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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셰익스피어가 한복을 입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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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1-0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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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가 대학 캠퍼스의 견고한 틀 속에 갇혀 있습니다. 한국의 영문학 교수들이 순수 영어영문학에 집착한 데서 빚어진 것입니다.”

지난 10월28일 부산 부경대에서 열린 한국셰익스피어학회에서 영문학자 김창호(48·전 동의대 교수)씨는 영문학 교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한국에서의 셰익스피어 수용’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신랄하게 피력했다. 김씨의 거침없는 주제발표에 상당수 교수들은 “모처럼 속시원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등 의외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11년 전 동의대에서 해직당했던 김씨의 가슴에 지난날의 회한이 뭉클 피어올랐다. 김씨가 ‘한국의 셰익스피어 수용에 관한 연구’에 착수하게 된 계기는 특이하다. 그는 지난 89년 동의대 입시부정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교수재임용에서 탈락, 명예회복 차원에서 학교당국과 입시부정 주모자들을 상대로 법정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검찰은 입시부정 연루자들에 대해 번번이 무혐의 처리했다.

그러던 상황이 문민정부 출범 뒤 돌변했다. 청와대에 진정하자 검찰이 재수사에 착수해 입시부정 당사자들을 구속시킨 것이다. 김씨는 깊은 허탈감에 빠졌다. 정권이 바뀌자 진정서 하나만으로 진실이 뒤집어지다니, 무엇이 진실이고 정의인가.

“혼란과 허무감이 엄습해왔습니다. 어느 날부터 노자와 장자를 탐독하기 시작했죠. 노·장에 빠져들수록 영문학적 세계관을 뛰어넘는 우주적인 그 무엇, 우주 속의 어떤 틀로 나아가는 문이랄까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김씨는 그 후 동양사상과 역사에 관한 책들을 섭렵하면서 ‘한국에서의 셰익스피어 수용’이라는 화두에 매달렸다. 김씨는 우리나라의 셰익스피어 연구 및 공연물 등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해 연구논문을 써서 고려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씨는 연구결과 셰익스피어가 한국의 전통연희양식과 합류할 수 있는 지점이 많다는 것, 즉 셰익스피어의 한국적 수용 가능성을 찾아냈다. 김씨는 요즘 “우리 것의 소중한 가치를 발굴하기 위해” 민족미학연구소에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부산=안봉모/ 문화예술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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