜택을 받지 않는 가구에도 4인가구를 기준해 11만원의 의료비를 삭감하는 ‘비상한(?) 계산법’을 쓰기도 했다. 대구의 신아무개(96)씨는 “나는 아이가 없어서 교육비를 받은 적도 없고, 아파도 병원 갈 돈이 없어서 평생에 한번도 병원에 간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의료비와 교육비를 현물로 주었다고 하며 15만원을 빼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때 취로사업이나 공공근로를 했으나 현재 실업상태에 있는 가구에까지 무리하게 과거의 소득을 현재 소득으로 계산해 생계급여를 삭감하고 있는 사례도 빚어졌다. 서울시 양천구 신월6동의 양봉석(32)씨는 5인가구의 실질적 가장. 그는 4만4천원의 생계비를 지급받았다. 해당 동사무소 담당자가 10월9일부터 공공근로가 예정돼 있다며 추정소득을 50만원으로 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공근로는 10월에 전혀 실시되지 않았다. 명백한 추정소득의 오류. 하지만 여전히 급여재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의 김명희(43)씨는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 전신쇠약까지 겹쳐 전혀 일을 못한다. 그런데 그는 8만1천원을 받았다. 소득이 16만원으로 책정됐기 때문이다. 일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16만원의 돈을 번다고 책정했을까. 바로 월세 때문이다. 담당 공무원은 “들어오는 것이 있으니 월세를 낼 것 아니냐”며 “그나마 봐줘 16만원으로 책정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신월6동에 사는 김홍제(38)씨는 더욱 딱하다. 그는 4살, 12살의 두 아이와 살고 있다. 부인은 가출해버렸다. 그런데 4살난 아이가 희귀한 심장병 환자. 지난해 <사랑의 리퀘스트>란 방송프로그램 도움으로 1차 수술을 했으나 또 수술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는 추정소득으로 40만원이 잡혀 이번에 21만원의 생계비를 받았다. 얼마 전까지 옷 노점을 해 벌이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자신도 결핵에 걸려 취직을 하지 못하는 김씨의 삶은 절망, 그 자체이다. 인천여성실업대책본부의 김현숙씨는 “정부는 적어도 최저생계 유지가 가능한 급여를 지급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생계비가 적은 탓에 급여를 다시 조정해달라는 민원이 동사무소와 복지부에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상당수 동사무소 담당자들이 “3개월 동안 급여재조정이 안 된다”는 말을 해 수급자들을 더욱 절망케 하고 있다. 또 공공근로나 수급자 중 양자택일을 사실상 강요한 경우도 발생했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의정부에 사는 이아무개씨의 경우 수급자로 선정됐다. 동시에 의정부시 공공근로 4단계 대상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공공근로 사흘 만에 그는 수급자란 이유로 공공근로에서 제외됐다. 이씨가 생계비로 받은 금액은 20만5천원. 이 지급액은 수급자의 가구소득을 38만원 등급으로 추정했기 때문인데, 이 추정소득 근거는 지난 3개월 동안 그가 공공근로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의정부시는 이처럼 공공근로사업팀(인원 20명)에서 이씨를 비롯해 총 5명을 기초생활수급자란 이유로 탈락시켰다. 3인은 만성질환자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중병환자였다. 이런 경우는 인천지역도 마찬가지. 이 지역의 공공근로 민간위탁선정기관 가운데 한곳에서는 200명의 공공근로 인원 가운데 60명가량이 수급자와 공공근로 중 양자택일을 강요받았다.

만들었으면 제대로 시행하라

생계비를 지원받아야 할 상당수가 수급권자에서 탈락했다는 점도 큰 문제이다. 우리 사회의 최저생계비 이하의 빈곤인구는 1천만명 수준. 하지만 수급자는 149만명(류정순 박사 추정에 따르면 빈민의 29.8%)에 그쳐 있다. 이에 대해 복지부 담당자는 “지난 생활보호법상의 거택보호자들은 예전에 생계비 지급 최고금액이 4인가구를 기준으로 했을 때 47만6천원이었던데 비해 현 제도에서는 생계비만 69만7천원에 주거비 3만2천원을 합해 72만9천원으로 많이 올랐다”면서 “다만 지급액이 하향조정된 사람들은 대체로 근로능력이 있는 자활보호대상자나 구제금융 사태 때 일시적으로 시행한 한시적 생활보호대상자들”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이들 하향조정된 사람들은 자활사업이나 공공근로사업으로 소득을 벌 수 있도록 할 예정이었으나 이 사업이 10월에 시행되지 못해 일시적으로 불만이 일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석했다. 복지부는 이에 “10월에 공공근로에 참여하지 못한 가구는 11월 생계비 지급 때 소득을 재조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국실업단체극복연대회의 김경희 실장은 근본적으로는 예산확충이 이뤄져야 하지만 동시에 △장기실업자나 장애인 등 추정소득 적용을 해서 안 될 사람들까지 추정소득을 부과하는 문제개선 △소득과 재산에 변동상황이 발생할 때 즉시 이를 반영할 것 △사회복지전문요원의 확충 등을 제안했다. 류정순 박사(전 상명대 강사)는 “자칫 시행과정의 이런 문제를 일선 담당자인 사회복지전문요원들의 문제로 돌려서는 안 된다”면서 “어디까지나 빈민의 생존권은 다른 권리보다 우선적으로 보장해줘야 한다는 기초생활보장법의 본래의 취지에 충실히 해 이 제도를 분명히 제대로 시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창곤 기자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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