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형] 백발의 시인, 봄을 부른다
등록 : 2003-11-13 00:00 수정 :
이기형 하면 대포알 슛이 특기인 축구선수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와 이름이 같은
이기형(86) 선생이 여덟 번째 시집 <봄은 왜 오지 않는가>를 냈다.
백발이 성성한 시인은 거의 울먹이며 시를 쓰고 다시 고쳐 썼다고 한다. 시인은 책 머리에서 서푼도 되지 않는 헛소리로 일관하며 고민도 통곡도 없이 살아가는 요즘 젊은 시인들이 답답하고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시인은 ‘꿈별을 바라 밤마다 통곡한다’며 조국 산야에 통일시를 아로새기고 싶단다. 시인은 시집에서 서울 명동 거리에서 머리를 물들인 젊은이, 인터넷, 몰래카메라 등 일상에서부터 월드컵 4강, 아시아 경기대회 북한 응원단, 생태문제, 미국, 통일문제 등을 노래한다.
문학평론가 임헌영씨는 이 책 발문에서 시인을 ‘1980년대 이후 민주화와 통일을 위한 집회에는 어김없이 가장 정확한 시간에 나타나 최후의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현장을 관찰하는 그는 우리 시대 최고의 실록 증언 시인이다”고 소개했다.
이기형 시인의 생애는 한국 현대사의 축약판이다. 시인은 1917년 함남 함주에서 태어나 항일독립운동을 벌였고 작가 한설야·임화, 독립운동가 몽양 여운형 선생을 만나 조선 독립과 문학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 하지만 해방 이후 1947년 7월9일 여운형 선생이 권총 저격을 받아 숨지자 33년 동안 일체의 공적인 사회활동을 접는다. 1980년까지 이 선생은 서울 뒷골목에서 장사와 사설학원 운영, 학원강사 등을 하며 지냈다.
1980년 신경림 시인과 문학평론가 백낙청 교수 등을 만난 이 시인은 ‘분단조국 아래서 시를 쓰지 않겠다던 결심을 바꾸어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인은 1988년 지리산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실존 인물들을 취재해 실록 연작시 형태로 쓴 시집 <지리산> 필화사건으로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 <봄은 왜 오지 않는가> 출판기념식은 12월5일 오후 6시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열린다(02-868-3097).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