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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필름에 담은 10대의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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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1-0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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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양래 프로듀서, 엄상미 조연출, 김인중 촬영지원, 김민정 감독)
16살 현아의 첫 성경험은 윤간을 당한 것이다. ‘오빠들’에게 오토바이를 얻어타다 벌어진 일이다. 그뒤 현아는 친구 두명과 함께 인천의 한 해수욕장에서 ‘꿀벌작전’을 하다 또다시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꿀벌작전은 돈을 받고 놀아주는 것을 뜻하는 10대의 은어. 현아는 임신 5개월째이지만 병원에 가길 꺼린다. 하혈이 계속돼도 마땅한 대책이 없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동대문 일대에서 자유로운, 그러나 지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매매춘 근절을 위한 한소리회’가 서울시 여성발전기금을 지원받아 기획하고, 다큐멘터리 제작공동체 ‘장수하늘소’가 만든 <가출 이데아-밀리오레에서 길을 잃다>는 탈출구 없는 10대들의 일기장이다. 가출한 10대 소녀들이 성산업에 유입되기 전까지의 길고도 짧은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6월 말부터 넉달간 6mm카메라를 메고 미아리, 동대문 등지에서 15, 16살 가출 청소년들을 만나온 김민정(32) 감독은 “10대 소녀들이 가출 뒤 곧바로 성산업에 유입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가 만난 소녀들은 시간당 1500원 남짓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갈 곳없이 ‘시간을 죽이는’ 이들이었다.

“아이들은 먹는 게 없으면 그냥 굶으면 되지만, 잠잘 곳이 없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한다. 쉼터나 복지관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남자든 여자든 대부분 피임이나 사후처방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것이다.”

어둠의 터널을 지난 소녀들 중 일부는 집에 돌아가지만 다수는 매매춘업소로 흘러들어간다. 김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10대의 현실을 인정하고 사회와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가출 이데아…>는 인건비도 안 되는 가벼운 지원금으로 제작됐지만 우리 사회에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10대의 매매춘업소 유입을 막을 수 있는 시급하고도 현실적인 방안은 무엇일까. 감독의 생각은 쇼핑몰 계단이나 의자에 기대 잠을 자는 10대들이 부담없이 찾을 수 있는 ‘잠자리’가 있었으면 하는 것과, 무료든 유료든 자판기 등에서 손쉽게 콘돔을 구입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11월3일 공개상영회를 가진 <가출 이데아…>는 비디오로 한정제작돼 각급 학교와 청소년 쉼터 등에 배포된다. 문의는 02-3147-1505.


김소희 기자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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