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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변호사 정말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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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1-19 00:00 수정 : 2008-11-2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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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판정패로 일단락된 송두율 교수 ‘변호인 입회권’ 공방

만약 당신이 지금 경찰이나 검찰, 또는 국정원 같은 수사기관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왔다고 가정해보자. 수사기관 관계자들은 당신 앞에서 “지금부터 당신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하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바로 당신 곁에는 믿음직한 변호사가 한명 앉아 있다. 당신은 그 사람을 뭐라 부를까. ‘천군만마’ 정도가 적당한 단어 아닐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송두율(59·독일 뮌스터대) 교수 수사과정에서 불거진 ‘변호인의 피의자 신문 참여권’ 문제가 법조계에서 화제다. 검찰과 송 교수쪽 변호인단이 벌인 공방에서 검찰이 판정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사진/ 시위 가담 학생을 대상으로 신문을 벌이고 있는 경찰들. 검찰과는 달리 또 다른 수사기관인 경찰에서는 그나마 변호인 참여가 상대적으로 잘 이뤄지고 있다.(한겨레 강창광 기자)

그동안 거의 보장 안 된 ‘변호인 입회’

논란은 송 교수를 수사하던 서울지검 공안1부(부장 오세헌)가 10월24일 송 교수의 신문과정에 참여하겠다는 변호인의 요구를 거절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변호인단은 “신문에 참여하도록 해달라”는 준항고(판사가 행한 재판,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행한 처분에 대해 소속 또는 관할법원에 그 재판이나 처분의 취소·변경을 청구하는 불복신청 방법)를 법원에 냈고, 서울지법은 “변호인의 참여를 허용하라”고 결정했다. 검찰은 이에 불복해 즉시 재항고했지만, 대법원2부(주심 배기원 대법관)는 11월11일 “변호인 참여를 허용하라”며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했다. 논란을 일단락지은 셈이다.


대법원의 결정은 상당히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법원이 보수적인 판결로 사회적 비난을 받고 있는 터라 법조계는 이번 결정을 더욱 눈여겨보고 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변호인의 조력(헌법 제12조 4항)이란 ‘변호인의 충분한 조력’”이라고 전제한 뒤 “변호인과의 접견권은 인권 보장과 방어권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권리이므로 법령에 의한 제한이 없는 한 어떤 명분으로도 제한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수사기관의 처분이나 법원의 결정으로도 제한할 수 없으며, 이를 제한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못박았다. 재판부는 또 “아직 형사소송법에 명문규정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한 헌법 규정에 비춰 구금된 피의자는 형사소송법의 타인과의 접견교통권을 유추 적용해 피의자 신문을 받을 때 변호인의 참여를 요구할 수 있다”며 “또 수사기관은 이를 거절할 수 없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인신구속의 적법절차를 규정한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그러나 이 결정이 ‘무제한적인’ 변호인 참여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며 특별한 경우 참여를 제한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즉, “신문을 방해하거나 수사기밀을 누설하는 등의 염려가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해 변호인의 참여를 제한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변호인의 참여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변호인 참여를 제한할 필요를 언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정이 지니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그동안 변호인의 피의자 신문 참여권은 이론적으로만 받아들여졌고 검찰의 수사실무에서는 실질적인 보장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검찰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거론한 근거는 크게 법 논리 측면과 수사실무 측면으로 나뉜다. 먼저 법 논리 측면으로 보면 헌법에 추상적으로 규정된 권리라고 해도 형사소송법과 같은 법률에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참여권을 보장하게 되면 입법권이 없는 (준)사법기관이 구체적인 입법행위를 한 것이어서 삼권분립 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이었다. 또 수사실무적으로도 수사기밀이 누설되거나 관련자들의 증거조작이나 증거은닉 등에 악용될 수 있다는 문제제기였다.

