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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저력’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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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1-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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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특히 아시아 국가들이 ‘한국을 배우자’며 몰려오는 것은 한국인들 특유의 집념이 낳은 성공사례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국의 ‘산업혁명’이 시작된 1964년부터 1970년까지 전년 대비 평균 42%의 수출증가율, 1억달러에서 7년 만에 10억달러를 돌파한 수출실적 등은 세계인을 놀라게 했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는 집념이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것이다. 이런 경이적인 경제성장은 아직까지도 지구상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60년대와 70년대에 추진한 산아제한정책(가족계획)의 성공도 한국인의 집념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정부는 ‘아들딸 구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밀어붙였고 국민들은 호응했으며, 그 결과 전 세계에서 가족계획에 가장 성공한 나라로 주목받게 됐다. 지금은 여성 한명이 평생 낳는 자녀 수가 1.17명에 그쳐 오히려 출산을 권장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위기를 최단 시일 안에 극복한 것도 세계를 놀라게 했다. 1997년 12월 IMF 의향서에 서명한 뒤 2001년 8월 차관 195억달러를 모두 갚아버리는 저력을 과시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국은 2004년 11월 IMF 이사국으로 변신해 세계 경제와 관련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사진/ 한겨레
이처럼 우리는 난국이나 위기 때마다 특유의 집념과 저력으로 국력을 신장시키고 위기를 극복해왔다. 지난 일을 가지고 느닷없이 국가 홍보에 열을 올리는 것은 ‘대선자금 실체규명과 정치개혁’ 때문이다. 온 나라가 떠들썩하고 국민들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것은, 그것이 국가적 위기상황이면서 시대적 과제임을 방증한다. 결과에 따라서는 다시 한번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줄 수도 있지만, 정치권과 검찰, 재벌이 공멸의 길을 가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자금 개혁을 끝장 보겠다”고 나서고,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와 이회창 전 총재가 대국민 사과를 할 때까지만 해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팽배했다. 그러나 각 당의 대선자금 공개 눈치보기, 한나라당의 검찰수사 거부, 전경련의 사면 요구, 노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제 국회통과 등이 이어지면서 ‘역시나’라는 실망감으로 바뀌고 있다.

위기의 본질은 무엇이고 극복방안은 무엇인지, 모든 게 너무나 분명하다. 각 당이 일단 대선자금 규모와 조성경위를 공개하고, 검찰수사를 통해 검증을 받는 게 출발선이다. 검찰수사가 미흡하면 특검제를 도입하고, 국민 여론의 향배에 따라 형사처벌을 감수하거나 사면을 받으면 된다. 그리고 우선 돈 안 드는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개혁 방안을 수립해 내년 총선부터 새로운 정치를 보여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년 총선이 끝난 뒤 세계 각국이 한국 정치를 배우기 위해 몰려오는 꿈을 꿔본다. “정치인들이 돈 없이 어떻게 정치를 합니까?” “기업들은 정치자금을 안 내도 된다고요?” “유권자들이 후보 정책을 제대로 판단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쏟아지는 외국인들의 질문에 답할 얘깃거리도 준비해놓고, 다시 한번 ‘한국의 저력’을 기다려보자.


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pea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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