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홍] ‘뿌리깊은 나무’만 옮깁니다
등록 : 2003-11-20 00:00 수정 :
뿌리가 깊은 나무는 미덥다. 하지만 뿌리 깊은 나무를 옮기는 건 힘들다. 그래서 큰 나무 그늘 밑에서 땀을 식히던 이들도 정작 그곳에 집을 지을 때면 아예 썩둑 베어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임재홍(55·아아조경주식회사) 전무는 두 사람이 손을 뻗어 안으면 손가락이 닿을락말락한 큰 나무들을 ‘포장이사’시키는 전문가다. 그는 11월17일 270살 먹은 창덕궁 느티나무를 옮겼다. 창덕궁 서쪽 규장각 권역에 있는 이 나무는 둘레가 4m에 무게가 65t이 넘는 큰 나무로 주춧돌을 상하게 할 만큼 뿌리가 자라자 최근 규장각 권역 복원 공사를 벌이면서 근방으로 옮기게 됐다.
두 발 자유로운 사람과 달리, 나무 이사는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지난 3월 모세혈관에 해당하는 잔뿌리를 자르고 흙을 떠내 천으로 감는 ‘뿌리돌림’을 마쳤습니다. 8개월 동안 새 뿌리가 잘 자라나고 병충해를 입지 않도록 영양제를 줍니다. 뿌리가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자라나 새 땅으로 옮겨도 무리가 없다고 판단되면 이삿날을 정하죠. 나무의 크기와 무게에 맞춰 특수 제작한 받침틀을 이용해 지렛대처럼 나무를 떠내 들어올립니다.”
워낙 제자리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온 큰 나무들은 이처럼 꼼꼼한 공정을 거친 뒤에도 새 땅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교한 사람의 손길이 계속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오랜 시간과 큰돈(1억여원)이 들어가는 이 공사를 꼼꼼히 기록해 보고서로 남겨둠으로써 후일 다른 이들이 참조하도록 할 계획이다. 큰 나무를 옮기는 전문적인 기술에 대한 논문 ‘향토 대형수목 이식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조경회사들은 노거수 이식 기법을 ‘영업기밀’처럼 여겨 잘 공개하지 않는 게 관례입니다. 하지만 고려청자만 봐도 제작 기법이 문헌으로 남아 있지 않아 오늘날 재현할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나무 이식 기법이 많이 개발돼 통용된다면, 공사에 방해되는 큰 나무들을 마구 잘라버리는 일도 줄어들 겁니다.”
글 · 사진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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