‘단순 입회권’은 별 의미 없어

검찰이 보수적인 태도를 스스로 바꾼 것은 지난해 10월이었다. 서울지검 강력부가 살인사건을 수사하면서 피의자 조아무개씨를 폭행하고 고문해 숨지게 한 사건이 터지자 검찰 수사과정에서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여론이 들끓었고, 대검은 변호인의 피의자 신문 참여권과 관련한 자체 ‘예규’를 만들어 시행에 들어간 것이다.

사진/ 대법원의 결정은 명문 규정을 두지 않았던 ‘변호인의 피의자 신문 참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송교수와 함께 출두하는 김형태 변호사(왼쪽)의 모습.(한겨레 황석주 기자)
그러나 대검 예규는 ‘실질적인 참여권’과는 거리가 멀고 ‘단순 입회권’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받아왔다. 검찰 예규에 따르면 변호인은 피의자가 조사를 받을 때 검사실에 들어가 피의자의 뒤에 앉아서 조사과정을 지켜볼 수 있을 뿐이다. 변호인은 메모를 하지도 못하고 피의자와 조사내용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도 금지된다. 이 밖에도 조사내용에 따라 검찰이 제한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변호인의 단순 입회조차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같이 까다로운 규정 때문에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검찰 조사과정에 입회하는 것을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한 변호사는 “검찰 수사과정에서 작성되는 ‘피의자 신문조서’는 기소 이후 피고인의 유죄 입증에 결정적 증거로 이용되는데도 변호인은 조서작성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지 못한다”면서 “(변호인의 단순 입회가) 가혹행위를 방지하는 차원에서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변호인 조력의 핵심 내용인 ‘방어권 보장’이라는 차원에서는 거의 의미가 없다”고 꼬집었다. 변호사들의 불만에 대해 일선 검사들은 “수사 실무를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대법원의 결정대로라면 수사기관이 제한된 구속기간 안에 피의자들의 자백을 받아내거나 수사를 끝내기가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변호인들이 신문 지연 전술을 써서 신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기소나 석방 여부를 결정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면서 “수사를 하지 말라는 얘기나 마찬가지 아니냐”며 반발했다.

이에 비해 또 다른 수사기관인 경찰에서는 그나마 변호인 참여가 상대적으로 잘 이뤄지고 있다. 경찰은 지난 1999년 6월부터 피의자 신문 과정에 변호인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있다. 검찰과 달리 경찰은 피의자가 요구할 경우 변호인이 조사 장소에 도착하기 전까지 일정한 시간 동안 조사를 미루도록 하고 있고, 조사 중에도 수사관과 피의자 사이에 오가는 질문과 답변 과정에 변호인이 간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신문이 끝나 ‘피의자 신문조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도 피의자와 변호인이 서로 의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경찰청 수사국 관계자는 “변호인의 참여를 보장하면 수사가 방해를 받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피의자 진술의 임의성이 보장된다”면서 “이 제도를 시행한 뒤 변호인이 참여한 경우를 집계해본 결과 올해 9월까지 1078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법무부와 검찰 새 법조항 고심 중

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법무부와 검찰은 내년 총선 이후 차기 국회에 낼 예정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변호인의 피의자 신문 참여권 문제를 규정하는 새로운 법조항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법무부 검찰4과 관계자는 “애초에는 개정안에 긴급체포한 뒤 48시간 이내에는 변호인의 입회를 제한하는 내용 등을 포함시키려고 했으나 반대 여론이 높다”며 “대법원 결정이 내려진 상황이라 이를 기준으로 조항을 새롭게 다듬고 있다”고 밝혔다. 이 사안은 법무부와 검찰의 개정안이 확정될 경우 다시 한번 논란이 붙을 가능성이 높다.

법조계에서는 외국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시행 중(표 참조)인 ‘변호인의 피의자 신문 참여’ 제도를 이번 기회에 실질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특히 참여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서는 국선변호제도를 피의자 단계로까지 확대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지적도 높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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